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독일의 가정의 병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코로나 백신 접종 때문에 난리다.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독일 가정의 병원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개인병원에서 백신 접종으로 인해 발생되는 여러 가지 힘든 업무들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어렵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는 일이 환자들의 백신 접종 순서를 정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코로나 백신이 해마다 하는 독감 백신처럼 원하는 사람 누구나 빨리 접종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누구나 언제일지 모를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그 순서를 정하느라 병원에서는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물론, 독일 보건당국에서 정한 코로나 백신 접종 우선순위 그룹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그 우선순위별 그룹은 연령, 기저질환, 직업군 등을 고려해 기본적으로 나눈 것으로 그 우선순위별 그룹이 같은 환자가 우리 병원만 해도 부지기수다.
바꿔 말하면 나라에서 정한 접종 우선순위 그룹만 가지고는 환자들의 백신 접종 순서를 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 병원에서 백신 접종을 원하는 환자들의 대기자 명단을 작성할 때, 환자 번호, 이름, 나이, 그리고 가지고 있는 질환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기타 사항 들을 보다 상세히 적는다.
그렇게 작성된 명단과 병원 진료기록 들을 면밀히 검토해 접종 순서를 원장 슨상님이 직접 정한다.
그런데 이것이 보통 머리 복잡스런일이 아니라는 거다.
만약 코로나에 감염된다면으로 시작해... 더 위급해질 수 있는 고령의 기저질환자 그리고 환자 본인도 위급해질 수 있고 다른 사람들 또한 감염케 할 수 있는 환자 들 가령, 마트 직원, 병원 청소원, 의료종사자, 교사, 전차, 버스, 택시 운전기사, 등의 직업군의 환자들.... 또 고위험군에 속하는 가족을 간병하는 가족 등등.. 환자들 접종 순서를 정할 때 고려해야 할 경우의 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매주 병원으로 공급되는 백신의 양이 워낙 적은 데다가 들쑥날쑥하기 까지 해서 가정의 병원에서 한주에 백신 접종을 할 수 있는 환자수는 생각처럼 많지 않다.
주마다 (독일은 16개 주) 가정의 병원에 따라(병원 규모에 차이) 다르지만 백신 접종률이 하위에 속하는 헤센주의 우리 같이 작은 가정의 병원의 예를 들자면...
이번 주는 백신을 2병 받게 받지 못해 접종한 숫자가 12명이 되기도 하고 또 다음 주는 6병을 받아 36명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가정의 병원에서 빠른 속도로 접종 순서를 받는다는 것은 고령의 고위험군의 환자가 아니고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환자들은 대기자 명단에 본인 이름을 올리는 순간부터 언제 차례가 올지에 대해서 묻는다. 우리는 백신을 받는 상황이 이러하니 우리도 정확히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도 환자들은 대략이라도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에 대해 답을 달라고 한다.
그럼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직 우리 병원의 80대 70대 환자들 도 접종이 다 끝나지 못했다고... 오래 기다리셔야 할 것 같다고...
그러고 나면 환자들은... 또 왜 본인이 코로나 백신을 빨리 접종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이유들을 수없이 나열하고는 한다.
나이 불문하고 건강상태 상관없이 말이다.
엊그제는 30대의 건강한 처자와도 그렇게 입 아프게 떠들어도 답 안 나오는 이야기를 한참이나 해야 했다.
병원에서 이런 상황을 마주 할 때면..
나는 어느새 그 여름 버스 터미널 에서의 일이 떠오르고는 한다.
그 소리 없는 아우성 같던 그날의 일이 말이다.
2018년 여름의 일이다. 그해는 유럽 전체가 불가마라는 말이 자주 나오던 유난히도 더운 여름이었다. 우리에게 불볕더위가 무언지 제대로 경험하게 해 준 곳은 그리스의 크레타 섬이었다.
크레타에서 보낸 여름휴가는 그때가 두 번째였는데.. 워낙 첫 번째의 추억이 좋아서 꼭 다시 가기를 원했던 곳이다.
그런데 우리가 두 번째로 만난 크레타의 7월 여름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게 더운데.. 햇빛에 나가 서면 그대로 모든 것을 익혀 버릴 것 같은 직사광선이 아무리 선크림을 펴 발라도 피부가 까맣게 타다 못해 껍질이 일어나게 했다.
그 무 서븐 땡볕을 피해 주로 바닷가나 호텔 풀장 안에서 놀던 우리는 어느 날 용감하게 그 40도를 웃도는 무더위를 뚫고 하니까 라는 도시로 쇼핑을 나가기로 했다.
원래 휴가는 쉼이 목표이지만 왠지 너무 안 움직이고 다닌 곳이 없다 싶으면 슬슬 본전 생각이 나는 순간이 있다.
그때 우리가 그랬던 것 같다. 호텔 풀장에서 하루 종일 놀아도 좋다는 막내를 꼬셔서 무더위 속에 버스를 탔다.
다행인 것은 더운 관광지들이 그러하듯 크레타 섬은 버스나 택시 등의 대중교통에도 에어컨 시설이 빵빵하게 잘 되어 있어 시원하게 잘 다닐 수 있었다.
