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의 What - 음식편
내가 처음 다이어트와 만난 건 <누구나 10kg 뺄 수 있다>라는 책이었다. 유태우 박사가 자신의 이름을 건 ‘유태우다이어트’에 대해 설명한 책이었는데, 이것은 ‘반식 다이어트’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공교롭게도, 혹은 마침 그 때 나는 내 몸에 있는 무언가들 중에서 딱 10kg만 어디 던져버리고 싶은 상태였다. 영양소를 유지하는 건강한 다이어트 따위엔 관심이 없었고, 그게 살이든 지방이든 근육이든 내장이든 영혼이든 뭐가 됐든 딱 10kg만. 내 키로 볼 때 난 60kg 정도면 적당한 체중이라고 생각하는데,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을 지나며 정확히 70kg을 찍었다. 어찌나 아름다운 명절이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을까. 물론 그 말과는 다르게 나는 몇 일간의 연휴 기간에 ‘덜도 말고’에만 초점을 맞춰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위 크기의 한계를 시험하며 그 한계를 넓히는 일에 성실하게 집중했던 것이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필요 이상으로 가지게 되면 어떤 정신 상태가 되는지 알 수 있었다.적정 체중보다 10kg 정도가 더 나가면 사람은 자신의 몸을 가장 최소로 움직여 가장 최대의 효과를 거둘 방법을 찾는 데 매우 탁월해진다. 영화 <고지전> 명대사 중 하나인 “최소한의 동선과 최대한의 집중”, 즉 최대로 효율적이 된다는 것인데, 쉽게 말에 매우 게을러진다는 것이다. 걷는 것을 포함해 땀이 날 수 있는 모든 움직임을 경계하고 철저히 배격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는 극도의 짜증이 나는 걸 보면 정신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기사님, 3보 이상 택시요.”
반식 다이어트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먹는 음식의 종류를 줄이거나 하나로 한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접근이 아주 쉽다. 첫 하루를 단식한다. 그 뒤로 자신이 먹던 양의 반만 먹는다. 끝. 그 외에는 물과 야채를 많이 먹으라는 것 정도? 첫날의 단식은 위의 크기를 줄여놓는 효과를 주며 이것이 이후 몸에 주는 신호탄이 된다. 이렇게 첫 3개월을 버티면 6kg이 빠지고, 그 뒤로 3개월 동안 4kg을 빼면 반 년 만에 10kg 감량이 가능하다고 한다.
선식이나 다이어트 식품 프로그램을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하다. 맛이 없어서. 그리고 아무리 맛있는 것이라 해도 하루 세 번씩 일주일 한 달 이상을 그것만 계속 먹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치킨도 그 정도 먹다 보면 족발도 먹고 싶어지는 게 사람 심리다. 그리고 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일과 부딪힐 때가 많다. 현대 인간은 먹는 걸 빼면 관계 유지가 안 되는 종족이다. “밥 한 번 먹자.”나, “커피 한 잔 할래?”는 가능하지만, “허벌라이프 쉐이크 한 잔 원샷 때릴래?”나 “우린 다 다이어트 중이니까 각자 착즙 주스 한 잔씩 가지고 두 시간 정도 이바구나 하자. 같이 우걱우걱 씹어먹을 견과류는 내가 준비할께.” 같은 대사는 웬만큼 특이한 감성을 지닌 자가 아니라면 함부로 내뱉기 어렵다.
반만 먹는다는 기본적인 원칙만 유념하면 응용이 쉬운 방법이다. 처음 부딪힌 사례는 비빔밥이었다. 뚜껑을 열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공기밥 위에, 호기롭게 숟가락을 꽂으며 반을 갈랐다. 반만 넣고 비볐더니 글쎄, 너무 짰다.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하지? 먼저 든 생각은 밥을 반을 갈라서 넣기 전에 야채를 반을 덜어내고 비비는 것이다. 하지만 뭔가 번거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공기밥 반을 가르는 것은 호연지기를 보여줄 수 있는 동작이지만(나, 반만 먹는 사람이야!), 야채의 반을 덜어내는 움직임은 뭔가, 소심해보였달까.(아니 제가요, 사실은 반만 먹는 사람이라서…)
해결책은 금방 도출되었다. 그것도 같이 밥을 먹던 지인이 알려줬다. 다 같이 비빈 후 반을 덜어내면 되지! 천재다. 일상에서 천재를 찾기가 이리도 쉬울 줄이야. 게다가 잘 비벼서 반을 덜어내면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도 있으니 사회적으로도 용인되는 방법인 것이다.
강력한 위기는 지인의 결혼식에서 찾아왔다. 와우, 어떻게 반을 먹지? 게다가 난 결혼식 뷔페에만 있는 탕수육과, 얼리다 못해 샤베트가 되어 있는 육회를 아주 좋아한다. 고급 중식당에는 전혀 공급하지 않고 결혼식장 뷔페에만 공급하는 대규모 체인이 있는 게 분명하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들 만큼 딱 결혼식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바로 그 탕수육. 그리고 고급스러운 육회에서 전혀 느낄 수 없는 아삭거리는 식감이 일품인 샤베트 육회. 내가 평소 음식을 저울에 달아서 먹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내 스스로 느끼는 포만감과 허기짐은 항상 사실을 배신하는데, 이걸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역시 해결책은 금방 도출되었다. 평소 네 접시를 먹으니 이젠 두 접시만 먹자! 그렇게 생각하니 이제 음식을 담는 일에 훨씬 더 집중하게 된다. 다음에 뜨는 접시에 더 담지 뭐, 같은 안일한 생각은 할 수 없다. 다음은 없어! 두 번째 접시가 마지막 접시라고. 마지막 접시에는 후식도 담아야 하고 떡도 담아야 하는데! (난 떡도 아주 좋아한다.) 중고등학생 시절에 피자집에서 접시단위로 팔던 샐러드바를 이용하는 것처럼, 일종의 적재 아트를 실행하듯 신중히 담으며 음식의 소중함을 새긴다.
약간은 정신승리 같은 웃긴 짓을 매일 매 끼니마다 반복한다. 평소엔 콜라를 두 잔씩 원샷 했으니 이제 한 잔을 두 번에 마신다든지, 평소엔 치킨 다리 두 개 다 내꺼였지만 이제 반을 나눠 하나를 양보한다든지 하는 식의 헛소리를 매일같이 하다 보면, 주변에서도 저 놈은 그냥 이상한 놈인갑다 이해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먹고 싶은 만큼 못 먹는 억울함도 조금은 풀리는 듯 하다. 그렇게 난 유태우 박사의 추천기간인 6개월을 매우 초과해 4개월만에 10kg을 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