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Jul 13. 2021

이름을 한번 바꿔 볼까?


"이름을 한번 바꿔 볼까?"

어느 날 오후 우리 집 멍뭉이 나리와 산책을 하다가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무슨 이런 이야기를 강아지 똥 치우다 하니?" 하는 표정으로 나를 한번 쓰윽 보았다.

나는 허공에 쫙편 두 손 바닥을 비 오는 날 자동차 와이퍼 작동되듯 오른쪽 한번 왼쪽 한번 왔다 갔다 하며 "아니 내 이름 말고 브런치에 작가명 말이야" 했다.


그렇다 나는 브런치에 작가명으로 김중희라는 본명을 쓰고 있다. 사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단지 적당한 작가명 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남편은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갑자기?" 한다.

나는 "다른 작가들은 이쁘고 멋지고 세련된 작가명으로 아이디처럼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아"라고 했다.

남편은 어쩌다가 내가 "나 머리를 좀 짧게 잘라 볼까? 아님 파마 라도 해 볼까?"라고 물으면 굳이 돈들이고 시간 들여서?라는 표정으로"아니 왜?" 라며 되묻고는 했었다.


그때와 똑같은 표정으로 같은 말을 하는 남편에게 나는...

"난 원래부터 내 이름 별로 였어, 여자 이름 같지가 않잖아" 라며 옛날 옛적 케케묵은 이야기들을 해 빛 짱짱한 날 이불 빨래 털어다 널듯 연속으로 탈탈 털어 댔다.


이름 수난사


수십 년 전 우리 할아버지 김 옹께서는 그 시절에 시집가면 남의 집 식구 되는 딸들과 손녀들에게는 잘 가져다 쓰지 않는다는 집안 돌림자를 애써서 넣어 이름을 지어 주셨다.

그런데 하필 그 돌림자가 자주 사용되지 않는 글자라는 게 문제였다 특히나 딸의 이름으로는...


어릴 때는 지영, 정아, 혜림, 소연, 은미 등등 한 반에도 여러 명 있을 이름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그 이름을 부르면 어디선가 리본 달린 원피스를 입은 여자 아이가 쫄랑쫄랑 뛰어 올 것 같지 않은가?

어떻게 불러도 여자 이름 같지 않은 내 이름에 비해 너무 예쁘게 들렸다.

특히나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우리 반에 성도 이름도 같은 박정아가 둘이나 있었다

그래서 작은 정아 큰 정아 라 불렀었다.

전교에 통틀어 내 이름과 같은 이름은 단 한 명도 없던 나는 그마저도 부러웠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교과서에 소중히라는 단어가 나올라 치면 아이들은 여지없이 나를 돌아보며 킥킥거리기 바빴다.

그 시절 나만큼이나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이상도였다.

상도는 바로 내 앞에 앉은 친구였다


장난 스럼움이 온 얼굴에 걸려 있던 이제 여덟 아홉 살의 아이들은 교과서에 “소중히 한다” 등의 문장이 나올 때면 중히 중히 소중히라는 문장을 떼창 했고 "그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등의 문장이 나올 때면 "이상도 하지"라는 문장을 떼창 하고는 했다.

그렇다 우리는 그렇게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으로 투톱이었다.


그렇게 이름 때문에 입이 댓 발 나오는 날이면 엄마는 할아버지가 지어 주신 너무나 멋진 이름이라며 나를 다독여 주시기에 바빴다. 그 다독임과 딸기잼 발린 식빵도 먹히지 않을 때면 ‘누가바’라는 겉은 갈색의 초콜릿이 입혀진 맛난 하드가 나왔고 그도 약발이 먹히지 않는 날이면 엄마는 뭔가 대단한 비밀을 알려 주시듯 이렇게 이야기하고는 했다.

"큰엄마가 어디서 물어보셨는데 그 이름은 아주 크게 될 사람의 이름이래!"

어린 나이에도 큰엄마가 물어보러 간 곳이 가끔 굿도 해주고 미래도 맞춰주는 곳이라는 것을 알던 나는 그 이름이 크게 된다는 것에 위로가 되고는 했었다.

반백살이 넘어서도 여적 크게 되지 않은 것을 보아서는 그곳은 애저녁에 문 닫았지 싶지만 말이다.


이름 때문에 맘 상한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어렸으니 가끔 받는놀림이 다였지만 커가면서 사연은 더 업그레이드 되었다.

우리가 중학교 때는 국군장병 아저씨께 단체로 위문편지라는 것을 썼었다.

그때는 귀찮기도 하고 쓸 말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꽃무늬가 여기저기 들어가 있는 분홍색의 좋은 냄새도 나는 예쁜 편지지에 꼭꼭 눌러 손편지를 썼었다.

모두의 주소지가 학교로 되어 있던 그 당시에 이 애 저 애 가 답장을 받아서 다시 써주네 마네 하고 있을 때도 답장을 받지 못한 유일한 아이가 나였다.

아마도 국군 아저씨가 기골이 장대한 남학생의 이름으로 알고 식겁했던 모양이다.


그뿐인가 더 커서는 미팅이다 소개팅이다 나가면 내 이름이 발음하기 어려워서 그런지 깜짝 놀라거나 한 번에 이름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였다.

"아 주희 씨요? "라고 하는 건 양호하다 "아 준위 씨?" 또는 "중위 씨?"등의 이름으로 알아듣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는 "아버님이 혹시 직업군인 이신가요?"라는 따위의 질문은 옵션으로 들어오고는 했다.(방위 들이 그런 질문을 하고는 했었다.)

아마도 내 이름이 김지영만 되었어도 미팅을 달랑 몇 번만 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런데..

이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은 한국에서만 문제가 아니었다.

독일에 오니 더 했다. 여기서는 같은 알파벳 J를 써도 발음이 영어 와는 달라서 ㅈ이 아닌 ㅇ으로 발음을 한다. 그래서 내 이름은 독일식 발음으로는 융헤 또는 용해 다.

한국에서도 중희라고 발음하기 힘들어했는데 독일 친구들이 되지도 않는 발음으로 어렵사리 열과 성을 다해  옹헤야 어절씨구도 아니고 용헤에에 라고 부를 때면 정말이지 부르다가 숨넘어갈 이름이여!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간간이 어디서 들은 건 있어가지고 동양 이름에는 뜻도 있다더라 하는 걸 아는 친구들은 꼭 한 번씩 묻고는 했다.

"니 이름에도 뜻이 있니?" 하고 말이다. 그럼, 뜻이 있지.. 있고 말고 그것도 굵직하게.내 이름은 무거울 중자에 바랄 희자를 쓴다.

무겁게 바란다.. 라... 뭣을? 그래서 내가 체중이 안 빠지나?

삼순이만큼은 아니어도 이름에 대한 웃픈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면 이 밤을 새도 모자란다.


어느 날 문득 브런치에서 만큼은 나도 나풀나풀 리본이 떠오르는 여성스럽고 깜찍?한 또는 세련되고 멋지구리한 작가명 을 가져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묵은지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머리를 맞대고 기찬 이름을 한번 뽑아내 보자 했다.

했는데...무성의하게 내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남편은 찾아보라는 멋진 이름 대신에

"미팅 소개팅에 나온 놈들이 과연 니 이름에만 놀란 걸까? 라며 샤우팅을 날렸다.

에이씨 됐다 됐어 깐 놈의 이름 안 바꾸고 만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투리 마니아의 이기 머선 일이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