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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an 27. 2023

힙한 사탕가게에서 만난 한국


언밸런스하지만 눈에 들어와

시내에 나갈 일이 있다고 하니 막내가 눈이 동그래서는 손에 든 핸드폰으로 휙휙 클릭해서 사진들을 보여 줬다.

그리고는 막내의 필살기인 애교 넘치는 눈웃음과 어깨 실룩실룩 을 흩뿌리며 내게 부탁을 해왔다.

"엄마 이거 저거 요거 진짜 맛있데 리뷰 엄청 많아 근데 쫌 비싸 그래도 사다 줄거지? 엉?"

얼핏 본 사진 속에는 180이 훌쩍 넘는 키에 굵은 목소리 막내와는 어쩐지 안 어울리는 알록달록 한 사탕들과 초콜릿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뜻밖의 것에 터진 웃음을 베어 문 나는 "그래, 엄마 다 못 외우니까 톡으로 사진 보내!" 했다.

엄마의 오케이 사인에 신이 난 막내는 "엄마 사랑해!"를 발사하고 방으로 사라졌다.

우리 집에서 사랑해, 고마워 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막내다.

사춘기 청소년답게 수시로 기분이 바이킹을 타지만 작은 것에 감동을 잘하고 반응이 빠른 막내는 그만큼 기분에 따라 사랑해, 고마워,를 자주 날리고는 한다.


우리로 하면 중3인 막내가 그토록 먹어 보고 싶다던 사진 속의 사탕들은 요즘 우리 동네에 새로 생겨 힙하다고 소문난 사탕 가게에 있다고 했다.

시청 근처 라던 사탕가게는 골목길 어디쯤 있지 않을까? 했는데 찾기 쉽게 대로변에 있었다.

그것도 달콤한 하우스라는 눈에 확 띄는 간판을 달고 위풍당당하게 말이다.

독일의 회색빛 하늘 아래 파스텔 톤의 다른 건물들 과는 언밸런스한 색감의 사탕가게는 그래서 자꾸만 눈이 간다.


문을 열고 들어간 사탕가게는 밖에서 상상하던 것보다 더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 영화에 등장하는 사탕공장 같기도 하고 어디선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마법사가 뿅 하고 나타날 것 같은 판타지 스런 분위기라고나 할까?

이름도 익숙지 않은 과자들과 초콜릿, 알록달록한 사탕들로 가득 찬 사탕가게는 아이들에겐 별천지 일게다.


마트 가면 넘쳐 나는 것이 사탕, 하리보, 초콜릿 들인데 뜬금없이 사탕 가게?라고 생각 했는데 가게 안에는 이 동네가 아니라 대륙을 건너온 것들로 보이는 게 많았다.

톡으로 사진 보내라고 하기를 잘했지 뭔 달달이 종류가 이리도 많은지 그냥 왔다면 멍하니 서서 뭘 사다 달라고 했더라? 하며 숨바꼭질 할 뻔했다.


그런데... 가격표를 내가 잘못 보았나? 했다.

비싸다고 막내가 미리 예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탕과 과자일 뿐인데 가격들이 만만치 않았다.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타고 날아왔는지 두바이에서 왔다는 초콜릿 사탕은 한 봉지에 9유로 90센트씩이나 했다.

한화로 하면 약 만삼천 원이 넘어간다.

보통 마트에서 2유로 99센트에 파는 초콜릿 사탕과 겉모습은 별차이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두바이에서 건너온 이아이는 킨더조이 맛과 비슷한 맛이라고 했다.

 동네에서 Kinder Überraschung

킨더 위버라슝이라는 달걀처럼 생긴 초콜릿이 있다.(아마 한국에는 서프라이즈 에그라고 들어가는  같다) 초콜릿을 먹고 나면  안에 장난감이 나오는 것인데 여름이면 초콜릿이 질질 녹으니 Kinder Joy 킨더조이라고 퍼먹는 초콜릿으로 나온다. 계절상품처럼 말이다.

딱 그 킨더조이 맛을 작은 초콜릿 사탕 안에 줄여 놓은 것이라나 뭐라나…

힙한 사탕가게에서 한국을 만났다.


좌우지당간 사다 주기로 약속을 했으니 안 사줄 수도 없고 생각보다 너무 비싼 가격에 들었다 놨다 하기를 수차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작은 장바구니에 사탕들을 조심스레 옮겨 담았다.

이거 사탕 몇 개면 저녁 찬거리 장 보는 거와 맞먹게 생겼다.

두바이 왕족들만 먹던 초콜릿 사탕인가 넨장..

