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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크 Oct 15. 2020

무엇을 먹을 것인가
–다이어트를 성공시키는 마법의 음식

다이어트의 What - 음식편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습니다.” 프랑스의 법관이자 미식가로 알려졌던 장 앙텔름 브리야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이 한 말이라고 한다. 너무 멋진 말이다. 어디 유명 레스토랑에 어울릴 법하다.

          프랑스 사람이니 아마도 프랑스말로 했을 테지만, 저 말을 프랑스말로 기억하는 것은 고사하고 우리는 이미 지금 저 위 문단에 써 있는, 저 말을 했다는 사람의 이름조차 기억하기 어렵다. 나 역시 저 멋진 말을 어느 레스토랑 메뉴판에서 처음 봤지만, 이 글에 인용하기 위해 인터넷을 백방으로 뒤져야 했다. 물론 곧 까먹을 것이다.


          저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프랑스어 사전을 뒤지기 보다는, 한글로 해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니 그냥 생각해보자. 저 말은 맞는 말일까? 그럴 듯한가? 나라는 사람이, 한 인간이 얼마나 복잡미묘한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가. 나를 아주 잘 아는 친구도, 몇 십 년을 함께 해온 반려자도 날 몰라주는 것 같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인간보다 인간을 잘 안다는 인공지능은 어떤가? 사고 싶은 상품이 있어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결국 큰 맘 먹고 구입했는데, 아직도 내가 검색했던 품목의 광고가 따라다니며 클릭을 갈구하고 있지 않은가. 인공지능도 내가 뭘 찾고 있는 줄은 알지만 내가 그걸 샀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다. 결정적으로, 몇 십 년간 나와 가장 오래 함께 지내온 내가 날 모른다. 그런데 꼴랑 내가 먹는 걸 알려주면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걸까?

          독일 출신 유물론자인 루드비히 포이어바흐는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물론 독일어로 했을 것이지만… 어쨌든 우리의 고민은 언어를 떠나서 문장에 담긴 의미 자체에 있다. 무언가를 먹으면 그것이 여러 과정을 거쳐 내 몸의 일부가 된다. 좋은 음식은 내 몸을 좋게 해주고 나쁜 음식은 내 몸을 조금은 나쁘게 만들 것이다. 프랑스 미식가가 했던 말과 의미는 비슷하지만, 유물론자가 했다고 하니 이젠 뭔가 철학적인 의미까지 드러내는 것 같다. 정말로 나라는 존재 자체는 결국 먹는 것인 걸까. 게다가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것은 다이어트인데, 이제 다이어트를 성공시켜줄 완벽한 마법의 음식을 찾아내야 할 것 같지 않은가.


          <슈퍼 사이즈 미(2004)>라는 영화가 있다. 모건 스펄록이라는 감독이자 주연배우가 한 달간 맥도날드 햄버거만 먹으며 자신의 변화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다. 스펄록의 체중은 10kg이상 증가했고, 우울증과 구토, 성기능 저하 같은 여러 다른 안 좋은 효과들을 경험하면서 미국의 패스트푸드와 비만 문제에 대한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많이 알려져 있듯 논란도 많다. 맥도날드가 아니라 몸에 좋은 음식도 하루 세끼 한 달을 먹으면서 운동을 하지 않으면 누구나 살이 찐다든지, 다이어트 하려는 사람이 햄버거를 저열량이라고 생각하며 먹는 사람은 없다던지… 이 글은 영화분석이 아니므로 난 그런 논란에는 관심이 없고, 단 한가지,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라는 게 사실이냐는 것이다. 맥도날드만 먹으니 사람이 맥도날드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이어트라는 것은 표현은 하나지만 그 안에 셀 수도 없을 만큼의 많은 의미를 가진다.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보다는 올 여름 새로 산 수영복과 함께 자신 있게 보여줄 체형을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도 있고, 단순히 감량이 목적인 사람도 있다. 약해진 뼈와 관절을 감싸주기 위한 재활의 일환으로 다이어트를 이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제 기분이 좋아 치킨 한 마리 반을 혼자 원샷한 것에 대한 사죄의 뜻으로 “오늘 점심은 다이어트!”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맥도날드를 햄버거가 좋아서 먹는 사람도, 감자튀김이 좋아서 먹는 사람도, 맥모닝이 좋아서 먹는 사람도, 또 영화를 찍기 위해 먹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비만이라는 주제가 현대인의 관심사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타파해야 할 현상이 된 것은, 최소한 건강하지 못한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길게 봐도 백 년이 안 된다. 대부분 마르고 굶주리며 보내왔던 수렵시절까지는 너무 많이 갔다고 해도, 적당히 두툼한 살집과 피부에 흐르는 윤기가 부의 상징이며 소수의 전유물인 때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당연히 지금의 우리처럼, “다이어트는 평생 하는 거지. 친구 같은 거야.”라고 자조하는 분위기가 생긴 것도 오래 되지 않았다. 아깝다, 그 때 태어났어야 하는 건데.


