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자
이 모양 저 모양 제각각 다르게 생긴 실내 식물들을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거실 창문 앞에 작은 온실을 만들어 돌보는 재미에 한동안 빠져 지냈다. 건강할 때엔 물 주고 사랑 주고 마음도 기꺼이 주었으나 아플 때에는 그것이 큰 일거리가 되어 짐스러웠다. 하나 둘 시들시들 해지다가 말라버려 화분 개수가 반의 반 토막으로 줄었다. 사람도 죽고 사는데 식물도 죽고 사는 거지 어쩌랴. 그나마 곁에 남아준 식물들이 고마워 다시 물 주고 사랑 주고 마음도 주고 있다. 신통하게도 머니트리로 알려진 식물들은 굳건히 견뎌주었다. 파키라와 금전 수, 그리고 코인트리. 편애함 없이 모두 다 사랑 하리 했어도 깊숙이 숨겨진 재물에 대한 욕망이 알게 모르게 전해졌던 것일까. 이제는 예쁘다고 자꾸 들여올 게 아니라 있는 애들이나 잘 돌봐야지, 키우는 재미를 보려 하지 말고 들여다보는 것을 재미 삼겠다고 마음먹었다. 풍성하게 잘 키워 놓은 코인트리를 보여주며 ‘몇 달 만에 우리 아기가 이렇게 컸어요!’라고 하는 유튜브 동영상에 낚여 다섯 달 전에 온라인으로 아주 조그만 코인트리를 주문했다. 밤사이 줄기가 마구 자라 나오고 코인 잎이 마구 나와 잭의 콩나무처럼 자라 줄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반년이 다되어 가는데 여전히 아기인 채로 있는 코인트리가 성에 안 차서 유튜브의 그들은 걔네들을 얼마 동안 어떻게 키운 것일까 빨리 잘 자라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욕심이 생기기에 거기서 스톱하고 그저 들여다봄만을 하고 있다. 그에 비해 두 그루의 금전 수는 옆으로 위로 잘 자라 주고 있다. 물을 못 줘서 잘 자랐나 보다. 이런 식물들이 데리고 살기 편하다. 작년에 발코니 농사를 지으면서 식물화분들에 물을 퍼다 날아 주느라 고생 많이 했다. 강한 여름 햇볕에 식물 이파리들이 탈 새라 하얀 이불 홑청으로 낮게 그늘 막까지 쳐주었었다. 하루 걸러 한 번씩 아침마다 발코니에 빼곡하게 차있는 칠팔십 개의 깻잎화분들과 각종 허브화분들에 물을 주는 일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발코니라 수도시설이 없어 커다란 플라스틱 컨테이너에다가 부엌 수도에서 물을 받아 낑낑대고 옮겨 놓고는 바가지로 물을 퍼서 쳐놓은 그늘 막 속으로 허리를 굽혀 기어들어가 발 디딜 틈도 없는 화분들 사이로 곡예를 하듯이 옮겨 다니며 물을 주었다. 그렇게 너덧 차례 그 무거운 물을 길어 옮겨가며 발코니 밭 농사일을 하고 나면 팔과 다리, 그리고 허리까지 아팠으며 숨도 차고 땀까지 뻘뻘 흘렸다. 도대체 이 짓을 내가 왜 하고 있는 것일까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죄 다 가위로 썩뚝썩뚝 잘라내고 화분을 몽땅 없애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한데 싹을 틔워 모종을 내고 그 많은 화분과 흙을 사다가 엘리베이터도 없는 삼층까지 죽을 둥 살 둥 지고 올라가서 화분을 만들고 쏟아온 정성과 노동이 아까웠고 늦가을이면 소멸될 채소들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거둬들일 수는 없었다. 하루나 이틀 물주는 일이 늦어져 바싹 마른 화분의 흙을 보게 되면 따라서 내 목까지 말라서 타는 듯해 귀찮고 힘들어도 컨테이너에 물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마당이 있으면 물 주기가 수월해서 이런 생고생은 없을 텐데 싶었으나 물 주기 쉽다고 텃밭 가꾸는 것이 거저먹기는 아닌 듯싶다. 재미 삼아 조금만 해보는 정도여야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괜히 욕심부리면 사서 고생이다. 물론 농사 많이 지어 지인들한테 나눠주는 것도 좋은 일이긴 하지만 그것도 젊어서 기운이 펄펄 남아돌 때의 얘기다. 친구의 친구인 백인 아저씨는 텃밭을 만들어 호박을 심었는데 잘 자라 꽃을 피우더니 조랑조랑 귀여운 호박 열매가 알알이 맺혀 처음에는 보기에 좋았단다. 호박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커져 앞집과 옆집, 그리고 뒷집 사람들에게도 나눠 주며 즐거웠는데 멈추지 않고 계속 자라나는 호박들을 먹든 안 먹든지 간에 거둬들여야 했다. 크고 무거운 호박들을 따서 옮기는 것도 일인데 이웃들까지 더 이상 호박을 반가워하지 않자 버릴 수도 없어 냉장고에 넣어 보관을 하다 보니 집에 있는 냉장고란 냉장고는 호박들이 다 차지하고 냉동 칸까지 호박들이 점령해버리게 되었다. 결국 처치 곤란해져 버린 호박들을 몽땅 차에 실어 가축 농가의 사료로 쓰라고 가져다주고 호박과는 영영 인연을 끊었단다. 레스토랑에 가서도 호박이 들어간 요리는 절대로 안 시킨다고. 오래전에 엄마와 오빠는 금촌 시골집으로 이사를 들어가면서 야심 차게 텃밭농사를 시작했다. 처음이라 욕심껏 이것저것 씨 뿌리고 모종도 사다가 심었는데 날이 더워지자 상추는 너무 빨리 자라나 와 뜯어먹는 속도를 앞질렀다. 삼시세끼 상추만 먹는 것도 아닌데 식구들이 먹어야 얼마를 먹겠는가. 느이 오빠가 퇴근 후에 매일 물 주고 돌본 것이 아까우니 많이 뜯어다가 친구들에게 나눠주라며 엄마는 내게 성화를 했다. 더운 여름 모기와 싸워가며 밭에서 상추를 뜯는 것도 일이었다. 커다란 김장용 비닐에 가득 담은 상추 보따리를 끌고 그날따라 일산에서 강남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야 했는데 성가신 데다가 무겁기까지 해서 이런 짓을 왜 하는가 싶었었다. 자기 식구 먹을 만큼만 해야지 욕심부려봤자 고생이고 손해다. 그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고 그냥 가만히 멍 때리고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말자. 지난 늦가을 들깨 씨앗 받으려고 발코니 한구석에 채반에 올려두고 말리던 깻봉오리들이 어느 날 종일 불어대던 강한 바람에 함빡 날아가 버렸다. 계절이 다시 오고 있으니 씨앗에 싹을 또 틔워보고 싶어 진다. 친구에게서 들깨 씨를 조금 얻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