사탕을 받아 들고 좋아할 막내를 생각하면 내려놓을 수도 없고 요즘 같이 먹을 게 많고 간식거리도 넘쳐 나는 세상에 금 쳐 바른 것도 아니건만 초콜릿 사탕 가격이 해도 너무 했다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간식이라고 하면 뻥튀기 또는 고물장수 아저씨에게 병이나 못쓰는 거 가져다주고 바꿔 먹던 엿 또는 강냉이 가 제일 흔했던 우리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물론 그 시절에도 우리 동네 정아네 슈퍼에 가면 종류 다른 과자나 사탕도 있었고 하얀 천막 치고 동네마다 다니던 달고나 뽑기 아줌마도 있었다.

또 어쩌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면 과자 종합선물 세트 같은 것이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 옛날에는 과자나 사탕이 지금처럼 다양하지도 흔하지도 않았고 이렇게 비싸지도 않았다.


동네에 있던 정아네 슈퍼에서 과자나 사탕을 만나는 날은 어쩌다 친척들 이 집에 놀러 왔다 건네준 용돈 들고서였다.

귀한 50십 원 100원짜리 동전을 들고 정아네 슈퍼로 뛰어들어가서는 어떤 과자 나 사탕을 모셔 오나 신나는 고민을 하고는 했다.

요즘은 100원짜리 간식은 있지도 않을 테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동네 시장 가는 것을 유독 좋아했다.

시장 안에는 동네 아줌마들이 미제네라고 부르던 미제아줌마네 가게가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이면 시장은 어둡고 춥고 또 석유 냄새 같은 느끼한 냄새와 젓갈, 김치 같은 음식에서 나는 매운 냄새 가 한데 뒤섞여 매캐한 냄새들이 나고는 했다


그럼에도 멀리서 떡집 건너편 그릇집 옆에 있던 미제아줌마네 가게의 알전구가 반짝반짝 보일 때면 그곳은 판타스틱한 곳으로 탈바꿈되었고 발걸음은 빨라지고는 했다.

그때 대부분 시장 안 가게가 그러하듯 공중에 매달린 알전구 하나에 석유곤로라고 부르던 난로를 피우고 있던 미제 아줌마는 손님이 오면 가게 밖으로 한걸음에 달려 나오고는 했다.

가게에는 물 건너온 예쁘게 생긴 플라스틱의 알록달록 예쁜 도시락통이 있었고 또 어느 때는 크래커라 부르던 과자 옆에 치즈라는 오렌지색 흐믈흐믈 하고 짭조름한 것이 담겨 있는 과자통이 있기도 했다.

반짝이는 은색 포장을 열면 빨간 사탕이 나오고 그 사탕을 열심히 먹고 나면 그 안에 달콤한 초콜릿이 나오는 사탕도 있었다.

미제 아주머니는 "아이고 우리 미스코리아 왔네!" 하며 내게 그 맛난 사탕을 쥐어 주시고는 했다.

아주머니의 친절함 덕분에 우리 동네는 집집마다 미스코리아가 살았고 미남이 탤런트가 살았다.

그 시절 너무 예뻤는데 살다 보니 세월을 정통으로 맞아 요렇게 된 것은 아니다.

단지 아주머니의 장사 수완이 좋았을 뿐이다


계산을 하려고 가다 보니 계산대 바로 건너편에 눈에 쏙 들어오는 한글로 쓰인 빼빼로 과자와 불닭면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장바구니 들고 그 앞에 다시 섰다. 물 건너온 것들만 취급한다더니 진짜 바다 건너 멀리서도 왔네 싶고 알파벳 적혀 있는 다른 과자들 사이에 큼지막한 한글로 적혀 있는 과자와 라면은 왠지 더 힙해 보였다.

거기다 불닭면은 아시아 식품점까지 안 가도 여기서도 살 수 있네 싶어 피식 웃음이 났다.


잠깐, 사탕가게에 라면은 조금 생뚱맞지 않나? 싶다가 라면땅 과자도 있고 이 동네에서는 이 매운 라면 들이

그 당시 우리에게 빨간 사탕 안에 초콜릿 들어 있는 사탕과 치즈를 찍어 먹는 크래커 만큼이나 놀랍고 힙할 테니 별다르지 않다 싶기도 했다.

너튜브를 보면 외국인들의 라면 먹방도 흔하게 볼 수 있고 sns에 매운 라면 챌린지도 힙하지 않았던가.


물 건너온 알록달록한 것들로 가득 찼던 미제아줌마네 가 그 옛날 힙한 가게였다면 요 인터내셔널 하고 글로벌한 사탕가게는 요즘 이 동네 아이들에게 힙한 곳인 게다.

그 힙한 곳에 K팝, K드라마만큼이나 힙한 K간식도 끼여 있다는 것이 나름 뿌듯했다.


재밌는 것은 시절도 돈의 가치도 세대도 나라도 다르지만 아이들이 달콤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과 못 보던 것에 호기심을 느끼고 때로 열광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곳이 어디던 다르지 않구나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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