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른 저녁이었다. 축구 트레이닝을 마치고 허기가 졌던 막내는 고기가 먹고 싶다며 예전에 한번 가보았던 수제 햄버거 집에서 버거와 고구마튀김을 먹고 싶다고 졸랐다.
나는 속으로 날도 덥고 저녁도 하기 싫은데 마침 잘됐다 를 외치며 집에 지금 큰아이들 아무도 없고 우리 셋만 있으니 모처럼 외식을 하자며 밥값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을 남편을 꼬드겼다.
큰아들과 딸내미 없이 달랑 우리 셋이니 입이 둘이나 줄었고 뭐 그리 부담 스리 비싼 곳도 아니니 남편은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덕분에 저녁을 먹고 들어 가게 생긴 나는 혹시 예약을 미리 안 해서 앉을자리 없는 것은 아니겠지? 평일인데.. 해가며 선물 받는 아이처럼 들떠 있었고 운 좋게 밖에 앉을자리를 잡은 우리는 메뉴판을 척 하니 펼쳐 들었다.
이곳은 우리 동네의 젊은 독일 사람들 에게 인기가 많다는 수제 버거집인데
레스토랑 입구부터 생긴 것이 마치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 잠깐 등장했을 것 같은 작은 주유소가 나란히 붙어 있고 인테리어도 다분히 아메리칸 스타일로 보이지만 버거의 빵이나 들어간 내용물은 독일식이다.
단지, 요즘 젊은 사람들의 취향에 맞게 틀어 놓은 음악도 메뉴판에 적혀 있는 버거의 종류들도 신세대 적이다.
특히나 메뉴의 이름들이 톡톡 튀게 감각적인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그릴로 다시 태어났다 , 그 달의 햄버거 왕... 뜨거운 개... 공주님의 접시... 등등
물론 메뉴에 붙여진 이름의 이유가 따로 적혀 있지는 않았지만 왠지 맛을 상상하게 되는 이름들이랄까?
어쨌거나 우리는 매운 칠리소스와 부드러운 크림소스를 곁들인 고구마튀김 한 접시를 주문하고 (독일에서 자주 만나 지는 고구마는 호박을 연상케 하는 오렌지 색이다)
남편은 깨 붙은 빵 안에 베이컨에 계란이 들어간 그 달의 일등 버거 인 햄버거 왕을 , 막내는 쇠고기 그릴 고기와 치즈가 들어간 그릴로 다시 태어났다 버거를 그리고 나는 그 이름도 매력 터지는 공주님의 접시를 주문했다.(사진의 순서 대로..)
내가 굳이 공주님의 접시를 선택한 이유는 (평소 공주병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 메뉴가 완전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라고 되어 있어서였다.
오호 그렇단 말이지.... 안 그래도 이번 가을학기에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한국요리 강습이 많아서 새로운 메뉴들을 고민 중에 있는데 이참에 아이디어도 얻을 겸 공주님들의 접시 위에는 무엇이 얹어져 나올지 몹시 궁금했다.
물론 메뉴판에 적혀 있기로는 간 콩으로 만든 동그랑땡과 채소 샐러드와 빵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콩이라고만 되어 있으니 무슨 콩으로 어떤 맛을 내려는지 그 맛이 사믓 기대가 되었다.
우리의 녹두전 비슷하려나? 두부 으깨고 채소 넣은 동그랑땡 같으려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기대 만발하고 기다리는데 드디어 공주님의 접시가 나왔다.
음식을 받았을 때의 첫 느낌은 그리 공주 틱한 비주얼은 아니었으나 일단 건강한 유기농 느낌이 폴폴 났으며 한입 크기로 작게 썰어 입에 넣었을 때의 그 느낌은 정말이지 놀라웠다.
어떻게 콩을 갈아 뭉쳐 익히면 이렇게 뻑뻑하고 씹을수록 삼키기가 어려울 수 있으며 콩 날 비린내가 입안 가득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아무리 식재료의 원래 맛 그대로를 좋아하는 채식주의 자라고 하더라도 과연 진짜 이런 맛과 식감을 즐기며 맛나게 먹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어우.. 어우.. 하는 감탄사가 내 입을 통해 남발되기는 했으나 그것이 왠지 맛에 대한 감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였을까?
남편과 막내는 먹어 보겠다는 말이 없었다.
"여보야, 엄청 건강해지는 것 같아"라는 나의 권유에 못 이겨 마지못해 한입 먹어 보던 남편이
그날의 명언을 남겼다.
"이 메뉴가 공주님의 접시 가 된 이유는 공주가 되려면 이 정도 고통은 감수해야 된다는 뜻인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