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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Feb 24. 2022

태풍 불던 밤 10시 초인종이 울렸다


이번 주는 이게 햇빛 귀한 독일 겨울 맞나? 싶게 햇빛 가득했다.

그 덕분에 갑작스러운 온기에 당황하신 꽃들이 미리 피여 봄인 줄 알고 앉아 있다.

그러나 불과 한주 전에만 해도 태풍주의보가 있었다. 유래 없이 세 가지나 되는 이름 다른 태풍이 한꺼번에 지나갔다.

그로 인해 독일도 고속도로 등지에서 사고 들이 연이어 있었고 인명 피해가 있었으며 소방관 들과 경찰관 구조요원 들이 비상이 걸렸다.

기차, 전차 버스 등 대중교통 들도 운행이 취소되거나 운행 시간이 바뀌었다.

또 시속 190 km의 강풍이 예보되었던 목요일은 아이들 유치원과 학교가 휴원 휴교에 들어갔다.

초등학교는 과제물로 수업을 대체했고

우리로 하면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합쳐진 김나지움에서는 가능한 수업들이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었다.

요 근래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태풍 때문에 아이들 학교가 문을 닫기는 처음이었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밖의 거센 바람 소리가 돌비 서라운드로 들려왔다

창문에 어른 거리는 나뭇가지 세차게 휘어지는 까만 그림자들이 공포영화의 한 장면 인양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원래도 독일의 겨울은 비바람이 잦다. 그러나 평상시 바람소리는 넷플릭스로 공포영화를 보는 듯하다면 태풍의 심상치 않은 소리는 영화관에 앉아 3D로 영화 감상을 하는 것 같은 차이 랄까?  


작년 이맘때는 몇십 년 만에 내린 폭설로 사람들이 동네 길거리에서 스키를 타고 다녔다. 서운함을 날려준 남편의 김치찌개


그런데 이번엔 비바람에 날아다닐 지경이라니 기가 막혔다. 점점 날씨가 왜 이다지도 이상스러워지는지 환경오염의 심각성이 다시금 떠올라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태풍 이어도 일 하러는 가야 하고 멍뭉이 산책은 가야 하니 집 밖으로 나갈 때마다 발가락 끝까지 힘주고 긴장하며 조심히 다녔다.

물론 기본 몸무게가 있다 보니 날아갈 걱정은 양심상 하지 않았다.

다만 길 가다가도 잘 자빠지는 스타일이라 넘어질까 신경을 썼을 뿐이다.

게다가 독일은 나무들이 많다 보니 바람에 꺾이고 부러진 가지 들은 날카로운 무기가 될 수 있다.

며칠 동안 출근 전 퇴근 후에 정원 안에 굴러 다니는 나뭇가지들 주워 치우는 일도 추가되었다.


지난주 이러다 방호복이 찢어지면 어쩌지? 싶을 만큼 강한 바람을 맞으며 야외에서 PCR 검사를 했다.

얇은 방호복을 하나 더 덧대어 착용하고 입었지만 거센 바람에는 당할 제간이 없어 보였고 꼼꼼히 묶고 붙인 방호복은 바람에 미친 듯이 펄럭였다.

PCR 검사를 받는 환자들은 코로나 자가테스트 양성을 받은 사람들이다. 30명 PCR 검사하면 그중 28명이 확진되는 경우라 정확하고 빠른 속도로 검사를 마무리하는 것이 서로의 안전을 위한 관건이다.

안 그래도 진땀 나는 검사를 태풍까지 정면으로 마주하고 하려니 산꼭대기에 서서 장애물 경기 퍼들 뛰어넘어야 하는 것처럼 난감하고 환장할 일이었다.

#41. 독일 동네 병원의 PCR 검사


PCR 검사를 위해 연구소로 보내지는 봉투 안에는 검사자의 환자 번호와 성명이 적혀있는 라벨이 붙은 길고 얇은 검체 봉이 들어 있는 투명한 검사 통과 검사자의 인적사항들이 인쇄되어 있는 검사서가 들어 있다.

환자를 호명하고 확인하고 검체를 한 후 검체봉을 통에 담아 검사서가 담겨 있는 봉투에 담고 그 봉투를 봉한다.

각각 이름표 붙어 있는 수십 개의 연구소 봉투들은 커다란 통에 따로 담겨 연구소로 운반된다.


그런데 태풍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검사 시 사용되는 일회용 장갑들을 담는 쓰레기통이 날아가고

검체 담은 봉지들은 담긴 통 안에서 삼바 춤을 추듯 나부꼈다.

이러다 통에 감겨 있던 봉투들이 바람결에 날아다닐까 두려워 문 닫힐까 괴어 놓는 쇳덩이들을 비닐 덮어 얹어 두었다. 장독 항아리에 돌 괴어 놓듯....

