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인 줄 알았는데 벌써 재작년이 된 안부가 있다. 인턴으로 재직하던 회사의 주임님이 그 해를 기준으로 정확히 10년 만에 생일을 축하한다는 연락을 뜬금없이 보내왔다. 퇴사 후 단 한 번의 연락도 없었던 사이여서 아주, 많이 놀랐다. ‘훌륭한 엔터테이너였으며, 크리스천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으로 계속 살아갈 것이라 믿는다’는 내용이었다. 또 뜬금없이 생각나는 한 가지. 그때에도 딱히 감성적인 사람이라는 걸 티 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 날 부장님이 너는 감성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내가 보라색 롱스커트를 입어서 그렇댔나. 회사에서 그런 색의 치마는 잘 안 입는 거 같긴 하다.
교류도 없이 지내다 뜬금없이 온 그 연락이 좋았다. 좋았다 말하기보단 놀랐다고 해야겠지. 연신 “우와! 우와...”만 내뱉었다. 그렇게 한두 번 더 연락을 하고 지냈고 내가 사는 지역에 오면 커피 한잔하자는 의례적인 대화를 했다. 언제나 그렇듯 자연스레 다시 연락하지 않았고, 커피를 마신 적도 없다.
작년 겨울은 이상하리만치 외향적이었다. 오래도록 알고 지냈지만, 요 몇 년간 연말에 먼저 인사하지 않은 단톡방에 먼저 인사를 했고, 마음이 가는 사람들에겐 작은 선물도 보냈었다. 하이텐션의 정점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아파트 주민을 위한 몰래산타를 자처한 일이다.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겠는 나다. 인스타에 사진을 올렸더니 오래도록 알아왔던 한 동생이 댓글을 남겼다. 꽤나 알고 지내왔으니 굳이 말하지 않고 서로의 근황만 확인하며 피드 한 번 손가락으로 스윽 올리면 그만인 스킵의 시대에, 댓글은 글 이상의 관심이 되기도 한다. 마음을 쓰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글이 있다.
그 댓글을 보곤 생일을 축하한다며 카톡을 보낸 주임님이 생각났다. 주임님의 연락은 내게 연락에 대한 망설임을 깨버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연락의 주기와 지나간 세월과 상관없이 마음이 시키면 나도 뜬금없이 연락하게 됐다. 동생의 댓글에 정말 오랜만에 나도 작은 마음을 전했다. 먼저 다가가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는 어떠한 때에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먼저 말을 건다. 그걸 해야 숨 쉬는 기분이다.
크리스마스에는 주임님께
별거 아닌 기프티콘과 함께 연락을 드렸다.
‘카톡 끝까지 내리다 보니 작년에 대화한 흔적이 아직 남아있더라구요! 함께 커피 한잔할 순 없었지만, 커피 한잔하는 여유를 가지시는 따뜻한 연말 되시길 바랄게요- 항상 몸과 마음 건강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이 연락은 성탄절을 기쁨으로 꽉 채워주었다.
누군가를 항상 생각하는 일은 어렵다. 눈 뜨면 바뀌는 세상의 질서에, 예측할 수 없는 나의 하루에, 사색마저 한량의 게으름으로 취급받기도 하는 빡빡한 시대에 누군가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건 비효율적 처세로 보이기까지 한다.
삶이 무거워서 혼자 있는 가벼움을 택하는 시대에 누군가의 마음의 집에 내가 들어앉아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그 마음속 소파에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앉아있는 나를 바라본다. 나를 내쫓아내지 않고, 가만히 한자리를 지키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 바쁘게 살다가 가끔씩 마주치지만 볼 때마다 따뜻한 한 마디를 건네는 사람들.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겠지.
“항상, 언제나 널 생각하고 있진 않아. 그래도 나의 기억엔 네가 있어. 잠시 들렀다 가기도 했고, 오래도록 앉아있기도 했지. 그 만남이 나는 좋았어. 갑자기 연락해서 놀랐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일상의 대화도 좋지만, 뜬금없는 연락도 난 좋아해. 오래도록 보지 못했을 뿐이지,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나타난 것뿐이지, 내 마음의 집엔 니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