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Unsplash의Yun Cho
해가 지는 방향을 따라 걷기로 결심한 건 이를테면 ‘마지막 미련’ 같은 것이었다. 아빠가 집을 나간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는지 셀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정서는 사람의 기억이 이렇게까지 빨리 휘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빠가 떠난 후 2년 만에 깨달았다. 목소리는 귀에 선하지만 웃을 땐 어떻게 웃었는지, 말씨가 어땠는지, 어떤 표정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세세한 것들이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라져갔다.
처음 몇 년간은 아빠가 그리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워하지 않는 편이 살아가는데 조금 더 편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아빠라는 존재를 깎아내리며 웃음거리로 만드는 게 훨씬 더 수월했다.
하지만 친구들이 아빠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마음이 내려앉는 것은, 한 부녀가 손을 잡고 걷는 걸 볼 때마다 눈길이 자꾸만 가는 것은 정서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몇 주 전, 휴대폰으로 SNS를 들여다보던 정서는 본인에게 아빠가 아직도 필요한 존재이며, 아빠를 사무치게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서른을 넘은 나이에도 자신을 버린 아빠를 보고 싶어 하는 게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아주기로 했다. 화면에는 친구가 아빠와 함께 시드니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그날로 정서는 급히 짐을 싼 다음 밖으로 나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해가 지는 방향으로. 해를 따라 움직이면 시간이 조금은 느리게 흐를 것만 같았다. 아빠가 정서를 버리고 집을 나간 시점으로부터 조금은 덜 멀어질 것이었다. 한 곳에서 가만히 서 있는 정서와, 해를 쫓는 정서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며칠간 이어져 온 발걸음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걷다 보니 어느덧 평창에 다다른 사실을 알게 됐다. 정서 아빠의 고향. 아빠가 술에 취할 때면 종종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던 동네. 어쩐지 아빠라면 여기에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하던 찰나였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정서의 입이 일그러졌다. 눈물이 고이려 해서 짧게 눈을 감은 뒤, 마음이 진정됐을 때 천천히 떴다. 그리곤 혹시나 남자가 본인을 쳐다보고 있는 건 아닐까 살짝 곁눈질했다. 남자의 허벅지 위에 놓인 큰 손이 움찔거렸다. 고개를 서서히 들자, 남자의 입이 조금씩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정서의 시선은 남자의 입가에 들러붙어 도저히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자의 혀가 천천히 잇몸을 훑는 중이었다. 인중과 아래턱이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듯 울룩불룩거렸다. 정서가 “헉”하고 짧게 숨을 들이켰다. 풀벌레가 찌르르 울 때마다 심장이 함께 진동하는 것 같았다.
정서는 할머니와 단둘이 사느라 형편이 녹록지 않았다.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생이라고 속인 채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다른 친구들은 방학 때 가족들이랑 국내 여행을 다녀왔네, 해외여행을 다녀왔네, 정신없을 동안 정서는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잠깐 숨을 돌릴 틈이 찾아올 때면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이니 ‘지원 사업’ 같은 말은 친구들에겐 필요 없는 단어라는 사실이 마음을 꽉 움켜쥐었다.
마지막으로 아빠가 온 날을 정서는 정확히 기억했다. 곧 18살을 바라보던 해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집 안에 들어오니 꼬질꼬질하고 커다란 신발이 하나 놓여 있었다.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녹초가 된 정서는 그 신발을 보자마자 어디서 힘이 생겨난건지 방 안으로 곧장 뛰쳐 들어갔다.
“아빠?”
좁은 방에는 할머니와 아빠가 마주 앉아 있었고 둘 사이에 통장이 하나 놓여 있었다. 정서가 꼬박꼬박 아르바이트해서 할머니에게 맡겨 둔 것이었다.
“며칠 전에 치과를 갔는데 아빠 잇몸이 무너졌댄다. 임플란트해야 한다네.”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빠는 그 말마저도 할머니의 입을 빌려 양해를 구했다. 정서는 싫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본 아빠에게, 아픈 아빠에게 그 돈을 주지 않는 건 나쁜 짓 같아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일 크리스마스니까 선물 사왔어. 자, 너 아기 때 아이스크림 케이크 먹고 싶다고 떼썼던 거 기억나니.”
