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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Nov 25. 2022

 엄마의 촉이 말했다…

딸내미의 연애


우리는 뭔가를 본능 적으로 또는 느낌 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을 직감 또는 감이라 부른다.

그 감을 좀 더 극대화해서 표현하는 말이 있다 바로 촉이다.

촉이라는 단어는 사실 난초 한 촉 두 촉 할 때 수사처럼 쓰인다. 우리가 자주 감 적인 것으로 사용하는 촉은 사전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촉각이 곤두선다 할 때 사용하는 촉각에서 촉만 따로 떼어내 줄임말처럼 쓰기 시작했던 게 아닐까 한다.

사전적으로 풀이될 수 없지만 우리는 언젠가부터 감 또는 직감, 본능 따위 의 것들을 압축해 좀 더 본능에 가깝게 표현할 때 촉을 사용해 왔지 싶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감 보다 촉이라는 말이 더 끌릴 때가 있다.

같은 뜻이지만 "감이 온다 감이 와~!" 보다는 왠지 "촉이 온다 촉이 와~!"라고 하면 그 의미가 더 선명하게 와닿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촉이 발달한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엄마 일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열 달 동안 손꼽아 기다리던 세상 귀한 아이가 태어나

아기 때는 할 줄 아는 것이 라고는 주로 우는 것뿐이다.

배가 고파도 울고 기저귀가 젖어도 울고 어디가 불편 해도 울고 기분이 나빠도 울고 그냥 울기도 한다.

하루 종일 울어 대는 아기 때문에 지친 엄마는 같이 울고 싶어 지는 순간도 있지만 어쩌다 방긋 한방에 녹아내리기도 한다

"도대체 왜 우냐?"를 수시로 분석해내고 빠르게 답을 알아내야 하니 엄마는 그놈의 촉이 발달하지 않을 래야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엄마 들은 내 아이의 모든 일을 알 수는 없지만 내 아이에 대해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일 것이다.

아이가 “어떻게 알았어?”라고 물으면

"당연하지, 엄마 니까!”한 문장으로 게임 끝이니 말이다.



아이들이 자라 연애를 할 나이가 되면 엄마의 그 촉은 어느 숨 가쁜 군사기지의 전자동 레이더망이 된다.

어느 날 우리 집에 하나 있는 딸내미가 집으로 남자 사람 친구를 한 명 데려 왔다.

지말로는 수학을 잘하는 아이라 숙제 도와주러 온 친구라 했다.

늘 남녀 할 것 없이 여러 명의 학교 친구들과 집에서 집으로 오거니 가거니 하며 공부도 하고 파티도 하고 했지만 그때까지 엄마가 이름을 모르는 남사친은 한 명도 없었으며 그렇게 딱 한 명만 데리고 온 적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현관 앞에 우리 집 식구 것이 아닌 항공모함 같은 낯선 남자 신발을 보니 기분이 묘 했다.

엄마의 촉은 말했다 최소한 썸이라고...

그 후 당연하게도 그 아이는 딸내미의 생애 첫 남자 친구가 되었다.

아이는 예의 바르고 다정했으며 착해 보였다.


독일에서 오래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한국에 계신 지인 들이 간혹 이렇게 묻고 는 한다.

"애들이 아무래도 그 동네 사람들 만날 기회가 더 많을 텐데 한국 사람이 아닌 사람을 데려 오면 어떻게 해요?"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어디 사람이 중요한 가요?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죠!”

그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데 조금 더 솔직 하자면 사실 엄빠 에겐 누구를 데려 와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딸내미의 남자 친구에겐 남편의 레이더가 초고속이 되었다.

어찌나 노심초사하는지 집에 데리고 와서 늦게 까지 놀아도 "쟤는 왜 지네 집에 안 간다니!" 하며 뾰로통 해 있고 그 애 집에 놀러 가 있어도 "아니 늦은 밤에 딸내미는 왜 집에 안 들어 오냐!" 고 전전긍긍했다.

나는 "초등학생도 연애한다는 요즘에 한창 연애할 나이의 아이들을 쫓아다닐 수도 없고 밖으로 싸돌아 다니는 거보다 눈앞에 보이는 게 더 났지!" 해가며 툴툴 거리는 남편을 달래고 퉁박을 주고는 했다.



그러나 나도 내심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궁금했다.

잠깐씩 만나는 것 가지고야 사람을 다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

어른 들 앞에서야 잘 보이고 싶으니 멀쩡해 보이려 노력할 수도 있지 않나?

