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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r 07. 2022

독일은 편의점 대신 주유소


우리 집 현금 부자는 뭐니 뭐니 해도 김나지움 8학년인 우리 집 막내 시다. 우리로 하면 중학교 2학년이다.

우리는 가끔 급전? 이 필요할 때 막내에게 빌려 쓰고는 한다.

집마다 연령별로 주는 용돈의 크기와 주별 또는 월별 등의 지급 방법에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우리 막내의 경우 용돈으로 한 달에 15유로 한화로 약 2만 원가량을 받는다. 용돈을 받기 위해 하루 한번 강아지 나리와 산책, 마트에서 시장 봐 온 것들을 차에서 집까지 나르는 일, 정원에서 낙엽 정리 벽난로 나무 쌓기 등의 일들을 맡아서 한다.

적어 놓으니 아이가 용돈을 받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많은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낙엽 정리는 일 년 중에 가을에서 겨울 넘어가기 전 몇 번 그리고 벽난로용 나무 쌓는 것도 두 번 에서 세 번 정도이니 연간 행사에 가깝고 시장은 물 박스를 포함한 큰 장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보니 주간 행사 다.

결국 매일 해야 하는 일은 하루 세 번 은 해 주어야 하는 나리 산책 중에 한번 맡아 주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막내는 물가상승 대비 지나이 또래의 평균 용돈에 비해 턱없이 낮은 금액이라며 때마다 용돈 인상을 부르짖지만 우리는 요즘 코로나로 갈 데도 없고 돈 쓸 일도 없으니 당분간 인상 보류라고 버티고 있다.


(독일의 아이들 용돈이 궁금하신 분을 위해 :독일에서 아이들 용돈과 비 오는 날의 데이트*2017년 글이라 용돈 액수의 현재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막내 방에 가면 책상 옆 책 고지 위에 자물쇠 달린 회색 돈통이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 안에는 동전부터 종이돈까지 다양한 유로가 빼곡히 들어 있다.

몇 년째 코로나로 아이들이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곳이 제한되다 보니 받은 용돈이 자동으로 차곡차곡 쌓인 셈이다.

아이들 용돈 저금용 은행 계좌가 따로 있지만 코로나로 문을 열고 있는 은행 창구 수도 줄었고 시간 맞춰 돈 들고 은행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막내는 개인 금고? 에 돈을 모으며 엄마 아빠가 현금이 급히 필요할 때 빌려 주고 본의 아닌? 이자를 취하기도 한다.

가령, 막내에게 17유로를 빌렸는데 20유로짜리 종이돈 밖에 없을 때 20유로를 주며 3유로는 용돈에 보태 라고 하는 경우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것이 은근 짭짤했던 모양이다.


며칠 전에 일이었다. 갑자기 집에서 90유로를 현금으로 써야 할 일이 생겼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주로 카드로 결제를 하다 보니 현금을 인출할 일이 많지 않았다.

여기저기 뒤져 보아도 달랑 10유로짜리 한 장이 나왔다.

카드 결제가 안되고 현금을 내야 할 일이 있다 보니 당장 80유로가 필요했다.

독일은 집 앞에 나가면 은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택가에는 진짜로 집들만 조로 미 있다. 요즘은 마트 가서 카드로 결제하면서 현금도 함께 찾을 수도 있지만 거기까지 다녀올 시간이 없었다.

(예를 들어 마트에서 계산해야 할 금액에 필요한 금액을 더해서 카드결제를 하면 현금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


다음날 바로 주기로 하고 우선은 우리 집 개인금고? 인 막내에게 80유로를 빌렸다.

그런데….

“내일 은행 다녀와서 갚을게” 했더니 요놈이 웃으며 “그럼 90유로?” 하는 게 아닌가?

하~요놈 봐라… 하루 상간에 10유로 이자 라니 무슨 사채도 아니고 말이야

깬몽이다 이번엔 80유로 딱 맞춰 줄란다.


막내에게 빌린 80유로를 갚기 위해 일요일 낮 차를 타고 우리는 시내에 있는 은행으로 향했다.

창구는 닫혀 있지만 현금인출기는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출기에서 다양하게 섞여서 나오리라 예상했는데 50 유로 짜리 지폐만 나왔다.

이런 난감할 데가.... 바꿔줄 돈이 없는데...

일요일이라 문을 연 상점도 없고.. 우리는 일단 주유소로 가기로 했다.

엊그제 주유를 해 두어서 주유할 일은 없었지만 커피에 도넛이라도 사면 지폐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주유소는 샐프 주유소에 우리의 편의점을 섞어 놓은 듯한 모습 이라고나 할까?

물론 동네에 따라 24시간이 아니라 23시 또는 20시 까지 문을 열지만 일요일과 공휴일 에도 가능하다는 것이 24시간 편의점이 없는 독일 에서 그나마 필요한 것이 있을때 급하게 갈수 있다. 


독일에서는 마트와 상점들이 문을 닫는 일요일 주유소에 가면 급하게 필요한 우유, 식용유, 설탕, 밀가루 등도 살 수 있고 마누라의 생일 또는 기념일을 깜박하신 남편들을 구제해 줄 꽃다발도 살 수 있다.

냉동 피자, 감자튀김 등 마트에 비해 가격이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장 봐 둔 것 없이 일요일 또는 공휴일을 맞았을 때 급한 대로 주유소에서 사다 쓰는 사람들도 있다.


우쨌거나 샴푸, 면도기, 반창고 등의 생활 용품 또는 과자,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의 간식거리 그리고 우유, 콜라, 맥주 등의 마실거리 등이 갖추어져 있는 독일의 주유소는 일요일에도 필요한 것을 살 수 있다는 장점 이 있다.

우리가 들린 주유소는 ARAL 이라는 주유소에 REWE 라는 마트에서 물품이 들어 오게 되어 있어서 생활 용품이 다른 주유소들 보다 조금 더 많다. 

마침 도넛 5개 한 봉지에 4유로 99 세일 이다. 우리는 도넛 한 봉지와 카푸치노 내일 아침 먹을 크로와상을 담았다

그리고 이따 저녁에 남편과 한잔씩 나눠 마실 과일맛 맥주 한 병을 담았다.

문득 예전 유학생 시절 사람들과 집에 모여 삼겹살 굽고 맥주 마시고 이야기하다가 마시던 맥주가 똑 떨어져 마트도 문 닫은 늦은 시간 남편과 맥주 사러 주유소로 갔던 것이 기억난다. 

요즘이야 마트도 12시까지 문을 연 곳이 있고 코로나로 사람들과 모일 일도 없다 보니 그럴 일도 드물어졌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일요일 주유소에서 이렇게 뭔가를 사다 보니 사람들과 삼겹살 굽던 날들과 마스크 없이 다니던 날이 그리워진다. 

곧 그런 날도 다시 오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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