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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Sep 12. 2017

이것은 꽃인가 채소인가


지난 주말 토요일의 일이다.

일요일 이면 마트고 상점이고 모두 문을 닫는 독일에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토요일 장 보는 것 은 필수다.

주말 내내 가족들이 함께 모여 나눌 식탁을 위한 장부터 월요일 아침 일찍 싸야 할 남편과 아이들 빵 도시락까지 빵, 우유, 방울토마토, 오이, 소시지, 치즈, 과일 등등 필요한 것들을 미리 준비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필요한 식료품 들과 전자 상가에서 사야 할 것들이 동시에 있어서 웬만한 상점은 다 들어가 있어 한번에 처리? 가 가능한 동네 쇼핑몰 뎃츠로 향했다.


마트에서 필요한 생필품 들을 이것저것 카트에 담고 전자상가 쪽으로 가려는데 남편이 오늘따라

카트를 밀며 장 본 것을 차에 두고 올 테니 막내와 먼저 전자상가로 들어가 있으라 했다.

보통은 한꺼번에 차에 가서 싣고는 했는데 오늘은 전자상가에서 남편이 무언가 필요하다 했으니

먼저 짐을 가져다 놓으면 나중에 좀 더 편하려나 보다 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막내와 둘이 전자상가 안에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고 한참을 있으려니

멀리서 남편이 배시시 웃으며 오는 모습이 보였다.

깨우지 않았는데도 이 닦고 옷 입고 학교 갈 준비 다하고 내려올 때의 딱 막내 모습과 흡사하다.

한마디로 칭찬받고 싶어 하는 아이의 얼굴이라 고나 할까?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뭔가를 쓰윽하고 내게 내민다.


오잉? 꽃이다. 독일 꽃집 에서는 특별히 따로 포장을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으면 꽃이 한송이이던, 꽃다발이던 우리처럼 예쁜 종이에 포장해서 주지 않고 저런 종이에 그냥 둘둘 말아서 턱 하고 테이프 붙여 준다.

이유야 포장에 사용되는 비닐, 리본 끈 등은 환경에도 좋지 않고 바람이 잘 통하지 않으니 꽃에 좋지 않다고 이야기들 하지만 (물론 독일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친화 적이고 환경오염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어차피 가져다 화병에 금세 꽂을 꽃인데 그를 위해 따로 포장을 하는 것은 실용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어쨌거나 남편이 내민 꽃을 받아 든 나는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날이어도 꽃을 선물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남편이 웬일이지? 무슨 일일까?

딱 보아도 꽃집의 꽃이지 마트에서 다발 째 파는 것이 아니므로 세일 해서 들고온 것도

아닐터인데..

환한 미소로 고마워하며 그런데 무슨 일이냐고 되묻는 내게..

"그냥, 이 꽃을 보니 네가 생각이 나서.."란다.

연애시절에도 남편이 내게 꽃 선물을 한적은 단 한번이었다.

그만큼 남편에게 있어 꽃을 선물한다는 것은 참으로 스페셜 하고도 드문 일인데....


무슨 이유에서 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남편이 보고 내 생각이 났다는 꽃이 어떤 꽃일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초한 하얀 안개꽃 이려나? 그러기엔 부피가 작다...

아니면 정열의 빨간 장미? 아기 자기한 국화? 향 짙은 백합? 음.... 요즘 종자를 개량한 새로운 꽃들도 많이 나오던데 뭔가 새롭고 삼빡한 것이려나?

너무 궁금해진 나는 차 안에서 살짝 말려 있던 봉지를 옆으로 열어 보았다.

하얗다.. 하얀 장미 인가 보다

연하게 핑크빛이 감도는 하얀 장미를 나는 좋아한다.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오올 남편 센스 작렬인데..." 했더니

"그렇지? 마음에 들지.. 딱 보는 순간 네 생각 이 나서 안 살 수가 없었어" 란다.

때로는 꽃다발 보다도 한송이 꽃이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지금처럼....


장 보아 온 봉지 들을 주방 바닥에 던져두고 우선 시들면 안 되니 꽃부터 꽂아야지 하며

룰루랄라 화병을 찾아 들고 물을 담고 종이를 풀어 꽃을 꺼내며 나는 뜨악하고 말았다.

이게 뭐야? 엉? 그 안에는 하얀 장미가 아니라 하얀 배추도 아닌 것이 양배추도 아닌 것이

꽃의 모양은 하고 있으되 꽃잎의 모양이 이리를 보아도 저리를 보아도 배추를 연상케 하는 것이 나를 보고 있었다.

이 거이 꽃이란 말이지... 혹시  뜯어먹으라고 준 걸까? 왜 얘를 보고 내 생각이 났을까?

꽃대가 튼실해서?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할 말을 잃은 나를 대신해 막내가

기대에 찬 얼굴로 나를 보고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 아빠, 이거 꽃 이야? 채소야?

선물 받고도 왠지 기분이 거시기 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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