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어 본 꼬마들
지난 주말 독일은 갑자기 30도를 웃돌며
마치 짧았던 여름을 아쉬워하듯
연일 더운 날씨였다.
보통 가게도 문을 여는 곳이 드문
조용하기 그지없는 일요일 오후
날씨까지 좋으니
심심해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고 있는
막내를 데리고 무엇을 할까? 궁리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카셀의 시립극장에서
오픈 데이 행사가 있다는 정보를 얻고
시내로 놀러를 나갔다.
오픈 데이는
말 그대로 시민들을 위해 그날 하루
시립 극장 전체를 개방하는 축제 겸 행사였다.
그렇게 찾아 간
시립극장 정문 앞에는 자유자재로 그려 댄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안고 있는 그림들과
그동안 시립극장에서 막을 올렸던 다양한
공연 사진 들로 야외 전시장이 되어 있었고
극장 측 에서 만들어 놓은 회전목마를 타는 꼬맹이들...
풍선을 엄마에게 맡기고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시립극장 안과 밖은 그곳을 놀이터 삼아 돌아다니는 아이들로
꽉 차 있었다
평소 에는 음악회, 오페라 등의 공연이 주로 펼쳐 지므로
아이들이 시립 극장을 방문할 기회가 많지 않은데 비해
오픈 데이는 아이들 에게 하루 종일 시립극장 구석구석을
누빌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날 이기도 하다.
우리는 막내와 함께
어린이 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이 진행된다는
오케스트라 연습실을 찾아가며
복도를 서성이는길 모르기는 매한가지 인
다른 시민 들과
똑같이 생긴 수많은 방 들과 복도 들을
마치
미로 찾기 게임처럼 즐거이 헤매고 다녔다.
드디어 찾아진 연습실 안에서는
진짜 시립 오케스트라 단원 들이 악기를 들고 앉아서
잘 보이지도 않게 작은 아이 들이 쳐든 지휘봉 방향에
따라 웃으며 음악을 연주하는 진풍경이 벌어
지고 있었다.
이쪽저쪽 내키는 대로 아무 데나 막대기 흔들듯 지휘봉을
휘둘러 대는 아이들 에게 시립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손을 잡고 이렇게 올려서 저렇게 내리고
하는 지휘법을 즉석에서 일대일로 사사해 주었다.
그러나 돈으로 치자면 엄청 비쌀 개인 레슨에도 불구하고
이제 7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꼬맹이 들은 수줍은 듯
배시시 웃으면 서도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지휘봉을 휘젓고
있었다.
참 재미있으면 서도 멋지다 싶은 것은
이 더운 날 많은 사람들로 찜통 같은 연습실 안에서
꼬맹이 들의 난리 부르스 같은 지휘에 따라 어떻게든
음악이 연주되어 흘러나온다는 것이고
연주하고 있는 단원 들의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이라는 것이다.
마치 아이들의 손에 들린 지휘봉이
마술의 방망이 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우리는 생전 처음 지휘봉을 들고 지휘를 하는
아이들이 손을 움직일 때마다
멋진 음악이 되어 나오는 마법 같은 연습실을
뒤로 하고
그날의 하이라이트인 음악회를 보기 위해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공연 시간이 30분은 족히 남아 있는 시간 이였음에도
사람들은 여기저기 원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우리도 나름 로얄석이라 생각되는
곳에 앉아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시민들을 위한 보너스 같은 공연 이여서
공연 내용이나 시간 등이 정확히 나와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설렘을 부추겼고
나는 공연 동안 에는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그전에
실컷 찍어 주겠어 라며 마치 음악회라고는 처음 와본
것 같은 순박한? 시골 할머니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한컷 두 컷 사진 찍기 바빴고
막내는 밖에서 음료수 마시고 들고 온 빨대를 좀 전에 다른 아이들이
휘두르던 지휘봉처럼 들고 연습 중에 있는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하는 듯
음악소리에 맞춰 살짝살짝 흔들어 대고 있었으며
공짜를 무척이나 좋아라 하는 남편은 럭셔리 한 음악회가
무료에다 자리도 골라 잡아 원하는 곳에 앉을 수 있다 하니
길가다 만원 짜리 주운 사람보다 더 행복한 표정이었다.
모두가 기대의 눈빛으로 기다리던 음악회는 오케스트라의 멋진
연주와 합창단의 아름다운 노래 그리고 피가로의 결혼등
한 번쯤 이름 들어 봄직한
굵직한 오페라 대목 들을 시립극장 대표 솔로 들이
차례로 나와 공연했다.
공연 사이사이에 무대를 오가며 오페라 배경 역사 등을 설명해 주며
다음 순서를 소개해 주던 아리따운 오페라단장 님의 재치 있는 내레이션은
오페라에 익숙지 않은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게 오페라가 낯설지
않게 다가서는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다.
가득한 볼거리 들과 함께 마치 옴리버스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온 듯한 시민 들을 위한 음악회의 감동스러운 선율이
그 밤 오래 토록 곁을 머물렀다.
오랜만에 눈과 귀가 호강한 아름다운 일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