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의 What - 음식편
한 명의가 죽었다. 죽은 뒤 그의 서재에서는 <의학사상 최고의 비밀>이라는 책이 발견되었고 경매에 붙여졌다. 어느 한 부자가 매우 비싼 가격에 이 책을 낙찰 받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열었으나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다만 맨 뒷장에 작은 글씨로,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머리는 차게, 발은 따뜻하게 하라. 그러면 당신은 모든 의사를 비웃을 수 있을 것이다.”
약간은 누가 지어낸 거 아닌가 싶기도 한 이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네덜란드의 임상의학자였던 헤르만 부르하버의 이야기이다. 헤르만 부르하버는 1668년에 태어나 1738년에 죽었고 독일의 슈탈, 호프만과 함께 체계학파의 3대 대가 중 한 사람이라고… 위키피디아에 적혀있다. 이는 부르하버보다 조금 앞서 살았던 허준(1539~1615)이 지은 <동의보감>에도 ‘두한족열’(頭寒足熱)’이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다. 부르하버의 책의 경매가는 당시로는 엄청난 값이었던 2만 달러 이상으로 낙찰되었다 하고, 뒷 부분 표현은 의사가 할 일이 없어질 것이라는 등 조금씩 다른 여러 표현을 (검색하면) 찾을 수 있지만, 핵심적인 의미는 동일하다. 건강하게 살고 싶으면 머리는 차게, 발은 따뜻하게 하라.
다이어트에 좋은 음식을 말해보려는 주제에 네덜란드와 조선의 의사를 언급하는 이유는… 당신은 이미 뭐가 좋은지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다. 그 때 당시에야 대단한 지식일 수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현대 한국인이 저런 걸 몰라서 건강하지 않은 걸까? 우리는 이제 코로나 등의 변종 바이러스와 싸우다 못해 같이 지내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두한족열을 요즘 버전으로 바꿔본다면, K-방역으로 전세계에 이름을 떨친 중대본의 ‘코로나19 완전예방 기밀문서’에 이렇게 적혀있는 걸 상상해볼 수 있다. “마스크를 꼭 착용하고, 손을 30초 이상 자주 씻으셔요.” 아, 한 줄 더 허락된다면 “2m 거리를 유지하시고, 아프면 쉬세요.” 정도?
아파서 병원에 가면 의사한테 듣는 말이 “술, 담배 하지 마시고, 커피랑 치킨도 줄이시고, 따뜻한 물 많이 드세요.”라서 불만이었던 사람 있는가? 저런 말만 할 거면 나도 의사하겠다는, 의사 선생님들이 들으면 격노할 빈정거림을 내뱉었던 적은? 나도 아는 거야!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라고! 수수께끼는 여기서 시작한다. 모르지 않았는데 왜 당신은 병원에 갔는가?
그런 의사선생님 같은 말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좋은 음식 따위를 열거하는 일이 꺼려진다. 음식을 말하기 전에 꼭 언급하고 싶은 건, 이미 당신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음식은 What의 영역이지만 다이어트는 What을 포함해 How와 Why를 포괄한다. 어떤 음식이라도 어떻게, 그리고 왜 먹는지가 더 중요하고, 그 방법과 이유는 남의 조언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오롯이 나 자신만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결정이다. 기억해라, 당신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것이다. What에서 시작해서 Why가 달라지거나 새로워지는 일도 인생에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니까, 내가 다이어트를 하며 도움이 되었던 음식들을 열거해보겠다. 첫 번째는 과일이다.
이십 대와 삼십 대 중반까지 난 과일을 참 안 먹었다.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같은 값이면 제육볶음’이라는 원칙이 앞섰을 뿐이다. 과일의 왕이라 불리는 두리안을 처음 먹었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맛은 있는데, 훗, 지가 왕 이어봐야 과일이지, 정도의 느낌이었다. 고구마를 얼려서 먹는 것과 큰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내 미각은 고기주의자였다.
이 원칙이 깨진 것은 류은경 선생님의 <완전 소화>를 읽고 난 다음이었다. 이 책 자체가 아주 훌륭한데, 흥미가 있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국립암센터와 서울대학교 의학연구원에서도 일했던 류은경 선생님은 올바른 식사법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체내 독소를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에 걸맞게 영양소와 인간 영양 상태에 대한 귀중한 지식들이 책에 아주 많다. 하지만 난 (늘 그렇듯이)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단 하나만 새겼는데, 그게 바로 “식전 과일, 불로장생”이다.
