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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Nov 14. 2021

독일의 빨래방 미나 이모네

어느 날 갑자기 세탁기가 고장 났다.


우리가 그리스로 가족 여행을 떠나던 주의 일이었다.

잘 돌아가던 세탁기에서 갑자기 물이 질질 세면서 고장임을 광고했다.

살다 보면 그런 때가 있지 않은가?

바쁜 일이 많아 정신이 하나도 없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어디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이것저것 고개를 들이미는.. 그때가 바로 그런 때였다.

안 그래도 병원 일이 많아 다른 날은 여행을 준비할 시간이 없어 주말에 바짝 준비해서 떠나야지 했는데

세탁기마저 도와주질 않았다.

거기다 바닥에 흥건한 물들을 수건으로 닦아 내고 나니 젖은 빨래마저 생겨버렸다. 이대로라면 젖은 빨래에 주중에 밀린 빨래도 문제였지만 여행 다녀오고 나면 생길 빨래까지 합세해 나중엔 욕실이 빨래로 산을 이룰 것이 틀림없었다.

주말이라 기술자 아저씨에게 SOS를 날릴 수도 없고 물론 독일에서 엔지니어들에게 연락을 한들 바로 와주지는 않는다. 샐프로 고쳐 보려니 시간이 필요했다.

예전에도 공휴일 낀 연말 이런 때에 세탁기가 고장이 나서 난감해진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후에 엔지니어 아저씨들이 어떻게 세탁기를 고치시는지 유심히 봐 두었더랬다.

해서 간단한 고장은 더러 내가 고치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의 필살기로 세탁기를 살펴보려면 하루 종일 그일만해야 할 텐데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것을 가지고 씨름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그다음 날 당장 비행기를 타야 하는 우리는 세탁기 수리는 다녀와서 하는 것으로 하고

일단 동네에 있는 빨래방으로 달려가기로 했다.



햇빛 나는 맑은 날이 인색한 독일에서 파란 하늘에 햇살 가득한 가을 주말에 빨랫감 가득 봉지 봉지에 나눠 들고 빨래방으로 가려니 살살 짜증이 올라왔다.

그것도 여행 가기 바로 전날에 말이다.

여행이라는 것이 일상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간다는 출발 전 설렘과 다녀와서 추억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것 까지 모두 그 안에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

출발 하기 전의 설렘을 느껴 볼 새도 없이 일상의 뒤치닥 거리로 헉헉 거리려니 이게 얼마 만에 어떻게 준비해서 가는 여행인데 싶어 약이 올랐다.

아니 고장이 나려면 좀 일찍 나던가 우리 다녀와서 나지 딱 시간 맞춰 고장이 날게 뭐니? 엉 세탁기 너 듣고 있는 거임? 나는 하다 하다 말귀도 못 알아먹을 세탁기에게 짜증을 부려 가며 빨랫감과 세탁제를 챙겼다.


우리가 달려간 빨래방은 바쉬 살롱 탄테 미나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미나 이모네 빨래방쯤 되겠다.

토요일 아침이어서 그런지 빨래방 안은 한산 했다.

코로나 이전에 비해 달라진 것이라면 문 앞에 마스크 의무 착용 포스터가 붙어 있던 것과 빨래방 안의 긴 의자들이 없어진 것과 창가에 나란히 붙어 앉지 말라는 표시 그리고 빨래방 안에 옷 수선 집이 문을 닫았다는 것 정도가 되겠다.

예전에는 긴 소파에 앉아 빨래가 되는 동안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고 창가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종종 빨래가 아닌 바짓단을 줄인다던가 하는 옷 수선을 맡기러 빨래방 안 끝에 있던 수선집을 오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요즘 빨래방은 세탁기와 건조기의 모든 선택 사항과 요금이 자동 터치로 되어있고 독일어 뿐만 아니라 영어,이탈리아어등 언어 선택도 가능 하다.세탁제와 섬유제도 터치.
예전 빨래방 에서 사용 하던 세탁 코인

우리는 창가에 줄줄이 비어 있던 세탁기들 중에 5번 7번에 빨래들을 나누어 담고 세탁기 위쪽에 달려 있는 세탁제 넣는 곳에 집에서 가져온 세탁제를 나눠 부었다.

그렇게 빨래 준비를 끝내 놓고 세탁기를 돌리기 위해 빨래방 제일 앞쪽에 있는 기계 쪽으로 갔다.

남편이 세탁기와 세탁 선택사항들을 고르고 나온 요금에 맞춰 기계에 동전을 넣는 것을 보며 문득 예전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빨래방이라는 것이 생겨난 역사도 한참 되었지 싶다.

우리가 독일에 처음 도착했던 그 시절에도 기숙사 다용도실에 함께 사용하는 세탁기가 여러 대 있었다.그러던 어느날 시내에 지금 빨래방의 전 모델인 빨래방이 생겨 났다. 물론 30년 가까운 그 시절의 빨래방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그때는 세탁기마다 달려 있던 손잡이 모양 처럼 생긴 것을 돌려서 사용 했다.그건 옛날 흑백 TV 에 달려있던 채널 돌리는 손잡이 같이 생긴 것으로 원하는 세탁 사항 을 선택할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예를들어 면빨래,섞인빨래,실크빨래 ..30도 40도 60도 등등 을 돌려서 선택 할수 있었다.

