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다이어트, 그런 건 없어. 그냥 인생이 다이어트야.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다섯 사람의 평균이다.” 약간은 요상시런 이 말을 다이어트에 대입해보면,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께서 다이어트를 시도한다면, 본인의 확신의 정도와 상관없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를 꽤 정확하게 예측하는 방법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도 매우 쉬운 방법입니다. 여러분이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다섯 사람을 마음에서 떠올려 보세요. 끝. 자, 어떤가요?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드셨나요? 아니면 관계를 정리해야겠다는 불안함이 드셨나요?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쉽지 않지만, 여행가보셨을 때의 기억을 한 번 떠올려 보세요. 나처럼 여행을 온 무리들을 보면서, 어쩜 저렇게 친구들이나 일행들이 다 비슷비슷할까, 그래서 같이 다니나 보다 하면서 흉 본 기억, 한 번쯤 없으신가요? (없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게 인격이 모나서 남의 흉이나 보고 다닙니다……)
메시지는 확실합니다. 사람이 결심을 이루는 데는 의지보다는 의외로 환경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 그리고 그 환경에는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지요. 나 혼자 있을 때는 내가 아주 특별하고 남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남들이 보기에 내 현재 상태는 주변 환경의 일부로 보여진다는 것. 그것도, 주변 다섯 사람 정도의 평균으로 말입니다.
이게 다이어트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계기입니다. 저는 마흔에 가깝도록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혹 어떤 이유로 단기간의 감량을 시도한 적은 있지만, 생활 속에서 다이어트를 하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오히려 ‘다이어트’라는 말에 들어있는 여러 정서와 쏟아지는 말들을 매우 부정적으로 느끼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우연한 계기로 다이어트를 하게 되면서 이게 나뿐 아니라 내 주변 많은 친구들에게 필요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먹는 것을 고민해서 조절하고,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 그로 인한 결과를 누리는 게 매우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걸 확신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개괄하는 틀을 잡고 글을 쓰게 된 계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건 제 배우자로부터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배우자가 여러 가지 주스를 몇 주 동안 꾸준히 먹는 디톡스를 한 적이 있는데, 2주 정도 지나고 나니 같이 지내는 제가 봐도 얼굴이 좋아지는 게 눈에 보이는 겁니다. 배우자가 말했죠. “나 이번 디톡스는 정말 좋은 거 같애.” 응, 진짜. 니가 말 안해도 그냥 보면 알겠어. 그거 정말 효과 있구나.
흥미진진한 일은 그 다음에 벌어집니다. 배우자의 친구들이 배우자를 만나면 거의 바로 너 뭐했냐, 그 디톡스 주스 어디서 샀냐, 어떻게 하면 되냐 질문을 쏟아내더니 다들 바로 시작하더라고요. 걸어다니는 광고판. 보여지는 얼굴 자체가 디톡스의 증거. 그것도 내가 늘상 알고 지내는 내 친구가 내 눈 앞에서 변화되었으니까 말이지요.
다이어트를 하려고 하면, 어디에서 기준을 찾으시나요? 허쓸한 보디빌더가 쓴 책? 헬스장 관장님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네, 다 좋습니다. 당연히 어설프지 않게 제대로 배워야 하고,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나랑 같이 지내던 친구가, 오랜만에 만났는데 상전벽해 괄목상대 몸이 완전 건강해져 나타난다면, 어떨 거 같으세요? 야, 너 내가 아는 걔가 맞니? 코찔찔이 어리버리 너 같은 인생 내가 친구 안 해주면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지낼까 싶던 니가, 이래도 되는 거냐고!
저는 풀코스 마라톤을 8번 완주했어요. 8년 정도 마라톤을 하고 있는데, 4, 5년 정도 될 때쯤 주변 사람들이 물어보기 시작하더라고요. 나도 풀코스를 뛸 수 있을까? 우선 하프만이라도 해볼까? 평범하디 평범한 저 같은 인간이 하는 걸 보면, 사람이 못할 일은 아닌가 보다, 싶은 그런 마음 아닐까요? 그럼 저는 신나서 대답합니다. 야, 아무나 다 할 수 있어. 그리고, 이거 완전 죽이게 재밌다!
