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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Feb 23. 2017

따뜻한 봄날의 기억 하나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어느 따뜻한 봄날의 이야기다

그날은

이른 아침부터 빡빡한  일정 가운데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동동 거리며 볼일을 보러 다녔다.

독일은 아직 모든 것이 전산화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필요한 곳에 각각의 서류를 들고 가서 직접 접수해야 되는 번거로운

일들이 가끔 생기곤 한다.

아침부터 관청에 직접 접수해야 되는 서류가 있어 직접 다녀오고

은행 볼일 보고 요리 강습할 식재료들 시장 바리바리 보아 서는

헉헉 거리며 집에 도착했는데, 때마침 우리 막내네 학교에서 연락이 다.

교사들의 사정으로 학교 수업일정이 바뀌어서

아이들의 학교 수업 끝나는 시간이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리하자면 아이를 학교로 데리러 가는 학부모 들은 아이를 찾으러 가는

시간이 바뀐 것이고 또는 아이가 학교 끝나고 혼자 집에 오는 경우는

아이가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평소 와는 다른 시간으로 변경되었다는 말이 되겠다.


나는 변경 사항을 다른 학부형들 에게 쏜살 같이 따. 다. 다. 다

전화로 알려 주고 요리강습용 레시피 인쇄해 두고 막내 간식 하나 만들고

청소기 한번 돌리고 나니

어느새 막내를 학교로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이 다 되어 가는 거다.

부리나케 눈썹이 휘날리며 막내의 학교를 향해서 뛰어갔다.

날을 잡은 듯이 이래 저래 한꺼번에 일이 겹쳐 하루 종일 정신없이 뛰어다녔지만

일단 날씨도 좋고 뛰어가니 운동도 저절로 되고

여기까지는 좋았다. 아주 좋았다.

헐레벌떡 막내의 학교 앞에 도착해서 시계를 확인 해 보니

12시 40분 정확히 왔다 ~라고 숨을 돌리다... 불현듯 딱~하고 스치는 생각 ~

오마나 이게 무슨 일 이래~분명 아까 내가 전화로 딴 사람들 한테 이야기해 줬구먼.....

그렇다 오늘은 학교가 13시 30분에 끝난다고 시간 변경 사항을 다른 학부형 들 에게 연락까지 돌려놓고

막상 나는 원래대로의 시간인 12시 40분에 헥헥 거리며 혼자 학교 앞에 도착 해 있는

생쇼를 부리고 있었다.  

어떻게 이리 새까맣게 잊어버릴 수가 있는지...


요즘 들어 나의 깜빡깜빡하는 건망증 증상은 점점 더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순간순간 아주 까맣다 못해 하얗게 잊어버린다

마치 그런 일이 있었던가? 싶게...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증거 일까? 그래도 벌써부터 이러면 어쩌나?

이거 약 이라도 먹어야 되나? 하며 조금 슬퍼 질려 다가

아니지, 그래도 황당한 건망증 덕분에? 아직 한 시간 가까이 남았네..라는

생각에 슬며시 미소가 떠오른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바꿀 수 없다면 즐기는 수밖에..

나는 우선 라테 한잔을 사서 손에 들고

찬란하게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아름드리 나무들이 양쪽 줄로 늘어서 있는

막내네 학교 근처 공원 길을 싱그러운 바람맞으며 누비고 다녔다.

거기다 한 모금의 달콤한 라테까지 머금고 나니

음~행복하다.

그래, 괜찮아 뭐 그럴 수도 있지 애를 셋씩이나 낳아 키우고

있는 낼모레 오십이 다된 중년의 아줌마가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은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라며 열심히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이 셋을 낳았다는 것을 떠올리다 보니 예전에 절친 강여사와

나눈 이야기가 생각나 커피 들고 한참이나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 거리며 쳐다볼 만큼 ㅎㅎㅎ


절친 강여사는 여고 동창이다.

이 친구는 우리의 학창 시절 별의별 것을 다 기억하는 친구 다.  

내가 셋째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해 주며 웃으며 하는 첫마디가

"너는 어쩜 네가 한 말을 그렇게 철저히 잘 지키냐"~였다.

웃으며 무슨 이야기냐고 물었더니 나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일애도 빵빵 터지던 고등학교 때 학생들의 존경의 대상이자

인기 짱이던 국사 선생님이 계셨다.

물론 나도 그분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 친구 말에 의하면

어느 날 국사 수업 시간에

그 선생님께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국가를 이룬다.

너희 들이 장래에 멋진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 출세하는 것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중요 하지만 무엇보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자손을 많이 낳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과제다"

라며 열변을 토 하셨다 한다.

그런데

갑자기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내가 손을 번쩍 들더니 큰소리로 말하더란다

"네 선생님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ㅋㅋㅋ 최선을 다하겠다니 ,,,

그 당시 내 오버 는 대답에 선생님과 아이들이

얼마나 황당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 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진정 내 말의 책임을 다 하는 사람이였구나.... ㅎㅎㅎ

해년마다 출산율이 저하되고 있는 요즘

이 출산율 보리 흉년 시대에 셋이나 낳았으니 말이다 음하하하

유난히 햇빛 찬란 하던 어느 봄날의
따사로운 기억 한조각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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