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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실격 Feb 09. 2020

무엇에 동기부여 받는지와, 커리어 발전 계획을 적으시오

현대자동차 인력운영

현대자동차 인력운영팀

본인이 무엇을 통해 동기부여되는지 상세히 기재하고, 향후 커리어 발전 계획을 적으시오 (1000자)


나는 빈지노를 보면서 동기부여받는다.


이야기는 21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2013년이었고 난 신입생이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역까지 얻어 탄 친구 차에서 "If i die tomorrow"가 흘러나왔다. "내일 죽는 다면"이란 설정의 곡은 비장했지만 그렇다고 유치하지 않았다. 그게 빈지노와 첫 만남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빈지노의 24:26 앨범을 들었다. 그리고 스테파니처럼 빈지노에게 푹 빠졌다. 그 앨범을 여러 번 들으며 나머지 여름을 보냈다. 지금도 랜덤 재생에서 그때의 곡을 만나면 2013년으로 돌아간다.   


빈지노는 랩만 잘하는 게 아니었다. 공부도 잘했다. 그의 출신 학교가 서울대학교라는 당시 시대적 인재상인 "뇌섹남"자격을 충족했다. 동시에 그 좋은 학교를 자퇴했다는 이력은 후광을 더 했다. 모든 대학생은 오전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마다 자퇴를 소망한다. 그런데 그 자퇴를 실제로 실천했다는 건 대학생의 롤모델이 될 자격을 충분히 갖춘 셈이다. 잘생긴 외모와 패션은 덤이었다. 

 경영학도로서 내 진로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몰라도 아무튼 빈지노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미 완성된 외모는 어쩔 수 없지만 아무튼 멋있는 사람. 무대에선 관객 환호를 받고, 사람들에게 멋진 결과물을 공유하고, 인기도 많고, 돈도 많이 버는 사람. 그런 비슷한 종류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니 빈지노가 24:26 앨범을 26살에 만들었다는 건 내게 지표가 됐다. 나도 그 나이 근처에선 그 앨범 비슷한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겠다는 다짐이 됐다. 26까진 아직 5년이나 남았다. 시간은 충분하다. 5년이면 강산도 반쯤은 변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6살이 됐고, 내가 만든 거라곤 고작 조별 과제 PPT 뿐이었다.


빈지노 다음으로는 혁오가 있었다. 무한도전에 출연하기 전부터도 혁오를 좋아했다. 요즘도 잠이 안 오는 밤이면 혁오의 앨범을 돌려 듣는다. 주사처럼 취한 날에도 꼭 듣는다. 술 먹고 돌아가는 길엔 혁오의 "paul"을 자주 들었다. 

 혁오 씨가 빠른 년생을 인정해주면 우린 동갑내기다. 친구의 훌륭한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부러워도 하고, 질투도 나고, 어쩐지 늦춰지고 있다는 불안도 느낀다. 비슷한 경험들 있지 않은가. TV에 어떤 대단한 사람이 나오는데, 그 친구가 나보다 어리다는 걸 알았을 때 느껴지는 조급함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 같은 나이에 뭐 했지"를 반추하고, 반성하는 거. 훌륭한 앨범 앞에서 나는 자주 그걸 느꼈다. 이중적인 자아로, 관람할 땐 마냥 좋은 것과, 아무것도 창작한 게 없는 "언젠가 창작자"로서의 불안함, 다급함, 시기, 열등감, 질투, 그리고 존경심이라는 복합적인 감정들. 


이렇게 쓰고 보니 누가 보면 거창한 앨범이라도 만들다가 실패한 줄 알겠다. 현실은 악기 하나 다룰 줄 모른다. 앞으로도 음악 만들 계획은 없다. 노래방에서도 마이크보단 탬버린 쪽 취향이다. 그러니 빈지노와 혁오 입장에서 보면 경영학과 취준생이 당신들을 부러워하는 게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그 두 명의 아티스트보단, 이건희나 스티브 잡스가 내 직속 선배에 가깝다.

 그런데 나도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큰 기업을 만든 사람의 자서전보단, 그냥 하나의 멋진 앨범을 만든 사람의 이야기를 더 좋아했다. 꼭 음악이 아니어도 됐다. 문학, 영화, 영상, 취재 등 모든 멋진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은 전부 동기부여를 줬다.


왜 그랬을까. 그건 아마 내가 책을 써 보고 싶다는 마음"만" 갖고 살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책 좋아했던 20살부터 언젠가 책을 만들고 싶어 했다. 책을 만들고 싶으면, 책을 만들면 된다. 아주 간단하다. 책은 한 개의 주제와 원고지 800매로 구성 돼 있다. 그러니 매일 써서 분량을 채우면 된다. 그러나 생각하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면 나는 뭐라도 됐을 터. 소시민인 나는 계획만 있고 실행은 없었다. 누가 책 쓰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막은 것도 아닌데.

 그러니 “써야지”싶은 마음을 갖고 사는 중에, 빈지노와 혁오는 더 멋진 앨범을 만들었고, 이슬아 작가는 멋진 출간 프로젝트를 성공했으며, 봉준호는 그 자체로 장르가 됐다. 

 결국 내 의지가 박약해서, 빈번히 동기 부여만 받은 셈이다.


예전에는 좋은 책을 읽으면 그 작가가 몇 살 때 썼는지 역추적했다. 책이 출간된 연도에서, 저자 소개의 출생 연도를 빼면 된다. 그 나이가 나보다 많으면 아직 시간이 남았음에 위로를 받았고, 더 어리면 좌절했다. 당연히도 나이는 먹기만 하는 거라 시간이 지날수록 어린 작가가 많아질 거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꼭 책을 내기로 했다. 만약 이 다짐에 실행이 더 해진다면 당신이 이 글을 책으로 읽고 있겠다. 


자소서 문항 두 번째 질문인 향후 커리어에 대한 답변은 그러니까 집필을 하겠다는 말이다. 솔직히 아직도 전업 작가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매일 쓰면 책 한 권 "분량"은 완성돼 있을 거라 믿는다. 이 책이 “일간 이슬아 수필집”이나 “24:26”같이 훌륭한 결과물이 될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한 권씩 쌓아 가다 보면 적어도 열등감은 진정될 것 같다. 아마 지금보단 빈지노와 혁오를 조금은 덜 부러워하겠지 싶다. [2,530자]


“필패하는 자소서”에선 자소서 문항을 제 맘대로 대답하는 형식의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진로 고민, 하고 싶은 일과 해야 되는 일 사이에서의 갈등, 부끄러움, 대인 관계 등이 키워드입니다. 기획 의도가 담겨있는 프롤로그를 첨부합니다. 팔로우를 하시면 글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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