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ink Glove Jul 15. 2019

우선 살부터 빼고 오겠습니다

2-1 뉴욕의 인플루언서

새벽 6시 비행기를 탔다. 그 말인 즉슨, 나는 새벽 3시에 일어나 새벽 4시에 집에서 나왔다는 얘기다. 30대가 되니, 여행을 와서 설레도 피곤한 것은 피곤한 거다. 캘리포니아에서 나보다 조금 늦게 출발한 제시를 기다리며 LGA 공항 구석에서 피곤해하고 있었다.

-  나 도착. 어디야

제시에게서 카톡이 오고, 곧이어 에스컬레이터로 내려오는 그녀가 보였다. 밝은 갈색과 금발이 섞인 옴브레 헤어를 높이 묶고 환하게 웃으며 내려오는 그녀가 보였다. 심플한 하얀 크롭티에 구릿빛의 탄력있는 허벅지를 드러낸 연한 워싱의 짧은 진을 입은 그녀는 누가봐도 캘리포니아 걸 같았다. 나이는 나 혼자 들었는지 제시는 여전히 스물 몇살로 보였다. 비교하게되는 이 느낌, 싫다.

'너무 반가워! 이게 얼마만이야!'

'그러게. 진짜 반갑다!'

'살이 좀 빠진거 같은데?'

'그래? 그대론데. 고마워.'


빠지기야 좀 빠졌지.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공항의 우버 탑승 지정지역에서 우버를 탔다. 운좋게도 폭스바겐 아틀라스를 끄는 운전자가 걸렸다. 넓은 좌석에서 느긋하게 우버를 타고 도시로 가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높은 건물들이 아 여기가 진짜 뉴욕이구나를 실감케했다.

웬지 섹스앤더시티 영화의 OST가 귓가에 멤돌았다. 왠지모르게 기분이 들뜬다.

한참을 달려, 맨하탄에 위치한 에이미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도착한 아파트는 정말 맨하탄 한복판이었다.

'에이미,We are here.'

제시가 전화를 걸자, 에이미가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오겠다고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구릿빛 제시와 대조적으로 하얀피부에 세련된 옷차림의 에이미가 보였다.

'제시! 이게 얼마만이야!'

에이미는 제시를 반가워하며 껴안았다. 옆에 있던 나도 포옹을 하며

'오랫만이야! 잘 지냈어?'

라고 인사를 건냈지만, 뭔지모를 어색함이 있었다.

'올라가자!'

11층에 위치한 에이미의 아파트는 작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건물은 좀 낡았지만 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뉴욕스러웠다.

스튜디오라서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다 오픈되어있었다. 그녀의 방안은 이불이나 벽의 데코레이션까지 마치 인스타에서 본 듯한 느낌이었다. 심지어 한 구석의 화장대 거울에도 동글동글한 조명들이 달려있었다.

' 짐은 여기다 놓으면 되고, 밤엔 한명은 나와 침대에서 자고 한명은 카우치에서 자면 될 거 같아.'

'내가 카우치에서 잘게.'

남과 한 침대에서 자는 것을 극도로 불편해하는 나는 얼른 카우치를 자청했다.

대충 짐을 내려놓고, 눈치볼 것도 없이 카우치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에이미와 제시도 자리를 잡고 이런저런 근황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에이미 부럽다. 뉴욕시티 한복판에서 살고 있다니...'

'에이 아니야. 돈도 너무 많이 들고. 오자마자 차부터 팔았다니까.'

대학시절부터 에이미는 BMW를 끌고 루이뷔통 가방도 몇개나 가지고 있었다. 금수저는 못 되어도 은수저 정도는 되는 에이미 이기에 작은 패션회사를 다녀도 이런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이다.

'월급이 절반이상이 아파트 값으로 나간다니까. 직업 하나로는 감당이 안돼. 그래서 부업도 시작했어.'

'부업?'

'응. 그래서 말인데 제시, 부탁 좀 해도 될까?'

'음...부탁?'

'응.  엄청 힘든건 아닌데, 내가 온라인으로 옷을 판매 하거든. 악세사리도 판매하고. 그래서 내가 개인 인스타에도 우리 옷을 많이 올리려고해. 그게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

'음...내가 도울게 뭐가 있지?'

'별건 아니고, 너가 뉴욕에서 여행하는 동안 우리 옷을 좀 입어줬으면 해. 네 맘에 든다고하면 내가 선물해 줄게. 대신 너와 찍은 사진을 너와 내 인스타에 올리고 우리 온라인 샾 태그를 걸게 해주지 않을래?'

'그래? 난 좋지.'

'고마워!'

제시는 흔쾌히 승락했다. 제시로써는 새 옷도 얻고, 손해볼 것 없는 제안이었다. 역시 에이미는 영리하다. 그렇게 올리면, 제시의 2천명이 넘는 팔로워에게도 저절로 홍보가 될 것이고, 본인 인스타도 더불어 인기가 올라갈 것이다. 에이미는 신나서 옷을 꺼내왔다. 인스타에서 흔히 보일 법한 의상들 이었다. 제시의 탄탄한 몸매덕분에, 좋게봐줘야 한국 지하상가수준의 옷들도 흡사 연예인의 의상처럼 보였다. 에이미는 입생로랑의 미니백까지 빌려주며, 연신 예쁘다를 외쳤다.

옆에서 그 둘을 바라보며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작가의 이전글 우선 살부터 빼고 오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