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요즘처럼 세계가 한울타리 같은 시대에 나는 정말이지 세련되고 쿨한 엄마이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 에게도 언제나 사람을 사귈 때 어디 사람인가?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인가? 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는 했었다.
그러나 공부 하러 갔던 4주간의 미국 연수에서 아들이 불가리아 처자를 사귀어 진짜로 글로벌하게 데려 올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물론 처음에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축하해 주며 스무 살인데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라고 했었지만
아마도 간혹 보여주는 사진과 들려주는 이야기 만으로는 "우리 아들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 라는 사실이 그리 실감이 나지 않았었나 보다.
막상 아들의 여자 친구가 우리 집으로 놀러를 오겠다고 하니 그때부터 마음이 이상해 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훅 하고 들어오는 묘한 현실감 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아이일까?...
손님을 맞이 하기 위해 집안 청소를 하면 서도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나지를 않았다.
결혼을 하겠노라 인사하러 오는 것도 아닌데... 이제 사귀는 여자 친구를 소개하는 것뿐인데...
로 스스로를 위로? 하려 해도 왠지 자꾸 입맛이 쓰다.
드디어 찾아온 D-데이...
평소 벗어 놓은 옷으로 다닐 수 있는 길만 간신히 만들어 놓고 다니는 아들이
자기 방 청소를 한다고 아침부터 부산을 떨어 댔다.
게다가 몇 주 전 다리 수술을 해서 어쩔 수 없이 3층 의 자기 방을 사용하지 않고 1층의 손님방을 사용하고 있는 여동생의 방을 자기 여자 친구가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참고로 3층에는 아들과 딸의 방이 나란히 붙어 있다.
속으로는 왜? 아니 왜? 꼭 그 방이 여야 하는데? 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야? 그런 거야? 하는 수많은 의문이 일었으나 굳이 다리 불편한 딸내미를 위로 올려 보내고 아들의 여자 친구를 멀리? 1층 손님방으로 보내야 할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에 그러자고 했다.
더운 날 아들은 우리 집으로 처음 놀러 오는 여자 친구를 위해 헬륨 풍선을 사러 시내까지 가는 수고를 마다 하지 않았다.
엄마가 급하게 필요하다고 코앞의 마트에서 뭐하나 사다 달라해도 해야 할 일이 많아 시간이 없다 등등
가지 못할 이유가 줄줄 이인 아들이 말이다.
배가 살살 아파 오기 시작한 나는 아들이 부탁한 여자 친구를 위한 침대 커버를 세심하게 골랐다.
집에서 가장 촌빨 날리는 것으로 거기다 제일 높고 딱딱한 베개에 침대 커버와는 짝짝이인 베개커버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그때부터 아들을 뺏긴 것 같은 엄마의 침략자? 에 대한 나름의 퇴치 작전이 돌입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