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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l 06. 2023

독일은 중년이 없다?

피셔 아저씨의 케이크

독일은 중년이 없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독일 사람들은 중년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왜 우리는 40이면 불혹이고 50 되면 지천명이라는 말을 하고 자연스레

"아 나도 이제 중년이야 또는 나도 이제 나이 들었어!"라는 말을 하지 않는가?

억지로 끼워 맞춰 단어를 만들면이야 독일어로 중년을 만들 수도 있겠으나

사전적인 용어로도 중세시대를 말하는 단어는 있어도 중년을 말하는 단어는 만나기 어렵다.

왜냐하면 독일 사람들은 중년이라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독일에서 나이 듦을 말하는 기준은 무엇인고 하면 은퇴를 했다 안 했다로

나뉜다고 하겠다.

독일에서 예전에는 65세가 공식적인 정년퇴직 은퇴 연령이었는데 요즘은 정년이 길어져서

보통 67세 정년퇴직 즉 은퇴를 한다.

물론 게 중에는 62세, 63세에 또는 건강상 등의 이유로 그보다 더 일찍 은퇴를 하는

분들도 있고 직업에 따라 70 넘어서 까지 일을 계속하는 분들도 있다


독일어로 rente는 연금이고 ruhestand는 퇴직을 말한다.

그래서 독일에서 정년퇴직은 Rente gehen 렌테 게헨, Ruhestand gehen 루어스탄트 게헨 이라고 한다

풀어 말하자면 은퇴를 간다 일상이 조용해지는 곳으로 휴식하는 곳으로 즉 퇴직한다 라는 뜻이라 하겠다.

그래서 정년 퇴직한 사람들을 일컬어 Rentner 렌트너 라 부른다.

우리가 뭘 빌릴 때 쓰는 영어 렌트와 비슷한 어감이지만 렌트 너는 뭔가를 렌털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년퇴직을 한 사람들을 말한다.


렌트너 가 독일에서는 나이 듦을 이야기하는 또는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이야기하는 기준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제는 오랜 세월 해왔던 일을 끝내고 쉬는 시기 여가를 즐기는 또는 새로운 인생의 장을 연 노년을 맞은 사람들을 렌트너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렌트너 가 더 시간이 없어


우리 병원 에도 정년퇴직을 하신 렌트너 가많으시다. 보통은 진료 예약을 잡을 때도 언제가 좋으시냐고 물으면

"우리는 아무 때나 상관없어요 렌트너 인걸요!"라며 마음적으로 도 여유가

있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게 중에는 "렌트너 가 더 시간 없어!" 라며 동동 거리시는 분들이 있다.


그 대표 주자가 헤어 피셔 되시겠다. 독일에서는 예를 들어 여성을 명칭 할 때 미스 김 또는 미시즈 김이 아닌 Frau Kim 프라우 김이라 부르고 남성인 경우 미스터김 이 아닌 Herr Kim 헤어 김이라 부른다. ( 머릿발 헤어 아님 주의!)


우리 병원의 그 많고 많은 렌트너 피셔 중에 그 피셔는 다르다.

(독일 성씨 중에 우리의 김이박처럼 아주 많아서 흔한 성씨 중에 Schmidt 슈미트, Mayer 마이어,Fischer 피셔 등등이 있다)


동그란 얼굴에 독일 사람치고 작은 키 그리고 맥주배 라 일컫는 둥근 배 흡사 오뚝이를 연상케 하는

Herr Fischer 헤어 피셔는 늘 바쁘다.

온 동네 일은 다 참견을 하시고 다니시는지 어찌나 매번 할 일도 많으시고 시간이 없으신지…,

병원문 열고 들어 와서 환자 대기실 의자에 앉기도 전에 "오늘 9시 30분 진료 예약인데 언제 들어가요?"라고 하신다. 15분이나 일찍 와 놓고 말이다.



그런데 병원 진료 예약 시간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기는 하나 병원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기계적으로 딱딱 끊어서 시간 내에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어느 때는 앞에 환자 진료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도 있고 중간에 급한 환자가 들어올 수도 있고 또는 본인의 진료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도 있다. 병원에서 변수는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날도 그러했다. 늘그럿듯 15분 일찍 와서 대기실에 앉아 계시던 피셔 아저씨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서는 "프라우 김 저랑 이야기 좀 해요"라고 했다.

