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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pr 01. 2022

금요일은 우리 동네 장 서는 날

독일 동네 장날 랜선 장보기


독일은 동네마다 일주일에 한 번 또는 두 번 요일을 달리 하는 Wochenmarkt라는 장이 선다.

우리 동네는 금요일마다 오전 7시부터 13시까지 장이 선다. 장에는 근교에서 농사짓는 분들이 직접 채소, 과일, 달걀, 고기, 생선, 꿀 , 꽃 등을 들고 나오신다.

말하자면 농가 산지 직송 판매되겠다. 동네 마트의 채소나 과일들은 비행기 또는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와야 하는 유통 과정을 거친 것들이라 이곳에서 만나지는 과일과 채소의 신선도 와는 비교할 수 없다.

단지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이 쪼금 비싸다. 물론 이곳에서의 소비가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데에서 큰 의미가 있지만 말이다.

또 매주 그때그때 필요한 양만큼 사서 소비하는 것은 건강에도 좋고 한꺼번에 마트에서 많이 사다 놓고 제때 못써서 썩혀 버리는 것을 생각하면 가계에 더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동네 장은 신선한 농산품들을 만나는 것뿐만 아니라 오래 알고 지낸 동네 지인들을 약속 없이 우연히 만나게 되는 즐거움도 덤으로 선사한다.

언젠가는 아이들 학교 학부형들을 만나게 되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예전 살던 집의 이웃을 만나기도 한다.

그래서 금요일 장을 참 좋아한다. 예전에는 친구들과 커피 모임도 하고는 했었는데 병원일을 시작하고 부터는 장 서는 금요일에 좀처럼 나와 보기가 쉽지 않다.


새로 산 세탁기를 기술자 아저씨가 고쳐 주신 그날 (*바로 위에 글입니다)은 공교롭게도 금요일이었다.

아저씨가 다른 도시로 출장 가시기 전에 우리 집을 제일 먼저 들려주신 덕분에 나는 월차 낸김에 금요 장을 갈 시간도 벌었다. 이것이 바로 일타쌍피가 아니던가

드디어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돌려놓고는 장바구니 들고 동네 장 서는 곳으로 향했다.

이 얼마만의 금요일 오전 나들이 던가.. 세탁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어 친구들과 커피 약속은 잡지 못해 아쉬 뒀지만 혼자 장 보러 나오는 맛도 나름 쏠쏠했다.

이 얼마만의 코에 쌩 바람 쐬어주는 날인가 멀리서도 잘 보이는 초록색 줄무늬 포장마차? 포장 들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언제나 그러하듯 우리 동네 장터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채소 농가에서 줄지어 내어 놓은 제철 농산물 들이다.

초록잎 나불 대는 샐러리와 색도 잘 어울리는 당근이 싱싱하다 남편을 위한 종종 짜주는 건강 주스를 위해 조금 담는다. 그리고 독일의 아스파라거스 슈파겔이 나오기 전에 잠깐 출몰? 하시는 우엉이 제철이다.

오렌지빛 당근 앞에 있는 흙갈색의 길고 긴 것이 우엉이다.

우엉 한 움큼을 담으려던 손을 거둔다.

아이들이 모두 집에 있을 때는 우엉을 조금 사다가 껍질 까서 얇게 채쳐 볶아 밥반찬으로 내거나 김밥 안에 넣어 말아 주면 곧잘 먹고는 했는데 지금은 조금 사서 만든다 해도 남편과 한번 먹고 냉장고에서 돌아다니다 결국은 버리게 될게 뻔하기 때문이다.

막내는 우엉을 먹지 않는다. 자타공인 미식가이신 막내는 우엉의 식감이 싫다 했다.

건강에 좋다고 하나 억지로 먹일 수는 없으니 통과..


채소 가게들을 가로질러가면 수제 누들 집이 나온다.

오늘은 여기 먼저..



카타리나 아주머니네 수제 누들 집은 수요일부터 종류 다른 누들과 소스들을 직접 만들어서 금요일과 토요일에 장서는 동네마다 한 바퀴 돌며 판매를 하신다.

