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봄은 주말마다 꽃상가와 건축자재 상가 안에 꽃, 식물 파는 곳을 요기조기 돌아다니며
꽃구경 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매번 심을 만큼씩만 가져다 틈틈이 심고 짬짬이 가꾸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우리 집 정원의 삼분의 일 정도 되는 공간이 꽃밭이 되었고
채소와 허브가 심긴 텃밭이 되었다.
우리 집 정원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햇수로 10년 전 이사를 왔을 당시에는 풀 한 포기 없던 정원이었다.
원래 이 자리는 독일 레스토랑의 비어가르텐이었기 때문이다.
(요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독일 주택의 텃밭 변천사)
비어가르텐이라 하면 길게 놓인 나무 테이블에 의자 또는 여러 개의
둥근 테이블에 빨간색 파라솔 꽂아 놓고 의자 줄줄이 세워서 사람들이
노천에 앉아 맥주도 마시고 밥도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곳이다.
그런 곳을 가정집 정원으로 만들기 위해 해마다 조금씩 정성을 들이고 있다.
때로는 이웃들이 자연보호 구역 같다고 할 만큼 야생화와 잡초만 무성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친절한 이웃들이 오며 가며 관심이라 쓰고 참견이라 읽는 것을 해 주신
덕분에 등 떠밀려 정원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렇게 몇 해째 해 오다 보니 이제는 우리도
제법 정원일에 재미가 붙었다.
그럼에도 몸 조금 움직였다고 허리야 다리야 어깨야 하고 있지만 말이다.
취미로 손바닥 만한 공간을 채우고 가꾸는데도 이리 힘든데 생업으로 매일 넓은 땅에서 하루종일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상상 만으로도 머리가 아찔할 지경이다.
그러니 우리 밥상에 오르는 모든 작물에 깃들었을 농부님들의 땀과 수고에 감탄과 감사의 인사가
연이어 쏟아질 수밖에 없다.
거기다 흉내만 내고 있는 짝퉁 농부지만 그것도 농사라고 배는 어찌 이리 자주 꺼지는지...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새참을 왜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되었지 뭔가
사실 움직인 양에 비하면 새참이 웬 말인가 싶지만 말이다.
남편이 "날도 더운데 새참으로 국수를 말아먹을까?" 했다.
햇빛 나는 날 독일 낮의 햇빛은 눈이 부시다 못해 강렬하다 등이 따시다 못해 따가울 때까지 쪼그리고 앉아 꽃가지 심고 허브 텃밭에서 여기저기 마른 잎 따주기 물 주고 했다고 짜한 것이 만사 귀찮은데 남편이 해줄까? 가 아니라 네가 해주면 기꺼이 먹어주겠어 를 담은 먹을까?라고 했다.
어찌나 얄밉던지...
"옆집은 아저씨가 땡볕에서 잔디 깎더니 불 피워서 그릴하고 있던데..."라고 했다.
그랬더니 평소 라면 "내가 놀고 있는 게 아니라 일하느라 마음은 굴뚝같으나 시간이 없어서 ~!"로 시작하는 레퍼토리 대신에 순순히 "그래 내가 끝내주는 비빔국수 말아 준다!" 하지 않는가
오호라 넘어왔어 옆집 아저씨에 자극을 받았던지 아니면 큰아이들이 집에 와 있던 동안 병원일 하면서 삼시세끼 한식으로 차려 먹이느라 애쓴 마누라가 고마웠던지.. 좌우지당간 남편이 비빔국수를 말아주겠노라 호언장담을 했다.
사실 자주 하지 않아서 그렇지 오랜 시간 홀로 자취를 했던 남편은 우리 집 숨은 고수다.
나는 남편의 마음이 바뀔세라 재빨리 주방 찬장 안에서 메밀국수부터 서둘러 재료들을 대령해
주었다.