평소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길래 옳다구나 하고 두 놈을 내 요리강습에 초대했다.

딸내미의 남자 친구를 제대로 조사? 해 보기 위해서였다.


4시간 넘는 요리강습을 함께 하다 보면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이 나오지는 않지만 꽤 많은 것을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주방에서는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 드러 난다.

같은 주방에서 20명 되는 사람들이 대여섯 조로 나뉘어 여러 가지 음식을 함께 요리하다 보면 그 사람의 역사는 알 수 없어도 그 사람의 기본적인 성격은 나오게 마련이다.

성질 급한 사람, 신중한 사람, 남에게 배려하는 게 몸에 밴 사람, 저만 아는 것에 체질화된 사람, 까탈스러운 사람, 수더분한 사람, 예민한 사람, 다소 둔한 사람 등등....

거기에 순간순간 예상할 수 없는 뜻밖의 돌발 상황들은 때로 많은 것을 엿보게 해 준다


얼핏 들여다본 딸내미와 남친이는 둘이 너무 달랐다.

혹자는 남녀가 반대여야 잘 산다 는말도 있고 똑같으면 맨날 싸운다 달라야 서로 보충이 된다는 말들도 있다.

그런데 너무 달라도 쉽지 않을 수가 있다.


한국요리는 손이 많이 간다. 그렇다 보니 주방용품들도 골고루 사용하게 된다

그중에는 무게가 꽤 되는 솥들을 불위에 들었다 놨다 해야 하는 일들도 있고 뭔가를 삶아 데치려면 무거운 솥에 담긴 뜨거운 물을 쏟아 내기도 해야 하며 차가운 물에 한참을 씻고 헹구고 다듬어야 하는 일도 다수다.

딸내미는 성격이 급한 편이고 다른 이들이 도움이 필요하다 싶을 때 몸이 먼저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같은 조원중에 나이 든 분들이 들기 힘들어 보이면 바로 움직인다.

집에서도 어느 곳에서도 그렇다. 딸내미는 이것 좀 도와주라 하기 전에 먼저 곁에 와 있다.


딸내미의 남자 친구는 서글서글하고 붙임성이 좋아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잘 어울렸고 리더십이 강해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런데 정작 몸을 움직여야 할 때는 머리로 생각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었다.

주방에서의 일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그것은 극히 작은 하나의 단편일 뿐이니 말이다.

세상에는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가 그중에는 장점만 가진이도 단점만 가진이도 없을 테다.

그러니 성격만 가지고 누가 더 좋고 나쁘고를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지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다라고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딸내미의 입에서 남자 친구의 이름이 자주 나오지 않았고 수시로 보내던 문자도 남자 친구가 아닌 여자 친구들과 만으로 바뀌고 있었다.

엄마의 촉이 말했다 헤어졌구나...

어느 날 딸내미와 함께 차를 마시며 오늘 저녁 뭐 먹을래라고 묻듯 태연하게 물었다 “

남자 친구 이랑 헤어졌니?"

딸내미는 안 그래도 큰 눈이 휘둥그래 져서는 "어떻게 알았어!" 라며 눈물을 글썽 였다


나는 "엄마니까 다 알지!" 라며

"괜찮아 다 괜찮아 울고 싶을 때 소리 내서 실컷 울어야 돼 그래야 마음속에 슬픔이 가라앉지 않아!"라고 했다.

딸내미는 그렇게 품 안에서 한참 울음을 토해 냈다.


한동안 딸내미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울었다그렇게 제법 괜찮아져 보일 때쯤 이였다.

주말에 딸내미만 데리고 시내에 나가 쇼핑을 다녔다

딸내미 옷 몇가지 들어 있는 쇼핑 봉투 들고 평소 자주 가던 북카페에서 달달한 오렌지 케익을 나눠 먹고 라떼 마끼아또와 카푸치노차를 마시며 지나가듯 물었다

"서로 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

대학이 각각 다른 도시여서 떨어져 지내다 보니 혹시나 서로 다른 이성이 눈에 들어왔나? 하는 노파심에서였다.

그건 아니라고 했다. 성격이 너무 안 맞아서 지금 헤어지는 게 났겠다는 결론을 냈다고 했다.


예상 하기는 했다만 그렇다고 지네가 연예인도 아니고 갑자기?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래 네가 그렇게 결정한 거였다면 됐어 엄마는 너와 남자 친구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라며 조금은 담담해 진 딸내미와

이별 중에 아프지 않은 이별은 없겠으나 딸내미와 남자 친구는 사랑과 이별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스물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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