다이어트를 1년 가까이 하면서 몇몇 가시적인 변화를 확인하게 되니, 또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신이 납니다. 너 다이어트 하는 거야? 효과 있어? 그럼 또 입에 침을 튀기며 떠들게 되지요. 야, 내가 하는 거면 아무나 다 할 수 있어. 그리고 이거, 완전 죽이게 재밌어! 그리고, 다이어트 하면서 먹는 치킨이랑 소주가 진짜 와따 짱이야!
다이어트 자격증을 보유했거나, 말도 안 되게 유명한 보디빌딩 대회에서 수상한 게 아닌, 그러니까 딱 들으면 와, 하고 알 수 있는 그런 자격으로가 아니라, 내 주변 친구를 놀라게 한 사람으로서 다이어트에 대한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어, 저 녀석이 한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 이런 만만한 친구, 여러분 주위에 한 명쯤은 있을 법한 그런 사람으로서 말이지요.
사이먼 사이넥의 명저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에는 What, How, Why로 이루어진 골든 서클(Golden Circle)이 나옵니다. 제가 한 다이어트에도 What, How, Why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그렇게 정리했습니다. 다이어트의 What은 식단과 운동입니다. How는 그 식단과 운동을 꾸준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고요. 사이넥이 골든 서클에서 사람들은 주로 What의 차원으로 이야기하지만 더 오래 지속가능하게 하는 힘은 Why에서 나온다고 하지요. 마찬가지로 다이어트에서도 Why가 중요합니다. 저만의 Why를 정리했는데, 그게 각자의 소중한 Why를 찾는 일에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양해를 구하는 변명을 좀 해두는 게 좋겠습니다. 친환경과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저 스스로의 자격지심입니다. 저의 다이어트 이야기는 매우…… 육식적입니다. 완전한 채식이 지구를 살리는, 적어도 지구를 보존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현재 제 상태는 그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사십 년 가까이 살아오며 채식이라는, 식단을 넘어 삶의 방법을 안 지는 2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다이어트를 하면서 더 건강한 재료의 음식을 많이 찾게 되었는데요, 이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완전한 육식이 0이고 완전한 채식이 1,000이면 저는 한 37정도 가고 있다고요. 되돌아서지 않는 한 어제보다는 나아질 거라는 믿음입니다.
다이어트는 아무래도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것에서 자유롭기가 어렵습니다.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움이나 나 스스로의 자유로움이 아닌, 세상이 나에게 잘못 주입한 가치관으로 나 자신과 타인을 판단하는 다이어트라면, 그 길 끝에서는 물론이고 그 길 중간에서도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호주 해변에서 봤던 어떤 여자분이 생각납니다. 나이가 적어도 육십은 넘어 보이셨는데, 외양은 뭐랄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부러워하는 연예인의 체형과는 많이 거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네, 사실 체중이 아주 많이 나가 보였다는 말입니다. 비키니 차림에 긴 가디건을 두르고, 해변에 어울리는 멋진 밀짚모자에 썬글라스를 낀 그 분은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해변에서, 망사로 얼기설기 엮은 듯한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내시더니 돗자리에 엎드려 한참을 읽으셨습니다. 그러더가 책을 내려놓고 가디건을 벗어둔 뒤, 바다로 들어가 또 한참 물을 즐기셨지요. 다시 해변으로 돌아와 책을 좀 더 읽으시더니, 일어나서 짐을 챙기고 가셨습니다. 타인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는, 바다와 책과 나 자신만으로 완전했던 쉘리 비치의 그 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식단도, 체형도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남과 비교하기 위함도 아니지요. 남들이 먹는다니 나도 뒤질세라 먹어보고, 아무래도 보기 흉한 것 같아서 몸을 가리고 바꾸는 것은 제가 좋아하는 다이어트는 아닙니다. 지속가능하지 않을뿐더러, 혹 불굴의 의지로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과정이 그리 즐겁지는 않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잘못된 문화적 감성, 왜곡된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져서, 진짜 나 자신을 발견하고 이해하고 드러내는 다이어트를 하고 싶습니다. 이 글의 끝에서 그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맛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