그렇게 무중력 상태의 우주선 안에서 날아다닐까 안간힘을 다해 귀퉁이 잡고 있듯 탁자를 부여잡고 간신히 끝낸 PCR 검사로 우리는 다른 날 보다 더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그놈의 태풍 때문에 온몸이 뻐근했다. 평소보다 더 지쳐 있던 우리는 몸은 힘든데 스트레스가 만빵이라 매운 게 당겼다.

장 봐 온 것들도 현관 앞에 팽개쳐 둔 체 저녁으로 고구마 들어간 라볶이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라볶이는 남편의 필살기 중에 하나다. 남편의 더 주까 라볶이

남편이 라볶이를 하는 동안 나는 냉장고와 냉동고로 나뉘어 들어가야 할 것들만 급한대로 정리해 두고 일단 쉬기로 했다.

정말이지 몸상태가 배터리 방전되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배불리 저녁을 먹고 요즘 한참 재미 들린 유튜브 채널 두 개를 번갈아 틀어 가며 따뜻한 차 한잔 마시니 몸이 저절로 흐물흐물 해 졌다.

앉아 있던 남편은 어느새 누워 있고 드렁 드렁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려 라볶이 해주느라 애썼지 싶어 깰세라 조심조심 담요를 덮어 주었다.

나는 집에서의 전투복인 운동복 차림에 머리는 산발을 해서는 자고 있는 남편 맞은편 소파에 앉아 비몽사몽 간에 유튜브 시청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노트북에서 들려오던 소리들은 점점 멀어져 갔고 눈꺼풀이 서서히 내려갔다.

벽난로에서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였다.


잠결에 띵동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비몽 사몽 간에도 벨소리? 에이 아니겠지 이 시간에? 라며 혼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그 후로 두 번 세 번 진짜로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오던 잠이 활딱 깨는 순간이었다 아니 누가 이 시간에?

독일에서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밤 10시 아무도 방문할 시간이 아니었다.

택배도 그 시간에는 다니지 않는다. 뭐지? 하고 있을 때 다시 한번 띵똥 하고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머리가 삐죽하고 솟았다. 독일은 아직 까지 열쇠로 되어 있는 집들이 많고 우리처럼 오래된 주택들은 누가 왔는지 확인할 수 있는 카메라 달린 인터폰이 아니라 누르면 띵똥 하고 소리가 나는 초인종이 달린 집들이 많다.

그야말로 옛날 우리 어린 시절 자주 하던 벨 누르고 도망가는 장난 하기 딱 좋게 생긴 초인종 들 말이다.

그래서 종종 우리 집도 어린애들이 벨 누르기 장난을 하고는 건너편 가로수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킥킥 거리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훤히 보이는 조그만 머리통들에 장단을 맞춰주며 누가 왔나? 하며 찾는 시늉을 해 주고는 한다.


그러나 애들도 자고 있을 밤 10시에 누가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는 말인가?

도저히 혼자서는 문을 열어 누군지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곤히 곯아떨어져 있는 남편을 깨웠다.

"여보야 일어나 봐 누가 왔나 봐 띵똥 했어 몇 번이나!"

아직도 잠에 취해 있던 남편은 "에이 이 밤중에 누가와!"그러고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 또 띵똥 했다.

그 소리에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머리로 까치집 짓던 남편도 어쩔 수 없이 부스스 일어났다.


나는 자다 깬 남편을 앞세우고 현관 앞으로 가며 머릿속엔 그동안 보았던 수많은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의 장면들이 오버랩 됐다.

뭔가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 필요 했다.

아쉬운 대로 현관 앞 우산 꽂이 통에 얌전히 꽂혀 있던 장우산을 꺼내 들고 나는 남편 뒤에 서서는 용감히 외쳤다.

 "여보야 문 조심해서 열어 확 열지 말고!"

엉거주춤 현관문을 열던 남편 바로 뒤로 우리 집 멍뭉이가 궁금한 듯 고개를 내밀고 나리 뒤에 내가 우산을 들고 섰다.

남편은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아 바람마저 거센 밖을 내다보며 조금은 짜증이 섞인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없어!"

깜깜한 밖에는 진짜 아무도 없었다.

남편이 현관문을 닫으려는 순간 우리 집 멍뭉이 나리가 열린 문틈으로 뛰어 나가려고 했다.

우리는 나리 가 차 다니는 밖으로 뛰어 나갈까 당황해 "나리!" 하며 급하게 불러대며 나리를 붙잡고 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의 우와!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잇는 우하하하 웃음소리…휴우~!

이 눔의 지지배 깜짝 놀랐네…


엄마 닮아 웃음소리가 특이한 울 딸내미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우리에 비해 초고성능의 귀를 가진 나리는 우리를 놀라게 해 주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딸내미를 알았던 거다.


그날 딸내미는 온다 간다 말도 없이 갑작스레 집에 왔다. 태풍 때문에 몇 번의 시간이 연기된 기차를 타고 베를린에서 그렇게 깜짝 선물이 되어 날아 왔다.

오밤중에 벨누르기 장난을 해서 엄마를 기함하게 하고는 그 장면을 유유히 핸드폰으로 담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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