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Mar 06. 2017

지하 주차장 데이트


아침 까지만 해도 나의 오늘이 요로코롬 흘러 가리라 고는 예상 하지 못했다.

한국 갔다 어제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아직 시차 적응 중이시라 새벽 댓바람부터 깨어서

"오늘 뭐할까?"라며 아직 잠이 덜 깬 내게 유혹? 적인 질문을 해대며 깨워대기 바빴고

음~글쎄 뭘 하고 남편과 시간을 보내야 잘 놀았다고 동네에 소문이 나려나 으흐흐

해가며 나는 우리가 해봐야 정해져 있고 가봐야 빤한 일상 속에서 간만에 뭘 해보나?

하며 안 돌아가는 머리 굴려 대기 바빴다.

막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우리는  자주 가는 빵가게에 마주 앉아 향긋한 커피와 갗구워낸 빵으로 맛난 아침을 먹어가며 본격적으로 계획을 세워 보기로 했다.

고맙게도 오늘 막내는 학교 끝나고 친구네 집에 초대가 되어 놀다 저녁에나 올 예정이어서

하루 죙일 단둘이 보낼 수 있게 된 횡재 한 날 아니던가? 나는 요 금쪽같은 시간을 잘 활용해 보기 위해 온천을 갈까? 아님 전에부터 가보려 했던 소문난 그 집에 가서 점심을 맛나게 먹고  근처로 드라이브를 나갈까?

혼자서 머릿속으로 영화 찍다, 미니시리즈 찍다, 아침드라마 찍다, 시트콤 찍다

가지가지해가며... 행복한 고민을 배 터지게 하고 있을 때였다.

때르릉~~! 누가 들어도 전화 벨소리... 남편의 핸드폰이 힘차게 울린다.

먹던 빵을 목으로 꿀떡 삼키며 어쩐지 느낌이 거시기하다.



아니나 다를까? 월요일 아침부터 울려댄 남편의 핸드폰 에선 낭창낭창 아리따운 여인네의 목소리가 아닌 굵직한 아저씨의 목소리가 낭랑 하게 울려 퍼지며 남편에게 언릉 오셔야 쓰겠단다.

이런 덴쟝....

원래, 남편은 이번 주 수요일부터 다른 도시에서 쭈르륵 학회 일정이 잡혀 있어서 한국 다녀온 여독도 풀 겸 학회도 준비할 겸 월요일, 화요일 푹 쉬고 간다로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부득이 오늘 출근하셔야겠단다.
나의 썩은 표정을 간파한 듯 몹시 미안한 목소리로 만면의 미소를 가득 담아 "어쩌냐 집에 데려다주고 얼른 가봐야겠는데..."한다.

그렇지 뭐 내가 뭔 횡재 흥흥흥 이다. 비록 속에서야 짜증 지대로야~를 외쳐 대고 있었으나

겉으로는 피곤해서 어떡하냐..? 라며 교양 철철 넘쳐 의 코스프레를 하고 있던 나는

차 안에서 남편이 내게 맡긴 막중한? 임무에 입이 벌어졌다.


나를 집에다 떨궈 주고 빨리 가려던 남편은 오늘 아침에 은행에 들렸어야 했던 것을 기억해 내고 

내게 대신 다녀와 주기를 부탁했다.

다름 아닌 이 동네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의 은행 로고가 찍힌 돈봉투를 들고

직접 시내에 있는 은행에 가서 넣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드라마에서처럼 어딘가의 금고를 털어서 담아 온 것도 아니요.

너 이거 먹고 떨어져 ~! 라며 어느 싸모님이 탁 하고 던져 주신 것도 아니며

누군가를 야산에 고이 묻어 준후 착수금을 받아 온 것도 아니다 (쓸데없는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후유증...)

할머니가 우리 집 일땅이.. 이 땅이.. 삼땅이.. 세 아이들 에게 용돈을 주시고 싶어 꼬깃꼬깃 모아 두었다가 유로로 바꿔주신 뭉칫돈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얼마가 들어 있는지 남편도 나도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시내에 있는 은행에 가서 다짜고짜 직원에게
"저기 이거 저희 통장에 일단 넣어 주세요"라고 한다 치자....  

그 직원이 "네 알겠습니다 고객님 그런데 얼마인가요?"라고 묻는 다면 내가 상냥하게 

"글쎄 얼마일까요?"라고 대답할 수는 없지 않은가? 수상 쩍게 스리....


그래서
우리는 시내의 어느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나란히 사이좋게 앉아 돈을 셌다

손가락에 퇫 하고 침 발라 가며...

쓰기 좋으라고 5유로짜리 10유로짜리 20유로짜리 50유로짜리 골고루 담겨 있던

유로는 요새 새로 찍은 것인지 겁나 얇고 빨빨한 것이었다.

어두침침한 주차장 구석 태기 에서 남몰래 만나 튼실한 가방을 사이에 두고 앉은
팔뚝과 등짝에 호랑이 또는 용 등의 살아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형님들도 아니고 

부부가 나란히 앉아 돈을 세고 있다니 ㅋㅋㅋ

남편과 어디론가 로맨틱 하게 데이트 가려다 지하 주차장에서 돈 만 새고 온 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위풍당당 변화무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