과일에는 체내에서 합성하지 못하는 비타민이 풍부하다. 좋은 단백질도 고기보다 풍부한 편이다. 흔히 칼로리가 많다고 여겨지는 바나나 같은 과일이 백미보다 칼로리가 적다. 무엇보다 바나나는 한 자리에서 두 개 세 개 먹는 게 쉽지 않은데, 밥은 한 공기만 먹으면 아쉬운 감이 있지 않은가? (나만 그렇다고?)
사과부터 시작해봤다. 하루 사과 한 알을, 아침에 먹는다. 과일은 내 돈 주고 사본 적이 없어서 어디서 어떻게 구매해야 되는 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난 현대의 택배정국의 수혜자다. 기사님들의 고단한 삶과 불합리한 처우, 지구를 오염시키는 배기가스 배출에 기여하는 것이 안타깝고 죄스럽지만, 책 덮은 날 저녁에 주문해서 다음날 새벽에 과일을 먹을 수 있는 배달문화의 신문명. 택배왕국 대한민국, 사랑합니다.
새벽(같은 시간)에 일어나 사과 한 알을 식탁에 올려 놓고, 손 씻고 과도 들고 사각사각 깎아먹는 일은, 약간은 도를 닦는 느낌을 준다. 내가 먹으려고 내 돈 주고 과일을 사본 것도 신기한 일인데, 스스로 과일까지 깎고 있으려니 나이 사십 먹도록 뭐하고 살았나 싶은 심정과 이제라도 사람이 되가는 것 같아서 기특한 마음이 같이 일어난다. 그래, 나 칭찬해. 배고플 땐 과일이라도 깎아 먹을 줄 알아야 나중에 삼식이 안 될 것 같고, 그래야 와이프가 계속 같이 살아줄 것 같다. 이 칼질은 나에게는 작은 칼질이지만, 내 결혼 생활에는 위대한 도약이다.
그렇게 낯선 과정을 통과하며 한 입 베어 문 사과는, 놀랍게도, 맛있다! 사과는 맛있는 거였구나. 흘러내리는 한 방울 과즙이 효소 덩어리인 것 같은 착각에 후루룩 쩝쩝 남김없이 흡수한다. 이 광경을 본 아내는 “무슨 사과를 국밥처럼 먹냐”는 말을 남겼다.
현재는 아침에 사과 한 알과 구운 계란 한 개, 점심에는 바나나와 샐러드를 먹는다. 아침 사과 한 알을 시작한지 일주일이 안되어 화장실에서 ‘인생 변’을 봤다. 이렇게 뒷맛이 깔끔하고 질척이지 않는 변이라니. 소위 말하는 ‘바나나똥’을 내 눈앞에서 보는 진기한 경험을 했다. 장 활동이 건강한 상태이고 잔변감이 없는 상태의 똥을 바나나똥이라고 하는데, 물에 떨어지면 다시 떠오른다. 난 지금까지 똥은 무조건 깊숙히 가라앉는 것인 줄 알았는데, 청량한 ‘똥’ 소리와 함께 잠시 밑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빠꼼히 얼굴을 내미는 똥을 보는 건, 매우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음식을 말 그대로 ‘처’ 먹으면서 살아왔는지, 그리고 단 일주일 만에 이런 놀라운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지가 동시에 드러나는 무대, 바로 화장실. 이 똥은 나의 작은 똥이지만, 인류에는 위대한 도약이다. (왜?)
과일에 과문한 탓에 사과와 바나나만 규칙적으로 먹고 있지만, 좋아하는 과일을 다양하게 탐색해보는 일도 즐거운 일일 것 같다. 제철 과일을 챙겨 먹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난 아침은 과일로 해결하지만, 쌀이나 빵 류를 먹지 않으면 허기진다는 분들이 있다면, 얼마든지 식사와 같이 먹어도 좋다. 다만 꼭 식전에 먹어야 불로장생이라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식전에 먹는 과일은 적절한 포만감을 주어 이후 과도한 섭취를 막아줄 수 있고, 대신 영양소의 섭취는 줄이지 않는다.
가수 비 같은 몸짱이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도, 조금 더 건강한 몸을 가지고 싶다는 목표로 다이어트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과일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화장실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스스로를 대견해할 수 있다. 부르하버의 말을 빌자면, “매일 과일을 먹되, 식전에 먹어라. 그러면 당신은 바나나똥 외에 모든 똥을 비웃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