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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l 03. 2021

남편은 아이언맨 아니죠 아이디어맨


아침부터 내리쬐던 땡볕으로 머리가 벗겨지게 무덥던 어느 주말이었다.

남편은 혼자 무언가 분주하게 찾고 있더니 거실 탁자 위에 하나 둘 줄 세워 놓기 시작했다.

손전등 2개, 마스크, 방호복, 청진기, 반창고, 사인펜, 핸디 뭐지 이조합은?

하며 쳐다보고 있던 내게 남편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뭔지 궁금하지, 완젼 궁금하지?"

곧이어 쏟아지는 나의 눈빛 세례와 쓰읍 하는 소리에 남편은 궁금하면 오백 원 소리는 차마 뱉지 못한 체 뜸을 들이다 이야기했다.

"도와준다고 약속하면 말해 주지"

말도 꺼내기 전에 도움의 확답을 얻고자 한다면 남편은 필시 내가 반겨하지 않을 아니 어쩌면 귀찮아할 일을 버리려는 것이 틀림없다.

사진출처:ETOH24

나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라 때마침 찬물로 씻고는 드라이기 대신 선풍기 바람에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그 바람에 천지사방 미친 듯이 머리카락은 휘날리고 있었고 뭘까? 뭐지? 하며 생각을 하느라 가늘어진 눈은 흰자만을 가득 담은 체 음산하게 답했다.

"더워 죽겠는데 또 뭔 일을 버리려는 겨? 별거 아니면 국물도 없다!"


남편은 좌우지 당간 도와주긴 하겠다는 나의 대답에 회심의 미소를 머금은 체 자신감을 바른 목소리로 말했다.

"아 난 왜 이렇게 기막힌 아이디어가 팍팍 떠오르나 몰라, 나 혹시 천잰가? 듣고 놀라지 마"

나는 네가 뭐래도 놀라지않겠스 하는 눈빛을 담아 남편을 지그시 쳐다봐 주었다.

말하려다 생각할수록 본인의 아이디어가 참으로 신박하다 느꼈는지 샐프로 감동의 도가니탕을 끓이던 남편은 기다리다 짜증이 난 내가 세모꼴이 된 눈으로 째려보자 잽싸게 본론을 꺼내 놓았다.


남편의 아이디어는 이러했다.

저 물건들을 가지고 우리 집 물난리의 원인을 우리가 직접 확인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 거이 뭔 소리인가 하면....

우리가 장장 반년에 거쳐 우리 집 지하실에 물이 새고 있는 이유를 찾기 위해 기술 업체 3군데를 불러 분석을 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다녀간 세 번째 업체에서 하나 찾아낸 것이 있었다.

(*궁금한 분들을 위해백년된 독일집의 버라이어티)


그것은 독일의 Kriechkeller 였다. 예전 집들 1900년대에 지어진 집들에 있는 작은 지하실로 주로 수로관이나 전기시설 등을 집중적으로 모아둔 곳으로 작은 터널 같은 곳이다.

사전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보통 어른이 몸을 접어서 땅에 기다시피 다닐 수 있는 작은 공간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곳에 그동안 우리가 모르던 수로관들이 들어가 있었는데 이 공간이 우리 집 물난리의 열쇠를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만약 진짜 이곳에 있는 수로관에 문제가 있어 집안으로 물이 새고 그래서 지하실에 곰팡이가 피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들어 놓고 매달 곗돈 붓듯 따박따박 보험비를 내고 있는 건물 보험에서 수리비용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독일에서는 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연재해 또는 갑자기 생겨나는 문제로 인한 집 공사 등을 해결하기 위해  Wohngebäudeversicherung이라는 주택 건물 보험을 가입합니다.)


왜냐하면 주택 건물 보험에서는 집안에서 벌어진 것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 했다.

어쨌거나 보험에서 처리가 되든 우리가 부담을 하든 간에 공사 들어가기 전에 먼저, 그곳에서 수로관이 새고 있는 것이 맞는지 그렇다면 어떤 수로관에 문제인지 정확히 알아내야 한다.

안그래도 그러기 위해서 또 다른 기술업체 분석팀을 다시 알아보려고 하고 있던 참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남편의 기막힌 아이디어는 본인이 저렇게 삼복더위에 땀띠 나게 생긴 방호복을 입고 청진기를 들고 그 작은지하실로 들어가서 직접 알아보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우선 식구들을 화장실과 욕실마다 세워 두고 무전기 대신 핸디로 전화를 하면 대기 타고 있던 식구들이 물을 틀었다 잠그고를 반복 한다.