매번 비슷한 양의 누들과 소스들은 남는 것이 없다고 했다. 반죽해서 손으로 직접 뽑은 수제 스파게티 면은 건조된 면에 비해 짜장면 또는 짬뽕을 만들어 먹기에 그럴 듯 한 맛을 낸다.

점심메뉴는 짜장으로 정하고 수제 스파게티를 넉넉히 사서 장바구니에 담는다.

이제 힐데브란트 아주머니네 가서 짜장 소스에 들어갈 돼지고기 목살을 살 차례 다.

그런데 줄이 무지 길다.

동네 장 서는 날 기다리시는 주민 여러분 들이 종류대로 담기 때문에 줄이 줄지를 않는다.

장터에서 딱 한 군데 있는 생선 가게도 마찬 가지...

독일에서는 금요일은 생선을 먹는 날이다. 종교적 의미가 들어가 있기도 하지만 오래된 습관 같은 것이다.

대학교 학생 식당에서도 금요일 이면 생선 요리 한두 가지는 늘 나오기 마련이다.

생선 사겠다고 줄 서 있다가는 오늘 내에 장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짜장 소스에 넣을 감자를 우선 사러 가야겠다.


생선 가게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내가 주로 과일과 감자를 사러 가는 가게가 나온다.

동네 장 터에는 청과물 이 가장 많다 그 여러 군데 중에서 유독 나는 이곳으로 감자를 사기 위해 간다.

왜냐하면...


여기는 우선 감자가 6가지 이상 종류들로 어떤 요리를 할 것 인가에 따라 무르기가 다른 감자를 골라 담을 수가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옛날이야기 에나 나올 것 같이 생긴 추를 다는 저울에 감자를 달아서 판다.

이 앤티크 냄새 솔솔 풍기는 저울은 생긴 것만큼이나 후하 기도 하다.

전자저울처럼 칼같이 소수점까지 찍어 나누지 않고 대강 위로 아래로 흔들거리다가 가끔은 감자 한두 개가 덤처럼 더 담긴다.

이 푸근한 저울은 나를 예전 어린 시절 살았던 한국의 동네 골목 시장으로 데려가고는 한다.

"아유 이러면 손해 나는데.." 하시면 서도 한두 개 꼭 덤으로 넣어 주시던 채소 할매와 때깔 고운 돼지고기 큼직하게 숭덩숭덩 썰어 주면서 "많이 먹고 많이 크라고 실컷 담았다"라고 웃으시던 정육점 아주머니 그리고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며 금방 뽑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을 파시던 아저씨....

엄마를 따라 시장을 자주 다니던 내게는 아직도 눈에 선한 시장 골목 풍경이다.


짜장 소스에 넣을 감자, 딱딱한 감자 요리에 쓰이는 종류인 Annabelle 아나벨레 1킬로 담았다.

그리고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겉껍질 얇아 보이는 귤 1킬로 넣고 고기를 사러 간다.


헐 그런데 아직도 고깃집은 줄이 길다. 그럼 달걀을 먼저 사자.

클라우스 아저씨네는 우리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양계장을 하신다.

풀어놓고 키우는 닭들이 낳은 이곳의 달걀은 크기도 크고 신선해서 달걀찜을 만들면 포근포근 맛난 스펀지 케이크 같은 달걀찜이 나온다.

오랜만에 만난 아저씨네 지금은 닭이 얼마나 되냐고 여쭤 보니 천 마리 남짓 된다고 하신다.

"그새 그렇게 많이 늘었어요?" 했더니 "2만 마리씩 키우는 곳도 많은데 우린 거기 비하면 구멍가게 죠, 근데 더 많아지면 우린 힘들어서 못해요.!" 하시며 시원스레 웃으신다.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장 날이면 집안 텃밭에서 키운 채소 조금 그리고 닭들이 낳은 달걀 몇 판 을 들고 오신다.

숫자가 정해져 있고 맛나다 보니 금세 다 팔리면 없다.

나는 사람 좋은 아줌마 아저씨가 들으시면 놀라실지 모르지만 닭들이 더 이상은 많아지지 않았음 한다.