그리고 바쉬마케라고 불리던 세탁 코인을 세탁 전에 세탁기에 직접 넣도록 되어 있었다. 마치 우리 예전에 버스를 타려면 안내양 언니에게 버스요금 대신 회수권, 또는 토큰이라는 것을 냈듯이 말이다.(1970년대 버스 타고 학교 다녔던 1인 ㅎㅎ)

그 당시 빨래방에는 그 코인을 바꿔 주는 사람이 늘 상주했었다. 열개 짜리 한 묶음이 더 싸서 늘 미리 한 묶음을 사다 두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언젠가 돈을 넣으면 세탁 동전으로 바꿔 주는 기계가 나왔고 무인 코너가 되었다. 그다음은 지금처럼 기계가 다 알아서 하는 시대가 왔다.

마치 스마트 폰처럼 터치로 되어 있는 기계 하나로 세탁과 건조까지 모두 몇 번의 클릭으로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말이다.

손가락 하나로 빨래를 넣은 세탁기를 선택하고 시간과 서비스 종류를 선택하고 동전이던 종이돈이던 돈을 넣으면 끝.

선택 사항을 확인하고 세탁기로 가서 스타뚜를 누르면 세탁기에 물들어가는 소리와 빨래가 돌아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얼마나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는가? 옛날 생각을 하니 집에 세탁기가 고장이 나서 주말에 빨래방까지 빨래들을 들고 오게 된 것에 짜증이 밀려들었던 것이 언제였나 싶게 기분이 좋아졌다.

그려 세월이 흐르며 빨래방도 이렇게 발전했고 세상 진짜 좋아진 겨. 세탁기 없던 옛날 옛적 같으면 울 할매, 울 엄니 때처럼 냇가에 쪼그리고 앉아 빨개진 손 호호 불어 가며 빨래했어야 했을 거인디 이게 워디여 싶었다.

그래서 모든 게 생각 하기 나름이라 하지 않던가


그날 우리는 빨래가 많지는 않았던? 덕분에 세탁기 각기 두 곳과 건조기 두 곳에 나누어 빨래를 하고 아예 말려서 집으로 왔다.

40분짜리 기본 세탁으로 5번 7번 세탁기 두 곳에 3유로 50을 들여 세탁을 했다. 빨래가 되는 동안 그사이 시장을 갔다가 다 된 빨래를 탈탈 털어서 13번 15번 건조기 안에 넣고 3유로 들여 30분 돌렸다 그동안 그 옆 커피 전문점에서 카푸치노를 사다 차 안에서 남편과 나눠 마시며 기다렸다.


뽀송뽀송한 빨래를 빨래방 올 때 빨래 담아 왔던 쇼핑백에 잘 개켜 담으며 룰루랄라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세탁기 없던 그 시절처럼 개울가에서 빨래를 했다면 하루 종일 손 꽁꽁 얼어가며 했어야 했을 테고 그 빨래 말리려면 삼 박 사일은 걸렸을 테다.


우리는 그렇게 모두 합쳐 만 육천 원 정도 들여서 주말 아침 오가는 시간까지 두 시간가량을 들여 빨래를 가쁜 이 해결했다.

이런 주말 오전도 꽤 괜찮다 싶었다.

예전에 나오던 세탁 섬유제 광고 에서 처럼 하늘 향해 두팔 벌려 빨래 끝~~!을 외치고 싶었다. 쌈빡하게..그건 나중에 살좀 빼고 원피스 입고 하는 걸로~! ㅎㅎ


P.S: 여행을 다녀와서 세탁기 수리를 셀프로 했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리 기는 했지만 결국 원인을 찾고 해결을 했지요.

드럼 세탁기류 들을 보면 보통 위치는 달라도 이런 것들이 세탁기 아래쪽으로 달려 있어요.

배수관과 연결이 되어 있는 곳인데 이곳에 빨래들 속에서 모르고 들어간 작은 머리핀, 또는 쇳조각, 또는 동전, 또는 작은 열쇠 따위 들이 이곳에 들어가면 세탁 기능에 특히나 탈수에 문제가 생깁니다.

해서 세탁기 안뿐만 아니라 이곳을 종종 청소해 주고 관리를 해 주어야 합니다. 이번에 우리 집 세탁기에 물이 샜던 원인도 이곳에 배수관과 연결된 작은 호수 안으로 이런 작은 열쇠 조각 등이 들어가서 물이 들어가고 나가는 배수관을 막았던 것 같아요. 얘네들을 깨끗하게 치우고 물을 빼고 다시 정리하니 세탁기가 예전처럼 잘 돌아갑니다.

야매 세탁기 기술자로 거듭난 김 작가의 가정용 세탁기 고장에 대한 작은 팁이었습니다.

혹시 저희와 비슷한 세탁기를 사용하시는 독자님들 중에 세탁기에 문제가 생기면 우선 이곳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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