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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l 16. 2021

#39.나는 까칠한 사람으로 남기로 했다

오늘은 내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라


(*앞글을 읽고 오시면 내용을 이해하시기에 좋습니다.)


접종 예약 시간보다 한참이나 늦게 도착한 두 명. 그중에 한 환자가 주사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 환자는 평소 예약된 진료 시간보다 늘 일찍 와서 늦게 가는 분인데 이상하다 싶었지만 지금이라도 와서 다행이다 하는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만약 접종하기로 예약된 날 그타임에 누군가 갑자기 아프거나 해서 그 자리가 펑크가 나면 바로 대기자들 중에 올 수 있는 사람을 찾아 급하게 연락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아까운 백신이 버려지는 일을 면할 수 있다.

다행히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주사실에 접종받은 환자들 서류철들이 올라가 있던 책상 위로 진료 예약 종이들이 정신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종종 환자들이 서류와 함께 예약 종이들을 건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미 사용된 진료예약지 이기 때문에 책상 위를 정리하려고 예약 종이를 찢어서 쓰레기 통에 버렸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 그제야 직원 B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말문을 열었다. 아까 늦게 온 그 환자가 우리 병원 컴퓨터 스케줄 표에는 10시에 등록이 되어 있지만 환자가 들고 온 우리 병원 예약 종이 에는 11시로 쓰여 있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멋쩍은 듯 웃으며"우리가 실수했나 봐"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뭔가 이상 했다. B가 누군가 가 아닌 유독 우리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과 내가 종이를 치우기 전에 말해도 됐었는데 예약 종이를 쓰레기 통에 버리고 나서야 이야기를 꺼냈다는 게 걸렸다.

무엇보다 그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그 자리를 빨리 피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B는 환자의 접종이 끝나자마자 서류철 하나를 달랑 들고 급하게 사라 졌기 때문이다.

보통 몇 개를 모아서 들고 가기 마련인데 말이다.  


B가 사라진 후 나는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 통에 던져 버렸던 종이를 다시 주워서 조각조각 났던 여러 장의 종이들을 일일이 맞추어 붙였다.

그리고 그중에 8시 30분도 10시도 아닌 11시라 적힌 두장의 종이를 나란히 들고 아직 까지 이것저것 질문하시느라 주사실에서 환자대기실로 가지 않은 환자에게 물었다 "두 장 중에 어떤 게 가지고 오셨던 예약 종이인가요?"

환자는 간단히 자기가 가져온 종이를 골라냈다.

왜냐 하면 두장의 종이가 같은 날 씌어졌고 날짜와 시간이 같지만 그 밑에 코로나 2차 접종이라고 환자가 따로 써 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혹시 라도 깜박할까 싶어 따로 적어 놓기까지 한 환자가 시간이 틀리게 적히지만 않았다면 제시간에 왔을 것은 의심에 여지가 없었다.


정리하자면 우리 중에 누군가가 컴퓨터 스케줄 표에는 그 환자 이름으로 10시에 등록을 해 놓고 손으로 써서 준 진료 예약 종이 에는 11시로 써서 건네주었던 거다.

오케이 거기까지.. 나는 이미 심증으로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예약 종이를 보니 심증이 확증으로 바뀌었다.

왜냐하면 우리 병원 진료예약 종이는 컴퓨터에서 바로 인쇄 해서 사용 하는 것이 아니다. 노인 환자들이 많으신 병원이라 컴퓨터에서 바로 뽑은 진료예약 종이는 글씨가 너무 작아 잘 안보인다고 하셔서 남편이 직접 디자인 골라서 인쇄소 에서 만들어 온 종이 다.우리는 그특별한 종이 위에 진료날짜와 요일,예약시간 진료명목등을 손글씨로 또박또박 적어 드린다.

그러니 누가 쓴 것인지 바로 알 수 가 있다.

누구나 특유의 필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눈치 빠르고 질문이 많은 그 환자는 내가 가지고 있는 너덜너덜해진 진료 예약지를 보며

"혹시 그거 가지고 직원을 나무라시려고 그래요? 나는 괜찮아요 사람이 실수도 할 수 있고 그렇죠 뭐!" 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나는 웃으며 "네 그렇죠 진짜 죄송해요 예약 종이에 시간이 잘못 적혔는 줄 모르고 시간이 지났는데도 안 오셔서 저희도 놀랐고 또 연락받으신 환자분도 놀라셨겠어요. 걱정 마시고 이제 환자 대기실에서 15분 기다려 주세요 뭔가 이상 징후가 있으면 바로 알려 주시고요" 하고 환자를 대기실로 보냈다.

