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언젠가 광야를 벗어난다
그래. 너도 알다시피 나는 지금 광야에 있어.
일어나는 건 모래바람뿐이고 변화하는 건 바람의 길 뿐이지. 그 외엔 아무것도 없는, 여기는 광야야.
걸어도 오아시스는 보이지 않아. 답답하고 목이 마르지만 할 수 있는 건 그냥 걷는 것 말고는 없어. 광야는 원래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데잖아.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오직 걷는 것 밖에 없어. 살아 숨 쉬는 것만 할 수 있어.
걷다 보면 느껴지는 건 오직 나와 광야뿐이야. 어쩌면 나에게 광야를 걷는 시간이 허락된 건 나를 더 잘 알기 위해서일지도 몰라. 광야를 통과하지 않고는 나를 알 수 없으니까. 모래바람을 맞아야만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
이 텅 비고 아득히 넓은 바닥에선 무엇도 자라지 않아. 탑탑한 것만 느껴지고 바싹 마른 기운만 전해지지.
하지만 나는 알아. 여긴 꽃이 자라진 않지만 나는 여기서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를 꽃피울 수 있다는 사실을.
진짜 희망을 전해 줄 수 있는 꽃은 비옥한 토양 대신 아무것도 없는 모래 속에서 태어난 꽃 아니겠어?
모래를 뚫고 나온 꽃. 괴로움을 뚫고 나온 아름다움. 진짜 아름다움은 악조건 속에서도 피어나기 마련이지.
그래도 나는 여전히 여기에 머물기보다는 벗어나고 싶어. 어쨌든 광야는 쨍한 외로움이 맴도는 곳이니까.
광야를 벗어나는 단 한 가지 방법을 알고 있어.
광야를 걷는 것.
광야를 벗어나기 위해서 광야를 걸어야 해. 모래에 발자국을 남겨야만 더 이상 모래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을 수 있지. 걸어야 하는 거야.
이 지친 걸음을
누군가는 절망(絕望)이라 부르지만
나는 절망(切望)이라 부르며 걷지.
이 곳에서도 나는 희망을 품어.
희망을 끊으며 절망할 이유가 없잖아.
이제 내 앞에 남은 건
광야를 벗어나는 일 밖에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