하니 아는 크레타 섬에서 가장 예쁜 도시 중에 하나다. 골목마다 아기 자기한 가게 들과 볼거리들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한낮의 햇빛은 선크림 바르고 모자 쓰고 선글라스 끼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온 보람도 없게 너무나 강렬했다. 골목골목 쳐져 있던 천막 안으로 옮겨 다니며 조각조각이라도 햇빛을 피해 다니며 문 열어 놓은 가게 들에서 새어 나오는 에어컨 바람에 몸을 식히며 간신히 돌아다녔다.
40도를 웃도는 날씨에 흘려댄 땀으로 온몸은 이미 염전이 되었고 파김치가 되어 어서 숙소로 들어가기로 했다.
예쁜 것이고 쇼핑이고 간에 덥고 지치는 때는 다 필요 없다를 외치며 말이다.
그렇게 돌아가기 위해 버스표를 끊고 버스 터미널에서 타고 갈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버스들은 주차장에 줄지어 서 있는데.... 버스의 출발 시간대가 자꾸 바뀌고 있었다.
우리가 기다리던 버스뿐만이 아니라 전 구간이 말이다
그렇게 버스 시간표가 계속 바뀌기를.. 15분... 30분... 1시간이 넘어 가자 우리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크레타 섬의 여러 방향으로 달려가야 할 버스를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은 매표소에 가서 무슨 일인지를 물었고...
처음에 자기네들도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다고 기다려 달라 하던 직원들이 어느 순간 이야기했다.
크레타섬 내에서 산불이 났다고... 그래서 진화 작업 때문에 모든 도로 구간이 전면 봉쇄로 막혔다고 했다.
그 이야기는 크레타 섬 내의 모든 도로에서 버스, 택시, 그 어떤 대중교통도 이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하니아에서 숙소까지 직행 버스로 1시간 30분이 걸렸다.
쩔쩔 끓고 있을 것이 분명한 도로를 걸어갈 수도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산불이 나고 번져 있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스어를 알지 못하니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아도 외신에 실린 크레타섬에 산불이 났다는 간략한 뉴스속보 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산불이 잦아들 때까지....
막막한 시간이 흘러갔다. 매표소 직원들은 산불로 인해 도로가 전면 폐쇄되었고 버스터미널 내에 버스가 줄지어 서있어도 어느 것 하나 출발시킬 수 없음을 그리스어와 영어를 번갈아 몇 번 방송을 했다. 그리고는 더 이상 답해줄 것도 없는 상황에 곤란했던지 아예 매표소를 닫아 버렸다.
그렇게 속수무책 시간이 흘러도 온도는 식을 줄 모르고 37도를 가리키고 있었고 발이 묶인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을 마련하려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했다.
여기 저기 한무데기 서있던 사람들은 혹시나 정차해둔 버스들의 기사 아저씨 들은 뭔가 방법이 있을까? 싶어 몰려가 물었고 사람들의 성화에 여기저기 전화를 넣던 기사 아저씨들은 더운 날씨에 메마른 들판에 불이 난 것이라 크레타 섬 전체에 바람 따라 걷잡을 수 없게 퍼지고 있어 헬기가 동원되고 소방차들이 모두 동원되었지만 산불 진화에 애를 먹고 있다는 현장 소식을 전해 주었다.
버스터미널 안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몇 가지의 언어를 거쳐 가며 그 상황을 서로에게 전해 주기 바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산불이 잦아들어 봉쇄된 도로가 뚫리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딱히 별 다른 방법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덥고 불안한 상황에서도 묵묵히 기다리던 사람들이....
몇 구간의 도로가 뚫렸다며 버스 몇 대가 움직일 채비를 하자 웅성이기 시작했다. 버스기사 아저씨 들은 아직 모든 도로가 열린 것이 아니라 각기 갈 수 있는 구간만 움직일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각자 표 끊은 곳과 같은 방향만 버스를 탈 수 있다며 줄을 서라고 했다.
그럼에도 버스가 가려는 방향이 자기가 가야 하는 곳과는 정반대 방향인 사람들도 일단 버스를 타고 보자는 마음에 마구 줄을 서기 시작했다.
버스 몇 대가 이미 꽉 찼는데 줄 서 있던 사람들이 항의하며 비켜 주지를 않아 출발을 못하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소리소리 지르는 사람부터 뭐라고 욕설을 내뱉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그야말로 난리 북새통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방향 상관없이 서로 버스를 타야 한다고 난리를 떠니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 남는 사람은 오도 가도 못하는 거 아닌가 하고 말이다.
버스기사 아저씨들은 조만간에 다른 방향의 도로도 뚫릴 것이고 모두 버스를 타게 될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해도 사람들은 버스 못 탈까 미리 걱정을 하고 불안에 떨었다.
그날....
늦은 시간이었지만 산불이 어느 정도 진화가 되어 다른 방향도 도로가 뚫리고 버스 터미널에 정차되어 있던 다른 버스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국... 남는 사람 없이 모두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었다.
요즘..
서로 먼저 코로나 백신 접종을 맞아야겠다고 찾아오는 환자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무조건 기다려야 하는 지금의 상황과 무지 닮아 있던 그해 여름 그날 버스 터미널이 떠올려 지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