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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실격 Mar 04. 2020

필패하는 자소서 에필로그

모쪼록 에필로그를 쓰는 날이 왔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 공개했던 날처럼, 이 필패하는 자소서 첫 글이 발행될 때는 세상이 뒤집힐 줄 알았다. 브런치 팀이 어쩜 이렇게 참신한 기획을 떠올렸냐고 기특해하며 다음 메인에 글을 올릴 줄 알았다. 혹시 글이 유명해져서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오면 인세를 몇 퍼센트로 해야 할지, 8%에 만족할지 아니면 거드름 피우며 10%로 할지를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모든 걱정은 불필요했다. 책 제목 같이 이 기획은 필패했다.


그런데 "이젠 전패하는 자소서로 고쳐야 하나"자조하면서도 완전히 패배했다고는 생각이 안 든다. 만약 내가 졌다면 누군가 이겼어야 마땅한데 여기엔 승리자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패했다는 건 이 책이 소기에 목적했던 출판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아서다. 나는 이 책으로 작가가 되고, 부자가 돼서 취업 걱정 없는 삶을 살고 싶었고, 거기엔 실패했다. 말 그대로 실패 이야기를 팔아 성공해보려는 내 요량이 "실패"했다. 역시 세상은 녹록지 않다.


그렇지만 어쩌면 "나"로부터 이긴 사람도 결국 "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 분량은 안 돼도 자소서 안 쓰며 모은 글로 브런치 북 분량은 만들었다. 애초에 계획한 칼럼, 사진은 없지만 아무튼 18편의 목차는 채웠다.  

 축구선수를 목표로 운동하면 축구선수가 못 돼도 동네축구 에이스는 되고, 가수 지망생이 데뷔에 실패하더라도 노래방 분위기 메이커는 될 수 있는 것처럼, 이 브런치 북이 나에게 그 정도 역할만 해도 완전히 실패는 아닐 것 같다.

 

고작 브런치 북을 내면서도 아쉬움이 많다. 아직 답하지 못한 문항도 많고, 분량을 다 준수한 칼럼과 주제를 담은 사진도 담아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기엔 시간과 열정이 조금 부족하니, 혹시 늦게라도 이 브런치 북이 마음에 드는 출판사가 있으면 연락을 기다리겠다.(겠다, 는 너무 강한 말투 같으니 "주세요"로 정정) 취준생의 간절함을 담아 더 좋은 책으로 만들겠다.


취준생은 다들 자소서 문항 앞에서 비슷한 막막함을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어쩔 땐 문항 자체가 이상해서 일 수도 있고, 어쩔 땐 평범한 문항인데 스스로 가진 답이 없어서 느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필패하는 자소서처럼 워드를 켜고 채용과 무관한, 스스로가 정말 쓰고 싶은 말을 적어보길 추천한다. 물론 그걸로 뽑힐리는 만무하지만 취업 스트레스 해소에는 도움이 된다.

 부작용으론, 한 번 필패하는 자소서를 적고 나면 그 문항을 볼 때마다 장난치고 싶게 된다, 지금 내가 그런다. 지원동기를 볼 때마다, "왜냐면 XX는 돈을 많이 주니까"로 적고 싶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취업 시장으로 날 팔러 갈 거다. 경영과 관련 있어 보이는 모든 항목에 지원하고, 어찌어찌 어떤 기업이든 결국 다닐 거라고 믿는다. 우리 엄마는 나를 채용할 그 기 기업이 어디든 큰 행운을 잡는 거라고 말해주는데, 그럴 때마다 자존감이 솟는다.


마지막으로 취준생, 취업한 사람, 은퇴한 사람까지 모두 적극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찾길 바라며, 이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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