속으로는 네 그럼요 누구나 실수할 수 있죠 그러나 그걸 감추려고 할 때가 문제죠 환자분은 여기서 벌써 15분 지났겠어요. 라면서 말이다.


한마디로 누구나 달리 가지고 있는 필체는 이미 범인이 누군지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굳이 진료 시간에 그 이야기를 터뜨려 근무 분위기를 살벌하게 할 필요는 없다.

그냥 넘어갈까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이 처음도 아닌 데다가 그예 약종 이를 받아 본 순간 B는 자기의 필체를 보고 아 내가 실수했구나 하고 본인은 알았을 것이다.

아 미안해요 내가 바빠서 실수했나 봐 라고 했다면 어쩌면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게 "우리 가 실수했나 봐!"라고 했다. 우리 의 범주에는 너와 나 그리고 관련된 모든 이가 들어간다.

아마도 그녀는 내가 비록 종이들만 들어가 있는 쓰레기 통이라 해도 그걸 뒤져서 찢어 놓은 것을 일일이 붙여 놓을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 했던 모양이다.

아직 내가 집요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게다.


나는 내색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계속해서 남은 일들을 했다.

사실 그 이후에는 바빠서 다른 건 신경 쓸 여지가 없었다.

마지막 환자는 1차 접종을 했는데 그 환자 접종이 끝나고 B가 내게 말했다.

"이 환자 2차 접종 예약하고 예약 종이 써 드리고 나면 오늘 끝이네 "

나는 속으로 예스 지금이야 하고는 "그래 내가 환자분 스케줄 표에 쓰고 예 약지 드릴게 그런데 마침 예약 종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할 말이 있다.

너 나랑 이야기 좀 하자" 그랬더니 긴장한 것이 역력한 B에게 나는 아까 잘 붙여 두었던 예약 종이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거짓말은 통하지 않아 라는 뜻을 담아 정확히 이야기했다.

"이거 니 글 씨지? 예약 종이에는 11시에 쓰고 컴퓨터 스케줄표에는 10시로 쓴 거 너지?"

그랬더니 빨개진 얼굴로 버벅 거리며 B가 말했다." 음 내 글씨야 내가 그런 거 같아"

좋아 어쨌거나 인정은 했으니 나는 표정을 조금 풀고 이야기했다.

"너를 탓하거나 화내려는 게 아니야 시간이 잘못 쓰여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날짜가 달랐다면 누군가는 백신을 맞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어 지난번에 컴퓨터 스케줄 표에는 없었는데 예약 종이는 그날 그 시간으로 되어 있는 거 들고 온 환자 기억하지?"

그렇다 그때도 그 종이의 필체는 그녀의 것이었다 그날은 주사가 예약 숫자에 딱 맞게 나워서 우리 스케줄 표에는 없는 환자가 예약 종이를 가지고 나타나자 여간 당황스럽지 않았다.

그냥 돌려보내야 하나 어쩌나 하고 있는데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가 시간 맞춰 퇴원해서 오기로 했는데 시간보다 늦어져서 접종 날짜를 한주 미루기로 갑자기 바뀌어 주사 하나가 나오게 되었다. 다행히 문제없이 넘어갔다.

그날 이외에도 내가 알기로 스케줄 표에 넣는 걸 깜빡했다거나 진료 예약 작성을 실수한 적이 여러 번 있었던 것을 알고도 넘어갔지만 매번은 곤란하다 게다가 처음부터 솔직히 깠다면 모를까 감추고 가려고 했던 게 나를 화나게 했다.


그날 그녀는 자기의 실수를 인정했고 사과를 했다. 그리고 앞으로 병원 컴퓨터에 백신 접종 스케줄 표 작성과 환자들에게 나눠줄 백신 접종 예 약지 작성 업무에서는 그녀를 제외하기로 했다.

야구에서도 3진 아웃이 있듯 같은 업무에서 세 번 이상 실수를 했으니 아웃이다.

조금 야박한 듯 보이나 다른 진료 예약 들이라면 날짜를 조절하던 시간을 조절하던 어떻게 던 만회 할 수 있지만 백신 접종에선 곤란하다.

아직도 백신 접종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그날 접종하기로 예약한 환자에 비해 백신 주사가 남아서 버리게 되어도 모자라서 접종받으러 왔다가 못 받고 가는 일이 생겨서도 안된다.

나는 앞으로도 백신 접종에 관해서는 야박해질 예정이다.

좋은 사람은 다른 이 에게 양보하고 일 잘하는 까칠한 사람으로 남기로 했다 당분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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