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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r 12. 2022

그러다 하늘 높이 날 겠네!

징크스  오전 9시 30분


언젠가 남편과 함께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심봤다를 외쳤던 한국 드라마 가 있다. 우리를 뒤늦게 정중행 하게 만든 드라마는 낭만 닥터 김사부였다. 돈과 권력에 굴하지 않고 그만의 철학을 가지고 사는 멋진 의사 김사부, 한국에서는 2016년 11월에 절찬리에 방영된 지 한참인 드라마였다. 배우 한석규 님과 서현진, 유연석 등등 연기력 출중한 배우들이 대거 나오는 메디컬 시즌 드라마인데 올해 시즌 3가 나온다고 해서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다.


어쨌거나 드라마 속 이야기의 중심인 돌담이라는 병원은 시골 병원이다.

겉보기에도 낡고 오래된 돌담 병원은 평소 환자도 그리 많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주말 이 시작되는 금요일 오후부터는 난리가 난다.

주말이면 그 동네의 카지노가 장사진을 이루고 고속도로를 이용해 야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 사건사고가 많은 동네였다.

돌담 병원이 그 근처 고속도로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라 응급센터의 역할을 톡톡히 감당하고 있었다.

늘 그러하듯 드라마 상에서 등장하는 동네와 병원은 가상의 것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의료현장에서의 고군분투와 알콩 달콩은 드라마 이기 때문에 과장된 부분도 아름다이 묘사된 면도 있다.

그러나 몇몇 그런 장면들을 제외하고는 극 중 이야기가 꽤나 설득력 있고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여러 장면들 중 하나 가 있다.

너무나 평화 고 조용한 병원 응급실 내에서 그 병원으로 새로 부임한 인턴이 스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인턴이 "그런데 아침이라 그런가 생각보다 환자가 별로 없네요!"라고 한다.

그 말에 모두가 사색이 된다. 그리고 수간호사 선생님이 "돌담 병원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어요!"라고 한다.

말하자면 환자가 별로 없다 라는 말이 그 병원의 징크스였던 셈이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잠잠하던 응급실 안에서 세차게 전화벨이 울려 대고 인턴은 말도 안돼 를 되뇐다.

낭만 닥터 김사부 시즌 2에 나오는 장면이다.

그 장면이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병원에도 그와 비슷한 징크스가 있기 때문이다.



병원일을 시작 한 첫해에 있었던 일이다. 그때 정년퇴직을 삼 개월 미루고 우리를 도와준 30년 차 간호사 유타와 일을 하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진료 시간 시작하기도 전에 전화벨이 울려 대고 거기에 병원 초인종 소리가 함께 들려오고 정신없을 시간인데 그날따라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 고요함 속에 시곗바늘 돌아가는 소리가 착착 들릴 정도 였다.

그 당시 병원일에 관해 아는 게 없어 어리바리하던 내가 드라마 김사부의 인턴처럼 순진무군한 표정으로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어 이상하다 오늘 왜 이렇게 한가 하지?!"

내 말을 들었을 때 유타도 드라마 김사부의 수간호사 선생님처럼 사색이 돼서는 그런 얘기 하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한가 해서 한가 하다고 했는데 뭐가 문제지? 라며 눈만 꿈뻑이며 “왜?”라고 다시 물었다.

유타는 비밀 이야기 라도 몰래 전해 주듯 “오전 9시 30 지날 때 까지는 절대로 그렇게 말하면 안돼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거야!”했다.

그런데 진짜 신기하게도 시계가 9시 30분이 지나가고 나니 갑자기 조용하던 전화가 기다렸다는 듯이 울려 대고 병원 초인종이 나팔 불듯 울려 대며 환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동시 다발로 밀려들었다. 일이 익숙지 않아 더욱 당황스럽던 나는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다음부터 우리 병원 이른 아침 진료 시간에 오늘 한가 하네 라는 말은 어느덧 금기어가 되었다.

