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쓸 말도 없고, 쓸 겨를도 없는 시간을 보냈다. 마음을 낭비하는 데 시간을 썼고, 관심사에 신경 쓰다 보니 여백이 없었다. 내게 생각이라는 건 여유에서 나온다. 여전히 여유는 없지만 조금 숨통 트인다는 이유로 가빴던 삶에도 긴 호흡이 생겼다.
지난주에는 우연히 집에 들어가다가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왜 했냐면 언제 생각하든 생각이란 걸 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나니까. ‘우린 누군가를 왜 좋아하는 걸까?’ 그냥 그런 생각만 하고 끝났다.
오늘은 조금 늦은 퇴근을 했다.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퇴근을 해도 여전히 해가 떠있기 때문이다. 가을은 하루를 향한 작별이 조금 빠르다. 그래서 가을을 좋아하진 않지만 어둑한 길을 걷다 바람이 선선하다는 이유로, 길거리가 조금 한산해졌다는 이유로, 그래서 기분이 좋다는 이유로 지난주에 생각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생김새, 취향, 말투, 행동, 성격, 가치관, 성품. 이런 이유들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요소가 되겠지. 이유 없이 좋은 건 없을 거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까닭은 있기 마련. 여러 이유로 나를 좋아해 주겠지. 사람들은 날 왜 좋아할까. 궁금하기도. 그게 공통적인 한 가지 이유는 아닐 텐데. 누군가와 친구가 된다는 건 신기하고 재밌는 일이구나.
시간에 공백이 생겨 나를 만나고 싶었다 연락했던 사람, 잘 지내냐며 연락했던 사람, 내게 덮친 파도를 자신의 파도처럼 여겨주던 사람, 몇 년 전인 지도 모르는 때에 이 카페에 함께 가지 않았냐고 말하던 사람. 그런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
매 순간 인생은 혼자서 가는 길이라 생각하는 나지만, 그래서 누군가에게 잠깐 의지하다가도 결국 스스로 설 수 있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는 나지만, 나의 순간이라고 여기며 살았던 시간 속에서도 둘러보면 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의 순간이 아니라 우리의 순간이 되는 게 인생이겠지.
나는 어쩔 수 없이 때론 슬퍼야 하는 순간을 산다. 그렇게 작동되는 인간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즐거워야 하는 순간을 산다. 그렇게 설계된 인간이다. 어떤 사람은 나의 진지함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나의 활발함을 좋아하겠지.
내 인생의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건 언제나 나만의 분투라 투정을 부리는 것 같아 보여도, 나는 홀로 더 치열한 전투를 한다.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른 동안 어느새 가을이 왔다. 사실 가을도 좋다. 하지만 가을이 6월이었다면 훨씬 좋았을 터. 생각해 보면 가을이 조금 처지는 ‘계절’이라 싫은 게 아니고, 그냥 ‘시간’이 많이 지나갔다는 사실이 싫은 거겠지. 난 키가 작아도 긴 코트를 입은 걸 좋아하니 가을도 내게 좋은 계절이다. 그러나 한 해가 몇 달 남지 않았다는 걸 상기시키는 가을은 끔찍하기도.
어떤 가을을 살지. 심심할지, 심상치 않을지. 어떤 시간을 살지 모르지만 홀로 참전했다 여겨지는 계절 속에서도 함께 하는 우리의 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을바람에 실어 소원을 들어주는 이에게 보낸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실 이에게.
그나저나 조금 더 쌀쌀한 가을은 언제 오려나. 나 여름에 가을 코트 두 개 샀는데.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