영문을 몰랐던 나는 웃으며 "네? 무슨 일이세요 헤어 피셔?"라고 물었더니

"아니 내가 9시 진료 예약인데 아직도 진료실에 못 들어가고 있어요 이게 말이 돼요? 이러려면 예약이 왜 필요해요?" 라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줄줄이 읊어 댔다.


그때 환자대기실 벽에 붙어 있는 시계가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날따라 수술 앞두고 심전도 검사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아서 계속 심전도실에 있다 보니

아직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아 진짜요? 죄송해요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 확인해 보고 알려 드릴게요 잠시만요!"라는 말을

남기고 직원들에게 확인을 했다.


사실 우리 병원에서 진료예약이 되어 있는 환자를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게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럴 경우 헤라클레스 일 경우가 많다

헤라클레스는 응급이 터졌을 때를 말하는 우리끼리의 암호다 (궁금한 분들을 위해: 응급 상황, 우리 암호는 헤라클레스)


아니나 다를까? 젊은 환자가 급히 대학병원으로 이송이 돼야 해서 시간이 지체 되고 그 이후 순서가 밀렸던 거다.

나는 다시 대기실로 들어가 헤어 피셔에게 정중하게 이야기했다.

"헤어 피셔 이해를 좀 해주세요 오늘 응급한 환자가 하나 있어서 진료 순서가 조금 밀려서 그래요"



그랬더니..

피셔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까 그 젊은 친구 말하는 건가 보죠? 내보니 멀쩡 하던데 우리 렌트너 들은 시간이 뭐 마냥 있는 줄 알아요? 그럼 안 돼요 순서를 지켜 야지요! 우리도 바빠요 렌트너도 시간이 없다고요!"


아저씨의 신경질 적인 말투에 속에서 올라오는 욱하는 것을 가깟으로 누르며 차분하게 설명했다.

"헤어 피셔 아까 그 환자분은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급하게 대학병원으로 이송이 됐지요

보통은 진료예약 대로가 진료 순서이지만 응급한 상황일 때는 응급한 환자가 우선이에요!

정기 진료 오신 분들은 최소한 그런 상황은 아니니 이해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 듯 마는 듯하던 피셔 아저씨는 대기실에서 진료실로 안내되는 순간 까지도 짜증 스런 얼굴을 거두지 않고 불만을 쏟아 냈다.


그러던 어느 날 피셔 아저씨네 아주머니가 갑자기 응급한 상황으로 병원을 찾았다.

옆에 사색이 되어 따라온 피셔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바로 진료실로 안내했다.

그날도 대기실에 다른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지금 급한 환자가 있어 진료 시간이 조금 더뎌질 거라며 양해를 구하는 것은 그다음 순서다.


언제나 최우선 순위는 응급한 환자가 먼저 이기 때문이다.

진료실 하나를 비우고 빠른 시간 내에 기본 적인 검사를 끝낸 후 피셔 아주머니는 바로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리고 어느 날 피셔 아저씨는 손에 냉동 케이크 하나를 들고 수줍은 듯 병원을 다시 찾았다.

아저씨는 내게 직원들과 간식 먹으라며 케이크를 내밀었다.

"그날은 제가 정말 무례했어요 기분 나쁘게 해서 미안해요"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물론 나는 그때 아저씨가 무슨 옷을 입고 환자 대기실 어디에 앉아 내게

무슨 말을 어떤 말투로 쏟아 냈는지 모두 기억한다. 나는 뒤끝이 만리장성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으며 이야기했다.

"헤어 피셔 그게 언제 적 일인데요 잊으세요 저도 잊었어요(뻥이다!)

병원에 있다 보면 별일이 다 있답니다. 그러데 중요한 건 서로 조금씩만 이해를 해 주면

아무도 불편한 사람 없이 진료받을 수 있어요. 그죠?”


아마도 그날 이후였던 것 같다. 피셔 아저씨는 더 이상 병원에 오셔서 언제 진료실로

들어 가느냐고 묻지 않으셨다

직원들은 "헤어 피셔가 달라졌어 그 피셔가 아닌 것 같아!"라며 웃었다.

나는 한국의 어느 유명 프로그램의 제목이 떠올라 함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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