이렇게 조롱조롱 집에서 키운 것들을 동네 사람들과 나눠 먹듯 하시는 그분들의 소소하고 정스런 가게가 지금 그대로의 모습 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채소에 과일 누들 거기에 계란까지 담기니 장바구니가 제법 묵직하다.

조금씩 필요한 것 만 사가자 싶어 밀대 달린 가방 대신 넉넉한 천가방을 들고 나왔더니 어깻죽지가 아파 온다.

힐데브란트 아주머니네 고깃집 앞에 줄을 섰다.

여기저기 돌고 와서 이제 사야 하는 것은 고기뿐인데 아직도 그 줄이 그 줄이니 별수 없다 시간이 걸려도 기다리는 수밖에...

장바구니를 어깨에 걸고 기다리며 눈으로 꽃집이 내어 놓은 꽃구경을 한다.

제철 채소나 과일 못지않게 동네 장에는 꽃 들도 계절에 따라 그 계절의 주인공들이 나와 있기 마련이다.

봄에 전령 같은 프리멜 들과 튤립들이 어여쁜 자태를 뽐내고 줄지어 있다.

지난 일요일에 정원용품 상가에 가서 잔뜩 들고 오지 않았다면 그 유혹에 못 이겨 한두 개 들고 오고 말았을 것이다.

어? 그런데 프리멜 하나에 1유로 50센트다 우린 그날 하나에 99센트 주고 샀는데 60센트씩 20개니까 앗싸 12유로 아꼈다.

60센트 하니까 별거 아닌 것 같은데 합쳐 보니 꽤 크게 느껴진다.


힐데브란트 아주머니네서 고기 종류 별로 요것조것 담아 가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가 끝나고 드디어 내 순서가 왔다.

원래는 돼지 목살 몇 쪽 하고 알레뷔어스트(육포 )하나 사 가려고 했는데...

앞에 사가시던 분들이 감자 샐러드와  Frikadelle 프리카델레(우리의 동그랑땡의 확대판이라 보면 되는 커다란 고기 )를 사 가시는 것을 보고 나도 덩달아 담았다.

가끔은 다른 사람들이 많이 사가는 것을 커닝? 하듯 따라 사 보는 것도 가끔 괜찮은 결과를 가져온다


이제 오늘 장은 다 보았다. 집으로 가는 길...

이제는 매고 있는 장바구니에 더 이상 자리도 없고 어깨도 아프지만...

동내 장 초입에 있는 소시지 아저씨가 그릴 하고 있는 소시지 냄새가 너무 그럴듯하다.


직접 만들어 온 소시지를 그릴에 지글지글 구워 파시는 소시지 아저씨는 우리네 시장 전만큼이나 인기다.

커다란 철판에 기름 둘러 지지직 하는 소리를 내며 익어 가는 김치전, 녹두 빈대떡 은 시장 입구부터 고소한 냄새가 가득하다.

소시지 아저씨 그릴이 그렇다 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소시지 구워지는 소리와 냄새가 장터에 진동을 한다.

침이 저절로 꼴까닥 넘어간다.

남편이 보았다면 참새가 방앗간을 못지나 간다고 하겠지만 나는 오늘 점심은 그릴 소시지와 감자 샐러드로 하기로 하고 저녁을 짜장면으로 메뉴를 급 변경한다.

 

집에 가서 풀어 보면 별거 없겠지만 장바구니 가득 장을 보고 나니 마음도 꽉 차 오른다.  


To 애독자님.

독일은 3월 내내 봄 이 완연한 날씨의 연속이었습니다.

이것이 어쩐 일인가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4월로 들어서며 온도 쭉 내려가고 독일의 전형적인 흐린 날씨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일기 예보에서는 내일 눈 까지 올 것이라 하네요.

정원에 심어 놓은 꽃들이 놀라 기절할 일이지요.ㅎㅎ

지난번 날씨 좋던 금요일 월차 낸 김에 동네 장서는날 이라 장 도 보았습니다.

우리 독자님 들과 함께 수다 떨며 장 보는기분으로 글 하나 투척 합니다.

어떠셨나요? 재미 있으셨나요?

모든 님들 건강하시고 활짝 핀 튤립 같이 화사한 주말 되시어요

독일에서 김중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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