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슈투트가르트의 명품 의류 세컨핸드샵

도시로 떠난 휴가3

by 김중희

비가 오는 날 은 왠지 센티멘탈 해 지기도 하고
때로는 감성적 이어 지고 싶어 비를 핑계 삼기도 한다.마치 커피가 마시고 싶어 분위기를 잡는 날도 있고 분위기가 딱 커피 한잔 하고 싶게 만드는 날도 있듯이 말이다.

도시로 휴가를 떠났던 날 슈투트가르트 에서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비가 와도 휴가를 왔으니 어딘가는 가야 했고

평소 딸내미가 무척이나 가 보고 싶다 던

독일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명하다는

슈투트가르트 Stuttgart 시내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는 옆동네 Schorndorf 의 세컨핸드 샵 Wühli 를 가기로 했다.

젊은 아이들 사이에 스타일링 으로 인기있는 유튜브 스타가 가끔 들러 쇼핑 하는 곳으로 더 유명해 졌다나 어쨌다나...

*혹시 궁금한 분들을 위해 주소 나갑니다.

Orlgastraße 46-48 73614 Schorndorf

그래서....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을 뚫고 도착한 중고가게는 마치 동네 벼룩시장을 통째로 옮겨 놓은 듯

좋게 말해 다양한 것들이 한자리에 모여 볼거리 천지 였고 대놓고 이야기해 잡다구리 한 것들로 어수선한 것이 귀신 나오기 일보 직전으로 보였다.

게다가 밖은 비도 부슬부슬 오지 않은가?


그냥 갔던 길 바로 돌아 나오고 싶었으나 두 눈을 반짝이며 여기저기 둘러보는 기대 가득한 딸내미의 모습과 시간 들여 거기까지 찾아간 본전 생각에 잠시 둘러 보기로 했다.


가게 안에는 크기별 종류별 어느 정도 구분이 되게 정리되어 걸려 있던 가격표를 달고 있는 옷들도 있었고 커다란 통속에 간신히 용도 구분만 된 체 마구 담겨 있기도 또는 한구석에 산처럼 쌓여 있기도 했다.


그 산? 앞에는 신발 벗고 올라가세요 라고 친절히 쓰여 있었고 놀이터가 아니니 아이들은 올려 보내지 말아주세요 라는 문구 또한 쓰여있었다.

걸려 있는 옷들은 가격이 매겨져 있었고 통속에 들어가 있는 또는 산처럼 쌓여있던 옷더미 들은

골라잡아 무게로 돈을 지불하도록 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잘 고르면 그 안에 특이한 옷들 또는 명품 브랜드 들도 아주 싼값에 득템 할 수도 있는 것이고 아니면 거저 준데도 사양하고 싶어 지는 것들을 돈 주고 사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려면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옷 보는 눈이 없는 내겐 그게 그거 같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느순간..

비 오는 날 으스스할 만큼 한산하던 가게 안에 갑자기 10대 20대의 젊은 아가씨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오더니 매의 눈으로 이것저것 신나게 골라 대고 있었다.

산처럼 쌓여 있던 옷 무더기 사이를 맨발로 올라가서는 금광에서 금을 캐듯.. 심마니 가 산삼을 캐듯...

그순간 귀 얇고 변덕스러운 내게 산처럼 쌓여 있던 옷들이 왠지 달리 보이고 있었다.

왜 남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으면 뭘까? 싶은 마음에 나도 따라 서고 싶은 그런 기분이랄까?




어쨌거나 눈썰미 없는 나는 옷구경 이라기보다는 젊은 세대 들의 취향을 구경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있었다.

그러다...

남편의 "이리 와봐 여기 책도 있어"하는 소리에 무심코 따라 들어간 옛날 대학도서관 같은 느낌의 서재 뒤편 어딘가 에서는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 나는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데코로 가져다 놓은 것처럼 오래되어 보이는 턴테이블 위에 LP 가 돌아가고 있었다.

제목을 알 수 없는 음악은 느리게 그러나 세월을 품은듯한 레코드판 위로 스르륵스르륵 감기며 내는 정겨운 바늘 소리를 함께 남기며 흘러가고 있었다

1970년대의 어느 날처럼....



아주 예전 1970년대 내가 살던 집에는 끝방 위쪽에 다락방이 하나 있었다.

그 방은 시골에서 올라온 먼 친척 언니가 학교를 다니며 지내던 곳이었는데,

그 다락방에서는 간간이 그런 음악들이 흘러내려오고는 했었다.

뭔가 낯설 면서도 기분 나쁘지 않은 그런....

초등학생이던 어린 내게는 그 언니가 팝송이라 부르던 알 수 없던 음악 들과

턴테이블에서 사르륵사르륵 굴러 가다 가끔은 툭툭 하고 튕겨지는 소리를 내던 레코드판 위를 노니는 바늘의 소리는 다른 세상이었다.

거기다 종종 양은냄비에 담겨 있던 따끈한 라면 한 젓가락은 내게 별천지를 선사했다.

알 수 없는 음악이 주는 묘한 감성 때문인지

꽃무늬 도배지 위에 덕지덕지 붙여져 있던 신문들과 작은 백열등 전구에서 풍기던 낯선 아늑함 때문이었던지 그도 아니면 라면 한 젓가락

때문인지 그 다락방의 추억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특유의 종이 냄새가 물씬 나는 오래된 책 한 장을 펼쳐 들었을 때의 느낌을 주고는 한다.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한가득 묻어나던 비 오는날의 그중고가게 에서 처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