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성 산문
개굴개굴 쿠억쿠억 까욱까욱 …
분명히 존재하는 소리이건만 지구상 최고의 표음 문자인 한글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소리가 소만, 망종 무렵 초여름밤 개구리들의 떼창이다.
작가 김승옥은 ‘무진기행’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를 ‘수많은 비단조개 껍데기를 한꺼번에 맞비빌 때 나는 소리’라고 표현했다. 비록 비단조개 껍데기를 맞비벼 보지는 않았지만 귀에 딱 와닿는다.
구름에 달 가는 달밤이건, 보슬비 내리는 칠흑 같은 밤이건 개구리 떼창이 시작되면 이층 창문에서 내려다 보이는 논바닥이 일시에 일 미터는 붕 떠오른다.
집 옆에 붙어 내려다 보이는 세 마지기 논은 사계절의 이음매 없는 변화를 조용히 그러나 선명한 칼라로 보여준다. 집을 짓고 처음엔 집 옆에 물을 대는 논이 있어 지반이 젖어 물러지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했지만 오히려 마당 땅속 깊이 수분을 적당하게 공급해 주니 마당의 초목이 늘 싱싱하다. 겨울 흑회색 진흙에서 시작하여 봄날에 가미되는 연두색, 날로 푸르른 녹색으로 덮여가는 여름을 지나면서 노랑과 초록이 함께 섞이면 어느덧 여름의 막바지다. 파란 하늘아래 누런 황금빛이 넘실대는 풍경은 가을 벼 베는 날이 왜 한해의 정점인지 알게 한다. 동춘하추 4 계절의 파노라마를 벼논처럼 넓고 시원하게 보여주는 풍경은 없다. 덤으로 봄날 논에 물이 차면 어김없이 왜가리 한 쌍과 재두루미 한 쌍이 어디선가 날아와 족히 보름 정도는 논에 머무르며 눈을 시원하게 해 준다. 그 커다란 새들은 긴 날개를 펼쳐 우아한 활강과 비상과 착륙을 반복해 보여 주는데, 긴 다리로 무논을 성큼성큼 걷는 모습, 긴 부리와 안쓰럽게 가는 목을 뻗었다 오므리며 먹이를 잡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쪽으로 작은 창 하나 내기 참 잘했다는 아내의 자찬도 매년 반복된다.
개굴개굴 쿠억쿠억 까욱까욱 …
이른 봄날 물웅덩이의 느끼한 개구리 알 무더기가 늦봄부터 여름까지 이렇게 비장한 아우성을 골짜기가 울리게 풀어놓을지 상상할 수 있었으랴. 흐물흐물한 알뭉치에 점점이 뭉텅이로 가라앉은 알이 부화하여 고물고물 한 올챙이가 되어 동요의 노랫말에 따라 변태를 거듭하는 중에, 부리 긴 새떼의 부리질, 이놈 저놈 배암의 아가리를 피해 개구리로 살아난 놈들만으로도 지금 저 논에 가득한 것이다.
한 평당 대략 여섯, 일곱 마리만 쳐도 거의 사천마리 편성의 대 합창단이 된다.
개구리 합창이 절정을 넘어 떼창으로 광란일 때 몇 번인가 이삼십 초 길이의 떼창을 녹음해서 도시의 친구들에게 선물처럼 나누었다. 모두들 자연의 소리, 추억의 소리라며 좋아했다. 사실 나는 질리고 지겨워서 ‘자네들도 한번 들어보소’하고 보낸 소리인데 나만 지겨웠던 것이다.
그렇게나 목이 쉬게 울어대다 갑자기,
뚝~~
깊은 정적(靜寂)이 드리운다.
논바닥을 모든 소리를 흡수하는 신비한 이불로 일시에 덮어버린 것 같다. 개구리 대장이 있어 지휘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개구리들만 통하는 무슨 우주적 텔레파시라도 있어서 수천 마리를 일시에 침묵에 빠질 수 있게 하는 것인가?
개구리의 악악대는 떼창 소음 속에서도 글을 읽어 나가다가 갑자기 생겨난 정적(靜寂)에 독서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은 분명 모순적 상황이다. 독서 중에 개구리의 그 왁자지껄한 아우성을 은근히 즐겼다는 반증이 아닌가. 언제 이 정적이 깨지나 기다리는 상황의 모순에 읽던 책에서 잠시 눈을 뗀다. 그리고는 취미가 된 ‘낱말 고찰’의 상념에 빠진다. 과연 ‘靜寂’이 생겨나고 깨질 수 있는 명사인가?
개구리가 한꺼번에 덩달아 우는 이유는 뭘까? 분명 무엇인가 이유가 있어 동시에 소리를 내고 일시에 그치는 것이리라.
뭔가 공통된 즐거움, 집단적 공포, 공동의 욕구가 떼창을 하게 하는 것일 진대 그들의 그것은 무엇일까? 일차원적 짝짓기 욕망으로 매미처럼 암컷을 부르는 수컷의 외롭고 비장한 구애의 외침인가?
그렇다. 일 삼아 찾아보니 그렇다고 한다. 개구리도 수컷만 아우성칠 거라 짐작하니 우리 집 전속 개구리 합창단 규모가 대략 2천 마리 수컷합창단으로 줄어든다.
비가 오니 더 극성스레 울어댄다. 개구리는 허파와 함께 살갗으로도 숨을 쉰다. 살갗에 물기가 있으면 숨쉬기 편하고 기분이 상기되어 소리가 더 커지는 것 같다. 신나는 떼창에 짝짓기도 떼로 이뤄지는 상상에 미소가 지어진다. 부디 밤새워 저 낭만 가득한 무논에 상쾌한 축복이 비처럼 내리기를~
이윽고 머물던 정적(靜寂)이 갑작스레 깨지면서 (본래 존재하지 않는 정적이 깨진다고 관용적으로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은 것도 참 새삼스럽다) 수만 개의 조개껍데기가 거인의 발아래 비벼진다. 이천 개의 캐스터네츠가 내는 소리가 다시 한꺼번에 창문을 넘어온다.
보슬비 촉촉한 밤, 늦도록 읽어도 잠 없는 머릿속이 소리로 채워져 오히려 맑아진다.
가끔씩 엉뚱한 곳에서 눈에 띄는 앙징맞게 눈이 큰 청개구리, 우산 위에 태평하게 앉아 비 내리는 산책길을 함께한 손톱만 한 청개구리도 저 합창에 소리를 보태고 있을까? 별게 다 궁금하다.
몰입하여 읽었던 중국 작가 모옌의 소설 ‘개구리’를 생각한다. 동양적 유전자 전달 집념과 인위적 통제(소설에서는 중국의 국책 지침인 ’계획생육’)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자 자연 생식과 종족번식 욕구의 상징으로서의 모옌의 개구리는 저 논에 모여 집단 떼창으로 밤마다 아우성대는 개구리 떼와 연결된다. 그리고 그들이 만드는 웅장한 정적은 다음에 이어질 떼창을 또 기다리게 한다.
이래저래 책을 덮는다. 빗소리에 섞인 로맨틱한 떼창을 감미로운 듯 오롯이 즐겨야 할 밤이다.
개굴개굴 쿠억쿠억 까욱까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