남편은 비장의 무기를 보여 주겠노라며 "이거 너무 맛있어서 자꾸 해달라면 곤란한데 "
라며 큰소리를 쳤다.
정원일을 함께 했으니 혼자 하라고 할 수도 없고 나는 졸지에 보조가 되어 이거 달라 저거 달라하는 소리에
맞춰 이것저것 가져다주느라 바빴다.
채소 씻고 다듬고 자르고 계란 삼고 자잘한 거 다하는데 그냥 내가 하고 말지 싶었지만 그럼에도 진지하게 국수 삼고 양념장 만들고 있는 남편을 보며 그래 이렇게 같이 하면 재밌지 뭐 했다.
남편은 지난번 아시아 식품 점에서 사다 두었던 메밀국수를 커다란 냄비에 물이 보글보글 끓을 때
한 움큼 잡아 물속에 투하했다.
어디서 본건 있어 가지고 국수를 삶고 있는 물이 뽀그르르 오를 때마다 찬물을 붓고 그렇게 세 번 네 번쯤 물이 끓어오르고 찬물을 부어 가라앉히기를 반복했다. 그사이 계속 면을 시식하고 있던 남편은 이제 면이 익었다고 했다.
그러더니 다 삶은 면을 그전에 준비해 놓았던 채에 받여 찬물에 헹구어 주었는데 남편은 이때 얼음물을 사용했다.
면의 탱글탱글 함을 유지하기 위함 이라며 무림의 고수 같은 스멜을 풍기며 이야기하는 남편이 웃겨 웃음이 터졌지만 얼음물을 사용해서 삶은 면을 헹구는 것은 정말이지 굿 아이디어 였다.
면이 훨씬 차고 쫀득한 식감을 유지했으니 말이다.
남편은 그릇에 차가운 메밀국수에 얼음까지 넣고 그 위에 장갑까지 낀 손으로 정성스레 채소들을 얹어 주었다.
그중에서도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텃밭에서 막 따온 신선한 유기농 허브 들과 묵은지 볶음이다.
그렇다 남편의 비장의 무기 냉메밀 비빔국수의 키포인트는 얼음물에 헹궈 탱탱한 국수와 잘게 썰어 참기름 말린 고추 썰은 것 간장 물엿 등을 넣고 프라이팬에 볶아낸 묵은지 볶음 되겠다.
찰찰하고 시원한 국수가 새콤 달콤 매콤한 묶은지 볶음과 만났다. 맛나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는 배합이다.
거기다 잘게 볶은 불고기와 방금 텃밭에서 따온 향긋한 허브들 그리고 삶은 계란과 토마토, 오이, 당근 빨간 피망에 아삭하고 달달한 배까지.. 환상의 궁합이었다.
(*이 동네 배 윌리엄스 비어네 또는 타펠 비어네 는 달지만 뭉글뭉글한 식감인데 비해 나시 비어네 라는 아시아 배는 제법 아삭 하다)
거기다 간장 양념장과 고추장 양념장을 골고루 넣어 쓱쓱 비빈 남편의 냉메밀비빔국수의 맛은 그야말로 판타스틱 했다.
머리가 뻥 뚫리게 차고 새콤 달콤 매콤한 국수의 맛은 쪼그려 앉아 일하느라 굳은 관절이 펴지고 잡초 뽑다가 그슬려 따갑던 손목도 멀쩡해지는 느낌이 들게 했다.
입맛 까다로운 막내도 맛나 다고 두 그릇이나 해치웠고 못 미더워 하던 마누라도 감탄을 하며 쌍따봉을 날려 주니 남편은 어깨에 뽕을 넣고 말했다.
"거봐 내가 만든 비빔국수 끝내 주지?"
그래 끝내 준다 유윈~! 나는 빨간 고추장 양념장을 묻힌 입으로 빙구처럼 웃으며
"다음번에 날 더운 날 또 해 줄 거지?"라고 했다.
남편의 판타스틱 냉메밀비빔국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