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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k Glove Jul 08. 2019

우선 살부터 빼고 오겠습니다 (소설)

1-1 살은 집 밖에서 빼야해

발목이 드러나는 까만 슬랙스에 하얀 운동화.

살짝 비칠듯 말듯하지만 사무실에서 불쾌감을 주지않을 정도로 단정한 흰 티셔츠(무늬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살짝 오버핏인 까만 재킷.

오른쪽에는 살짝 낡은 듯한, 하지만 멋스러운 가죽 가방을 걸치듯 메고, 왼손에는 텀블러를 쥔채 여유롭게 회의실을 향해 걸어가는 여자 직장인.

내 상상 속의 이상적인 내 모습은 그러하다. 하지만 회사 내 제일 스타일 좋은  여직원을 살펴본 결과, 그런 옷 차림이 잘 어울리려면 우선 배가 나오지 않아야하고 가슴은 적당히 작아야하며 허벅지가 붙지 않아야 한다. 우선 허벅지가 퉁퉁하고 배가 나온 순간 슬랙스는 허리 찡기는 레깅스가 되어버린다. 흰 티셔츠를 바지 안으로 넣어 입을 수 조차 없다!


원체도 "말라본" 적은 없지만 20대 초중반엔 사회초년생의 시련과 실연을 겪어가며 살이 빠졌었고, 20대 후반에는 사실 회사 유니폼을 사복보다 많이 입어서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유니폼 사이즈가 M에서  L로, L에서 XL로 올라갔어도 어쨌든 매일 입을 옷이 있었고 나름 운동을 꾸준히 했다고 생각하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쨌든 점심시간에 GYM에 가서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아이라인을 다시 그릴 정도의 부지런함은 있었다.

요즘 말로 현타는 사복을 입는 회사로 이직하면서 시작됐다. 서른살이 되어서 스물몇살 적에 입던 옷을 예쁘게 입는다는 것 자체가 내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였을지 몰라도 팔조차 안들어가는 현실에 진짜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을 무엇으로 풀었느냐하면 쇼핑 이었다. 미국은 넓고 플러스 사이즈 옷은 많다. 내가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옷 정도야 맘만 먹으면 집앞 몰에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었다. 요즘은 온라인 쇼핑몰도 어찌나 잘되어있던지. 그런 생활을 계속하다보니 정말 빠지는 것은 통장 잔고요, 늘어나는 것은 내 몸무게라.

몇달간 운동도 끊고 몸무게도 안 재고 버티다 간만에 출장간 한국에서 들린 사우나에서 결국 확인하고야 말았다. 한방에 이해가 팍 되었다. 요새 왜 그리 코를 고는지, 왜 계단만 보면 한숨이 나는지, 왜왜왜 맞는 바지가 없는지.

한동안 정신없이 비즈니스 출장을 다니느라 호텔에가서 기름진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운동도 안하고 침대에 뻗어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인데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우선 간만에 방문한 한국이니 길거리 떡볶이는 먹어야했지만 떡볶이를 씹는 와중에도 고민을 했다. '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우선 운동화부터 샀다. 새 운동화를 신으면 운동할 의욕이 생길테니까. 180달러짜리 내 나이키 신상 운동화!  그러곤 당장 오늘부터 걷기로 했다. 집안에 스텝퍼는 옆으로 재껴두고 새 운동화를 신고 집 밖으로. 맥시멀 라이프라 그런지 몰라도 집안에서는 왜 그리 유혹이 많은지. 조금 몸을 움직이다가도 눕고싶고 조금 몸이 덥혀질만하면 차디찬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마셔주어야할 것 같다. 살을 빼야겠다면 밖으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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