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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명 Aug 16. 2019

벼의 몫



오늘 푸른 벼들이 바람에 흔들려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걸 봤습니다. 여린 몸짓이지만 나름대로 물결을 이뤄내는 것은 언제나 마음을 일렁이게 합니다. 참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 여리고 어린 벼들이 가을이 되면 누렇게 변해 낟알을 쏟아냅니다. 벼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뿌리를 제외하곤 바람에 언제나 흔들리는 벼가 기둥이 튼튼한 나무보다 못한 것일까, 향기와 색을 품고 있는 꽃보다 못한 것일까.

아니요.

벼는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정상이고, 곡식을 만드는 게 목적입니다. 나무기둥이 바람에 흔들리고 꽃이 쌀알을 떨굴 수 없습니다. 그건 오직 벼만 할 수 있는 겁니다.

각자 존재의 몫이 있습니다.

벼는 아름드리나무가 될 수 없고
사람의 마음을 살랑이게 하며

향기나는 꽃이 될 수 없습니다.

나무가 되지 않아도, 꽃이 되지 않아도 됩니다.
벼는 벼의 몫이 있습니다.

내 존재의 몫대로 살면 됩니다.


나의 것을 열매 맺는 삶,

그게 우리 인생의 전부입니다.

벼를 보며 용기를 얻습니다. 벼를 보며 나를 봅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이 풍성히 거둬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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