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을 하고
운동을 시작 한지 어느덧 한 달이 되어 간다
목표했던 대로 남편이 근육맨이 되었다던가 내가 홀쭉해져서 바지가 훌렁 거리는
기적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1인 ㅋㅋ)
그러나 일단 꾸준히 피트니스 센터를
오가고 있다는 것이 우리에겐 큰 성과라 하겠다
운동이 제대로 되었건 말았건 간에 말이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운동을 가지 않아도 될
핑곗거리는 언제나 무궁무진하다.
새로운 핑계들은 돌사이에 새싹이 돋아 나듯 새록새록 생겨 나기 일쑤이니 말이다.
꾸물꾸물 일 지언정 운동을 하겠다고 나간 것 자체가 일단은 지속 가능한 운동의 시작일테다
스트레칭을 하고 러닝 머신 빈자리를 찾고 있을 때였다.
아늑한 뒷자리에서 러닝 머신을 타고 있는 사람들은 한참 많아 자리가 없는데
앞자리는 텅텅 비어 있는 게 아닌가
사람은 매한가지이지 싶을 때가 이런 때다 남녀노소 국적을 막론하고 비슷할 때 말이다.
앞쪽 자리는 출입문과 가까워 오가는 사람들도 많고 조금 어수선할 때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앞자리의 남아도는 러닝머신 들을 피해 뒤쪽으로 사람들이 몰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줄줄이 비어 있는 가운데 딱 하나 러닝 머신 위에서 굉장한 속도로 뛰고 있는 여인네가 하나 있었다
그녀는 마치 광활한 아프리카 초원 세렝게티 를 뛰어다니는 한 마리 날렵한 표범 같았다
어찌나 빠른 속도로 욜라리 뛰어 대는지 그쪽 러닝 머신 위에서 바람이 일었다. 솩샤샤샤...
그 바람으로 풍력 발전이라도 돌릴 기세다.
그러니 웬만한 사람은 그 옆에서 나란히 뛰기가 거시기했을 것이다.
나야 어차피 뛰는 것이 아닌 걷는 것이니
뭐 어떤가 하고 용감하게도
그녀 바로 옆에서 천천히 걷기를 눌렀다
뒤뚱뒤뚱 걸으며 살짝 곁눈질로 본 그녀는 짧은 갈색 머리에 몸에 짝 달라붙은 난닝구같은 하늘색 나시탑 운동복을 입고 날듯이 뛰고 있었다
운동복의 얇은 어깨끈 사이로 어깨와 팔에 근육들이 울뚝불뚝한 것이 보였다.
쳇! 저 정도면 입을 만 하지 인정!
흘깃 보아도 그녀는 어제오늘 것이 아닌 게 분명한 크고 작은 근육들을 온몸에 휘감고 있었다.
몸 상태?로 보아 어찌 보면 군인이나 경찰 같기도 했고 아니면 운동선수 일까? 라는 생각마저 들 만큼 그녀의 러닝은 빠르고 안정적이며 숨소리마저 흩트러짐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저세상 텐션의 러닝에 아랑곳? 하지 않으려 애쓰며
마치 마라톤 경기 할 때 코너마다 서있다 파이팅도 외쳐 주고 물도 나눠 주는
자원봉사 자처럼 여유 있게 웃으며 걸었다.
속으로는 나도 언젠가는 뛰고 말테야! 를 다짐하며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그 표범녀(어느새 내게 그녀는 표범녀가 되어 있었다)에게
누군가 다가와 알은체를 했고
그녀가 뛰며 내는 바람 소리에 상대방은 목소리 톤을 올리며 물었다
“나 위에 갈 건데 언제 올라와?”
그러자 그녀는 큰 목소리로 그에게
"나 한 이삼십 분 후에 올라 가!"라고 했다.
그들이 말하는 위에는 근육 강화를 위한 코어 운동기구들과 각종 코너들이 두루 갖춰져 있다.
본의 아니게 남의 이야기를 곁다리로 얻어 듣게 되었지만 속으로 오마나 저속도로 이삼십 분을 더 뛴다고?
흐미 독한 년...
그 와중에 내 러닝 머신 위에 목표량 10퍼센트 달성이라는 그래프가 맥없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속으로 오매 부러븐년 하며 그녀를 다시 한번 흘깃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나를 쳐다보는 게 아닌가 워매 깜짝이야 !
속으로 씨부린 한국말을 알아 들었을 리 만무한데.. 괜스레 제 발이 저려...
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봤나? 하고 있는데..
그녀는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내 옆에 러닝머신 위에서 동네 약수터 가는 아재 같은 폼으로 러닝 머신 위를 걷고 있는 남편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뛰면서 친숙함을 담은 목소리로 "닥터 김 아니에요!" 라며 반가워했다.
그 소리에 느긋하게 옆을 돌아보던 남편도 그제야 아는 체를 했다
원래 사람얼굴을 그리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남편이 몇 년 만에 보는 그것도 헤어 스타일 달라지고 노메이컵에 운동복 차림의 예전 스텝을 단번에 알아보기란 어려웠을 테다.
내 덩치에 가려서 그녀의 얼굴이 잘 안 보였던 것은 절~~ 대 아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남편이 예전 근무 하던 대학병원 간호사 다.
우리는 얼떨결에 러닝머신 위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웬만한 스텝들은 만날 일들이 종종 있어 기억한다
그런데 그 간호사 선생님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언젠가 여름 대학병원 스텝들을 우리 집에 초대해서 그릴 파티를 했었는데 그때 못 온
몇 사람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표범같이 뛰던 그녀는 목표량을 채우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
그 덕분에 우리는 계획했던 것보다 조금 더 길게 러닝머신을 타야 했다.
그렇게 잘 뛰고 있는 사람이 남편의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 신경이 씌어 5분 만에 내려올 것을
15분 하고 끝냈다.
속으로 젠장 하필 아는 사람이 여서리를 외치며 말이다.
우연히 피트니스에서 운동 하다 남편의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도
신기 한데 그 사람이 운동을 겁나 잘하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운동관련된 일이 아닌
간호사라는 것도 새삼스러웠다.
물론 운동 잘하는 간호사님들도 많겠지만 그녀의 피지컬은 정말 운동선수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멋져 보이고 잘하는 사람이 옆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해도
신경 쓰지 말고 내 수준에서 하루하루 더 나아져야겠다고 말이다.
그래야 운동 이 계속하고 싶지 언제 저렇게 되나? 나는 그동안 뭐 했나
싶으면 운동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반감된다.
딱 운동 안 가고 간식 먹으며 인터넷 보기 좋은 주말이면 더더 군 다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