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는 그 자체로 향기롭고, 관념적으로도 아름답지만
사실 유약하고, 외부자극에 말랑거리거나 찢기기도 한다.
그래서 애처로운 상처가 더 많다.
나는 그 시간을 지난 삼십 대가 좋다.
취할 건 취하고, 어떤 모양은 포기하고, 버리는.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내게서 떨어지지 않는
조각은 결국 품는.
이제야 한 사람으로 완성되는 듯한
삼십 대가 더 매력적이다.
무언가의 단어로 설명이 되는 사람으로,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자신만의 감각을 만들어내는
삼십 대 마라톤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