그러면 남편은 청진기를 사람의 가슴팍이 아닌 수로관에 냅다 들이 대서는 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통해 어떤 수로가 어느 욕실과 또는 화장실과 연결이 되었는지 그리고 어디가 새고 있는 지를 정확히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청진기가 아주 세세한 소리도 들리잖아 그러니 물소리는 뭐 말할 것도 없지!"

어 듣고 보니 꽤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닌가? 이러다 진짜 우리가 알아내는 거 아니야? 남편 진짜 천잰데..!

마누라의 작은 눈이 감탄으로 점점 커져 오자 남편은 신이 나서 식구들을 줄줄이 세워 두고 설명을 하고는 층마다 예행연습까지 마쳤다.


예를 들어 이렇게..

남편이 핸디로 "자 지금 막내 2층 욕실에서 물 틀어!" 하면 기다리던 막내가 물을 틀고 그때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수로관에 청진기를 대어 그곳이라는 확인이 되면 하얀 반창고에 사인펜으로 2층 욕실이라 쓰고 반창고를 수로관에 붙인다.


그런데...

예행연습은 어디까지나 연습이었던 것이였다. 실전에서는 시작부터 생각과는 뭐가 안 맞기 시작했다. 덴쟝..!

완전무장하고 들어간 남편이 그곳에는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핸디로 전달해야 할 2층 욕실 물틀어라 잠거라 사항을 이 몸이 직접 뛰어다니며 해야 했다.

그 덕분에 방호복 입은 남편 못지않게 나도 땀을 바가지로 흘려야 했다.


남편이 1층 화장실 물틀어 라고 말하면 나는 정원을 가로질러 헉헉 거리며 뛰어가서는 물을 틀어 놓고 다시 뛰어 와서는 "헉헉 1층 물 틀었어!"라고 했고 그러면 남편은 조금 후에 "이제 잠궈 그리고 2층 물틀어" 했다

그러면 나는 또 허벌라게 뛰어 거실로 가서는 1층 화장실 물을 잠그고 계단 위에 서서 소리를 질렀다

"막내야 2층 욕실 물틀어!"


무전기로 해야 할 일을 연락병이 되어 뛰어다니던 나는 아까 보다 더 산발이 된 체 얼굴은 토마토 보다 더 빨갛다 못해 터지기 직전이 되고 땀이 비 오듯 해도 우리가 기술업체도 못 알아낸 우리 집 물난리의 진짜 이유를 밝혀 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웃으며 뛰었다.

나의 그 섬뜩한 모습에 신이나 하는건 놀자고 드는 건 줄 알고 내 뒤를 열라 따라다니던 우리 집 멍뭉이 나리 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괜찮았다.

그렇게...

모든 층의 화장실 욕실의 물을 틀고 끄고 가 끝나고 나자 나는 남편이 얼른 그작은 지하실에서  "찾았다 거기가 문제였어!"라는 말을 들고 나오기를 고대하며 기다렸다.



쪼그려 있던 지하실에서 드디어 남편이 나와서는 기세 등등하게 허리를 폈다.

나는 어떻게 이런 기특한 생각을 다했지? 우리가 기술자 아저씨들도 못 찾은걸 찾아낸 거지? 역시 당신은 천재야 하는 눈빛을 담아 존경과 다정을 쳐발 쳐발 한 목소리로 물었다."찾았어? 어디야? 어디가 새는데?"


그러자 남편은 빙구 같이 웃으며 내게 믿을수 없는말을 했다.

"모르겠어 물소리가 너무 여러 군데에서 들려서 어디가 어떤 건지 "

아니 모르다니? 청진기는 겁나 작은 소리까지 잘 들린다며?

그럼 우린 이더운날 땀 삐질 삐질 흘리며 여태 뭐 한겨?

멋쩍은 듯 웃던 남편이 "그래도 아이디어 진짜 좋지 않았냐?" 했다.


나는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 터진 헛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에라이 아이언맨 아니고 아이디어맨 아!

이제 느그 동네로 돌아가라! 친구 이티가 기다린데이!"


그날 우리 집은 날 선 쌍욕으로 잘 들게 갈아진 칼로 수박화채가 아닌 수박 회를 먹었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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