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Nov 14. 2021

독일 방사선과 병원에서 생긴 일.


가족 여행이 끝나고 독일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스에서 여름 끝을 만나고 왔는데 집에 오니 가을이 깊어져 있었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다녀온 것처럼...

그런데..

집으로 오던 날 그리스에서 넘어져서 다쳤던 오른팔이 시간이 지날수록 욱신욱신 더 아파왔다.

움직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다행히 팔이 크게 부러진 것 같지는 않은데 통증이 계속됐다.

주말이라 급한 데로 우선 압박붕대를 감아 두고 있었지만 팔꿈치 뼈 밑으로 뽈록 하게 부은 것이 붕대 위에서도 만져질 만큼 혹처럼 부었고 팔을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아팠다. 결국 진통소염제를 복용했다. 웬만해선 약을 잘 먹지 않는 나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뼈가 부러진 것은 아니래도 금이 갔던 뭔가 문제가 있지 싶었다. 일단은 엑스레이를 찍어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독일에서 넘어졌거나 해서 갑자기 엑스레이를 찍어 보아야 할 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동네마다 있는 종합병원 응급실로 바로 간다. 주말에도 가능하고 급한 상황일 때는 언제든지 갈 수 있고 엑스레이부터 치료까지 한 번에 끝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심할 때는 10시간도 넘게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둘째는 정형외과 병원에 응급으로 가면 되된다. 안 그래도 독일 병원 예약 잡기가 쉽지 않은데 응급이라 해도 밀려 있는 예약 환자들 때문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진료 예약이 어느 때는 며칠 또 몇 주가 걸기 기도 해서 아픈 게 다 나은 후가 될 수도 있다.

셋째는 엑스레이, CT, MRI 등을 전담하는 방사선과만 따로 나와 있는 방사선과 병원으로 바로 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만약 엑스레이 결과에 뼈가 부러 졌다거나 하면 깁스 등의 치료를 받기 위해 정형외과로 다시 가야 한다.

이래저래 시간이 많이 들고 번거롭다.

병원에서 일하고 있어 이런 독일 의료 시스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지만 막상 내가 아프니 "아휴 아프지 말아야지 병원 한번 가기 이리 힘들어 살겠나?" 하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자다가도 밤새 팔을 움직일 때마다 아파서 잠을 설쳤다. 우선 방사선과 병원으로 가서 엑스레이부터 찍어 보기 위해 월요일 아침 땡 하자마자 여기저기 병원으로 전화를 돌렸다

다행히 우리 병원은 미리 한주 더 휴가를 내어 놔서 병원일에는 차질을 주지 않았다.

그리스는 같은 유럽이고 독일 보다 확진자 숫자가 훨씬 적은 곳이지만 코시국이라 공항을 통해 오가며 알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해서다. 여행 다녀와서 일주일 정도 지나고 일을 시작해야 혹시나 하는 염려를 덜고 환자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2주 병원 휴가를 정하고 첫 주에 여행을 다녀왔다.

바꿔 말해 우리에게 한주 더 휴가는 남아 있었다. 그동안의 휴가는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었고 이번 여름휴가는 남편의 수술과 회복을 위해 사용했다. 한마디로 우리에게 2년 만에 제대로? 보낸 첫 휴가였다. 그 중간에 내가 아파 이병원 저 병원 예약을 잡기 위해 전화를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그다음 날인 화요일 오후에 엑스레이 예약이 잡혔다.

살면서 아이들이 다치거나 해서 응급실로 바로 간 적도 여러 번이고 내가 간 적도 몇 번 있지만 이렇게 방사선과 병원으로 바로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 보기는 또 처음이다.

그 병원은 우리 병원 환자들에게 소견서를 써 드릴 때 자주 안내해 드리던 병원 중에 한 곳이었다.


방사선과 병원은 중앙 역이 마주 보이는 건물의 5층과 6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일단 5층 접수처에서 진료 전 서류들을 간략? 하게 작성하고 접수를 마치고는 대기실로 가서 앉아 기다렸다. 다행히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사람들의 동선이 최대한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해 시간대 별로 상세히 나누어 예약을 받고 있던 덕분인지 아니면 그날 그 시간 따라 그랬던지 생각보다 대기실은 텅 비어 있었다.

집에서 나올 때 혹시라도 병원에서 우리 병원 환자들을 만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스카프에 선글라스 둘르고 변장?을 해야 하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던 것이 무색하리 만치 말이다.

못 올 때 온 것 아니고 의료진이라 해서 아프지 말라는 법 없지만 다른 병원 환자 대기실에서 우리 병원 환자들을 만나면 왠지 좀 어색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중국집 주인아줌마가 자기네 식당 두고 떡볶이 집에 와서 밥 먹다가 평소 자기네 식당에 짜장면 먹으러 자주 오던 손님과 만난 것과 비슷하려나?