아직 9시 30분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실습생 꼬치가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던 날이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여유로운 아침 나는 커피 캡슐만 넣고 손가락 하나로 누르면 되는 커피를 바리스타 라도 된 양 열 손가락 다 써가며 직원들 커피를 내려 주었다.

기뻐하며 라테를 받아 들던 꼬치가 물었다 " 오 고마워 잘 마실게, 근데 오늘 왜 이렇게 한가하지?"

오 쒯 나는 순간 흡사 김 싸부에 나오는 수쌤의 대략 난감한 표정 그대로 일 것이 분명한 표정으로 옛날 옛적에 유타가 내게 들려주었던 톤으로 낮고 비밀스럽게 말했다. 마치 무림의 고수가 꼬깃꼬깃 꼬불쳐둔 비서 한 장을 손 덜덜 떨어 가며 전해 주듯...

"9시 30분 전에 그런 말 하면 큰일 나!"


그날 황당해하던 꼬치의 표정을 배경 삼아 전화벨 소리와 병원 초인종이 동시에 울려 댔고 계모임처럼 함께 들이닥치는 환자들을 상대하느라 모두 혼비백산이 되었다.

이렇게 저렇게 뛰어다니고 있는데 뱃속에서 우르릉 우르릉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코로나던 감기던 걸리지 않게 잘 챙겨 먹자고 아침마다 남편이 무더기로 챙겨 주는 영양제들을 먹고 그 거이 소화가 되기도 전에 병원이 바쁘게 돌아가지 않은 틈을타 우유 잔뜩 들어간 라테를 한잔 마셔 주셨다.

아마도 그 탓인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나이? 가 있어 괄약근 조절이 잘 안 되는데 바빠서 뛰어다니다 보니 양심도 없는? 소리들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삑삑 물 묻은 슬리퍼에서 나는 삐약 거리는 소리와 비슷해서 바닥에 신발 끌리는 소리인 것처럼 신발로 몇 번 바닥을 차는 것으로 위장? 이 가능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새어 나오는 소리가 대범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뛰지 않고 천천히 걸어서 일단 사무실 의자에 앉았다. 키보드를 치는 소리로 감출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타다 타닥 타 다다 키보드 소리로도 가리지 못할 용맹하고 힘찬 빡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마터면 로켓처럼 공중으로 부양할 뻔했다. 이런된쟝!

나는 들었으려나? 들었겠지? 하며 소심하게 고개를 들어 눈만 굴려 복도를 오가는 환자들과 옆방에 있는 직원들을 훑어보았다.

조용했다 못 들은 게 분명했다.


자기 일에 집중하다 보면 이 정도 소리는 못 들었을 수 있지 암만 그렇고 말고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며

간신히 조심스레 발길을 옮겨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안에서 그야말로 변기의 물이 파도치도록 사정없이 내려가며 푸쉬쉭 뽝뽝 교향곡을 연주했다.

그푸쉬쉭 소리들은 마치 양볼에 힘껏 바람을 채워 빵빵하게 불었던 풍선을 잡아 묶지 않고 붙들고 있던 손가락을 살짝 놓았을 때 풍선이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하늘을 날다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칠 때 나는 소리와 비슷했다.

오 할렐루야 이 홀가분함이라니!


그런데 사무실 옆 채혈 등을 하는 검사실 문 닫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문은 닫을 때 드르륵 철커덕하고 나는 소리가 거슬리게 커서 웬만해서는 닫지 않는 문이다.

아뿔싸, 파도 같은 물소리 로도 장엄한 교향곡의 소리를 막아 내지는 못했나 보다

그럼에도 뱃속 가득했던 가스를 원 없이 방출한 나는 몸도 마음도 가쁜해 져서 힘차게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런데...

쌍둥이 같이 똑 닮은 자매 할머니 환자 두 분이 복사판 같은 얼굴만큼이나 같은 표정으로 화장실 앞에 서 있었다.

그 표정은 딱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아예 하늘 높이 날 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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