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가끔은 꼬질한 흰 털에 검은콩 세 개. 뒷다리에 비해 앞다리가 짧아 옆에서 보면 엉덩이가 더 높은 우리 강아지. 맨날 보는데도 볼 때마다 귀여워서 옆에 두면 도통 뭘 할 수가 없다.
방문을 오래 닫아놓았다가 나오거나, 쓰레기를 버리러 잠깐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10년 만에 상봉한 이산가족처럼 반겨준다. 화장실에 가면 그 앞에 엎드려 나만 쳐다보고, 소파에 누워 자면 내 옆에 등을 기대어 함께 잠을 잔다. 밖에 나가려고 양말을 신고 겉옷을 입으면, 혹여나 떼놓고 나갈까 봐 낑낑거리기 시작한다. 주말 아침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시간이 늦어지는 날에는 굳이 얼굴 쪽까지 와서 낑낑거리며 잠을 깨운다.
얘를 사랑하지 않는 방법은 이 세상에 없다. 빠안히 쳐다보는 동글한 눈동자를 보며, 난 왜 이 강아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이 세상에 귀여운 강아지는 얘 말고도 많은데.
세상이 우리를 갈라놓지 않는 한, 지금 얘가 주는 사랑은 그대로일 것임을 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날 바라보고 있을 거고, 꼬리를 흔들어줄 거라는 사실을 예측할 수 있다.
예측 가능성
우리가 누구한테 단순 호감 이상의 사랑을 줄 수 있는가를 고민해 보면 그러한 예측 가능성에서 비롯된 안정감을 주는 누군가가 아닐까 싶다. 늘 나만을 바라보고, 언제든 날 사랑할 거고, 늘 내 편일 거고, 늘 귀여울 거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 그래서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사랑해“ 소리가 절로 나오는.
반대로 적용해 본다면, 내가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싶다면 상대가 이런 느낌을 받게 해야 할 것 같다. 상대가 나의 현재와 미래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늘 귀여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