어쨌거나 남의 병원 환자 대기실에 환자로 앉아 있으려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갔다.

한참 앉아 있으려니 운동 좀 한 것 같아 보이는 모습의 금발머리 처자 하나가 절뚝거리며 내가 앉아 기다리고 있던 대기실로 들어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누군가와 낮게 소곤거리듯 통화를 하면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다 무릎을 다쳤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음.. 그렇군...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아저씨 한분이 대기실로 들어와 창문 앞을 서성였다.

서성이는 모습이 허리가 아파 앉는 것보다 서있는 게  편하다던 우리 병원에 허리 아파 오신 환자들과 비슷해 보였다.

평소 우리 병원 대기실과 진료실을 오가며 환자들을 보다 환자가 되어 남의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으려니 기분이 묘했다.


드디어 내 이름이 호명되고 젊은 의료진을 따라 엑스레이실을 향해 긴 복도를 걸어갔다.

머리를 하나로 묶고 파란색 의료인 유니폼을 입은 앳된 보이는 젊은 MFA는 (독일의 의료 보조인 MFA) 탈의실로 나를 안내해 주고는 손에 든 진료 카드를 눈으로 훑으며 밝고 통통 튀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팔이 다 나오게 긴팔 티셔츠 벗으시고요 바지 벋고 나오시면 돼요" 했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한옥타브 올라간 목소리로 "바지도요?"라고 물었고 젊은 MFA는 "네 빤스만 남기시고요. 자 준비되면 이쪽 문 열고 나오세요”라며 다른 쪽 문을 닫고 급히 나가 버렸다. 그녀의 빠른 템포에 나도 모르게 바지를 벗으려다 문득 "아니 대체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팔을 다쳐서 엑스레이를 찍으러 왔는데 왜 바지를 벗어야 하는가 말이다.

나는 엉거주춤 탈의실 문을 열고 고개만 빼꼼히 내민 체 물었다.

"저기요 근데 바지는 왜 벗어야 하죠?다친 건 팔인데?"

엑스레이실에서 준비를 하고 있던 그 젊은 MFA는 내 진료 카드를 들어 보이며 친절하고 빠르게 다시 물었다."넘어지셨다면 서요? "나도 다정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 맞아요."

친절한 의료 보조인은 "여기 땅바닥에 팔 하고 무릎까지 다 닿았다고 노티 되어 있는데 그럼 팔,다리 무릎 다 찍어야 하시는 거 아니에요?"라고 했다.

나는 황당해서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미소로 때우며 이야기했다.

"네 다리랑 무릎이 닿기는 했는데 통증도 붓기도 없는 것으로 봐서 엑스레이는 필요 없을 것 같고요 이 오른팔이 엑스레이가 필요해요 특히나 여기 팔꿈치 뼈 있는 쪽이요"

아직 현장 경험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젊은 MFA는 유리창 너머 촬영 준비를 하고 있던 경력자로 보이는 그녀보다는 연배가 조금 되어 뵈는 갈색의 짧은 머리를 하고 있던 자그마한 체구의 MFA에게 다시 가서 물었고 그 갈색 머리의 MFA가 다시 나와 내게 확인을 하더니 오른쪽 팔만 촬영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날 나는 이제 일을 배우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열정 만렙의 의료 보조인 덕분에 그날 방사선 실에서 빤스만 입고 무릎에 다리까지 골고루 두루 방사선 마사지를 받을 뻔했다.


다행히 엑스레이 결과는 팔이 부러진 곳도 금이 간 곳도 없었다.

그런데 너무 세게 넘어지면서 상이 심해서 통증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방사선과 닥터의 소견이었다.

며칠 지나 감고 있던 압박붕대를 풀었고 생활하는데 크게 지장은 없었으나 그 후로도 타박상의 흔적인 멍자국과 부분적 붓기가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고 움직임에 따라 통증도 지속 됐다.

이거이 전치 2주 또는 3주라 부르는 거구만 했다.


P.S: 땅바닥 과의 과격한 만남으로 전치 2주? 였던

김 작가 인사드립니다. 오른팔이 불편함에도 그리스 여행기를 쓰느라 즐거웠습니다.

우리 독자님들도 함께 여행하시는 기분으로 읽어 주셨으리라 생각하며 안부를 전합니다.

독일은 제법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한국 뉴스에도 나왔듯이 확진자 숫자도 매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어요. 저희 병원은 요즘 독감 예방접종에 연세 있으신 환자들 부스터 접종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주 글을 올리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짬짬이 독일 병원 이야기와 일상 이야기 들고 오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벽난로 땔감 나무 배달 오는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