          내가 반식 다이어트를 좋아했던 이유는 특정한 음식만 주구장창 먹어야만 한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다이어트에 좀 더 좋은 음식이 있고, 좀 더 안 좋은 음식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어떤’ 음식을 먹는가 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음식을 ‘어떻게’ 먹는지와 ‘왜’ 먹는지 이다. 어떤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졌는지 재료를 이해하는 사람이 아주 정성스럽게 만들었는지, 그 음식을 내가 어떻게 먹는지, 알고 먹는지 모르고 먹는지, 그 음식을 내가 맛있게 먹는지 마지못해 먹는지, 나만 좋으려고 먹는지 주변과 나누려고 먹는지에 따라서 똑같은 음식도 수 천 가지의 모습으로 달라진다. 마치, 한 사람의 다양성이 그러하듯이. 바로 나와, 당신처럼 말이다.

          어떤 음식이든지 개인에게 흡수될 때는 차이가 있다. 저 사람에겐 그 음식 이름 앞에 ‘인생’을 붙여가며 죽기 전에 꼭, 그 곳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해서 블로그를 도배하는 음식이라 할지라도 내겐 안 맞을 수 있다. 또 음식은 조합이 중요하지 않은가. 치맥, 피맥, 회쏘, 곱쏘, 양꼬치엔 칭따오, 낙곱새, 오삼에 쭈삼 불고기, 또 한국인들은 모든 요리 끝에 볶음밥을 꼭 철판에 탕탕탕 뒤집은 후 치즈를 올려 먹어야 하지 않는가. 게다가 같이 먹는 사람들과의 조합까지 고려한다면, 다이어트에 맞는 음식을 찾는 일이라는 것은 훨씬 더 많은 요인들이 어우러져 오묘하고 아름다우며 아직도 발견할 것이 끝도 없는 우주 같은 영역인 것이다.

          그래서 결국,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라거나, 당신이 먹는 음식이 곧 당신의 다이어트라고 말하기가 망설여진다. 이것은 부정이 아니라 확장이다. 당신은 당신이 먹는 것 그 이상의 존재다. 그리고 당신의 다이어트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를 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세계다.


          그래서 조금은 단호하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다이어트를 반드시 성공시키는 마법의 음식은 없다고. 인생의 다른 주제와 마찬가지로, 다이어트 역시 정답을 알아내서 실행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믿는다. 어떤 음식이 나에게 맞는지 아닌지를 찾아가는 과정 또한 다이어트의 결과보다 훨씬 중요하고 의미 있다. 그 과정에서 내 몸에 대해 알고 배우고 그렇게 내 몸을 존중해가는 과정은 몇 킬로그램의 감량과 바꾸기 힘들 정도로 즐거운 일이다. 내 몸의 소리를 듣고 응답하며 소통하는 과정은, 몇 십 년을 동행했지만 여전히 잘 모르는 나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다이어트를 통해 인생을 깨달아간다고 하면 글쎄, 너무 오바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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