정서의 아빠는 네모난 케이크 상자를 잡고 살짝 흔들었다. 정서는 살짝 눈이 커진 채로 다가갔다. 하지만 자세히 확인하니, 본인이 원했던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에서 판매하는 그런 케이크는 아니었다. 그냥 동네 작은 제과점에서 일반적인 케이크를 냉동실에 얼려둔 것을 아이스크림 케이크라고 판매하는 것이었다.
실망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멋쩍게 아빠가 덧붙였다.
“우리가 생각하던 그런 건 아니네, 그치.”
그리곤 케이크 상자 옆에 붙어 있던 작은 옥색 거울을 내밀었다.
“사은품이라고 주더라.”
할머니와 정서, 아빠는 침묵 속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이했다. 아빠가 집을 나서며 정서의 머리에 손을 살짝 얹었다. “너는 양치 꼬박꼬박해야 한다. 귀찮다고 빼먹지 말고.” 그것이 아빠에게서 들었던 마지막 말이었다.
‘아니겠지…. 너무 말랐는데. 키도 작고. 흰머리도…….’
계속 남자의 손과 입 주변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느라 정서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남자가 다시 한번 더 혀로 천천히 잇몸을 훑었다. 그리곤 정서를 쳐다봤다. 눈이 갈 곳을 잃어 계속 마주쳤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쏴…….”
남자의 머리칼이 눈가에서 흔들렸다.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건지, 눈이 함께 흔들리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정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천천히 고개를 돌린 후 메밀밭을 바라봤다. 남자도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메밀꽃밭에서 시원한 마찰음이 일었다. 저 멀리 검은 산 능선이 보였다. 밤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어쩌다 스쳐 지나갈 때면 터벅터벅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이내 멀어졌다.
한참 넋을 놓은 채 메밀꽃밭을 바라보던 정서는 정신을 차렸다. 남자가 아주 느릿느릿하게 일어나 엉덩이를 툭, 툭, 털고 있었다.
“이제 슬슬 가봐야 할 거 같아요.”
말과는 달리 남자는 선뜻 발을 떼지 않고 한참을 서 있었다. 남자가 메밀꽃밭을 둘러봤다. 마지막 시선은 정서에게 가 닿았다. 남자는 솥뚜껑 같은 큰 손을 정서의 머리 위에 살짝 얹었다.
“달이 휘영청 하네요.”
남자는 곧바로 손을 떼곤 천천히 메밀꽃밭 입구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둘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정서는 손을 꽉 쥐었다. 하얗게 질린 손 틈으로 땀이 비죽 새어 나왔다.
“아….”
오랜만에 불러보는 두 글자는 목에 걸린 채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정서에겐 사어(死語)와도 같은 단어라 그런지 반발감이 심하게 들었다. 심장에서부터 두 음절을 꼭 붙잡고 놔주지 않는 것 같았다. 남자는 계속해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끈질기게 눈으로 좇던 정서는 겨우겨우 입을 벌렸다.
“아빠!”
외치는 순간에도 마음 한구석에선 저항감이 치덕거렸다. 남자는 들은 건지 아닌지, 잠시 멈춰서더니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멀어지는 틈을 풀 향기가 가득 채웠다. 정서는 천천히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아직 남자가 살짝 실었던 무게가 남아 있었다.
하늘을 바라봤다. 환하게 뜬 푸른 보름달에 눈이 부셨다. 그 아래로 펼쳐진 밤의 메밀꽃밭은 검은 배경에 수채화를 그리듯 초록과 흰색의 경계선이 흐릿하게 퍼져 있었다.
“으….”
이윽고 정서의 목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몇 초간 끅끅 소리를 내며 정서는 본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구… 구… 국 국….”
화답하듯 멧비둘기가 울었다. 정서는 눈을 감고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도록 한동안 놔두었다. 멧비둘기가 다섯 번 정도 울었을 무렵에야 소매를 끌어당겨 눈물을 닦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정서는 달빛을 환하게 반사 중인 메밀꽃밭을 눈에 담았다. 눈물이 각막을 한차례 씻고 내려간 뒤라 모든 것이 선명히 보였다. 숨을 깊게 들이쉰 후, 정서는 남자가 사라진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걸음이 서서히 빨라졌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이번엔 달리기 시작했다. 정서가 일으킨 바람 사이로 소금을 뿌린 듯 환하게 빛나는 꽃들이 하느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