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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pr 04. 2021

독일의 부활절 아침과 한잔의 카푸치노

카푸치노는 오늘따라 더 맛나다.


이번 주말 독일은 부활절 연휴다. 일요일인 오늘은 부활절 일요일 내일은 부활절 월요일

고로 내일까지는 공휴일이다.

독일에서 빨간 날 에도 유일하게 문을 여는 곳 중에 하나는 빵가게..

아이들 먹일 갗구워낸 빵도 살 겸 남편과 아침 일찍 우리 집 멍뭉이 나리를 데리고 함께 산책을 나간다.


한 며칠 햇빛 쏟아지고 낮 기온 24도를 오가며 여기가 독일 맞나 싶을 만큼 횡재한 봄날 이더니..

여기 독일 맞음을 인증이라도 하려는 듯 다시 회색 하늘에 쌀쌀한 날씨다.

게다가 공휴일 아침이니 우리처럼 강아지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나 조깅 하는 사람들만 간간이

보일뿐 길에 차도 사람도 없다.

한마디로 적막강산...


언젠가 한국에서 오신지 얼마 안 된 분이 공휴일인데 고요하다 못해 시간이 멈춘듯한 독일 분위기에 너무 놀랍고 무서웠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떠오른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무서울만하다.

오후가 되면 산책 나온 가족들도 더러 있고 놀이터 나온 아이들도 이겠지만 아침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니 말이다. 거기에 날씨까지 우중충 하니 딱 공포영화에서 사건 나기 직전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처럼 이런 분위기에 수십 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만약에 독일 공휴일 아침에 사람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차들이 줄지어 다닌다면 오히려 뭔 일 난 줄 알고 기절하게 놀랄지도 모른다.


서로의 숨소리와 나리의 촐랑 거리며 풀밭을 오가는 소리 만이 들리는 우리의 산책길...

자세히 듣다 보면 나무를 부지런히 오가며 낮게 지저귀는 새소리 들도 꽃잎을 터뜨리는 나무들도 제각기 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가 자주 가는 동네 빵집 길 건너편 나리의 야외 화장실? 에서 중대한 일을 해야 처리해야 하는 남편을 남겨 놓고 길을 건넌다.

아침 일찍이라 빵가게 안에는...

직원의 분주한 손길과 오븐 안에서 익어 가는 빵 들의 톡톡 소리..

시큼한 이스트 냄새와 구수한 빵 냄새가 나를 반긴다.


부활절이라 색색으로 물든 달걀을 얹은 듯한 달달이 빵도 보이고...

토끼를 연상케 하는 당근 올린 머핀도 보인다.

단 빵 들은 살아 살아 나의 살들아 때문에 패스하고 곡식이 골고루 붙은 독일 빵들 골고루 와

카푸치노 한잔도 주문한다.

계산을 끝내고 돌아서려는 내게 빵가게 처자가 카드 한 장을 내민다.

이게 뭐죠? 하는 눈으로 쳐다보는 내게 그녀는

"이거 커피 쿠폰이에요 열개 다 채우면 한잔 공짜로 드려요. 전에 오셔서 드신 것 까지 해서 찍어 드렸어요" 라며 친절한 설명과 함께 눈이 반달로 접힌다.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받아 든 빵 봉투는 유난히 따뜻했고 받아 든 카푸치노는 커피 향 가득했다. 나리와 남편의 산책길에 다시 합류해서도 연신 웃음이 났다.

그 빵집 처자는 내가 알기로 주로 공휴일이나 일요일 에만 잠깐씩 나와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같았다.

다해서 몇 번 만난 적도 없건만 마스크 쓰고 잠깐 만났던 내가 지난번에 카푸치노를 사 갔던 것 까지 기억해 준 것도 묻지도 않았는데 커피 쿠폰을 챙겨 준 것도 작은 친절이지만 독일에서 해 나는 날 만큼이나 만나기 쉽지 않은 것이라 내 맘이 간질간질 해 졌다.


길에 서서 뚜껑 열고 하얀 거품 품은 카푸치노를 한 모금 머금는다.

빵집이나 카페에서 라테나 카푸치노 또는 모카라테를 테이크아웃 해 올 때면 나는 언제나 들고 나올 때까지만 뚜껑을 덮고 나와 서 길이나 차 안에서는 뚜껑을 벗기고 마신다.

테이크 아웃하는 커피가 담긴 종이컵 위로 씌워지는 뚜껑은 플라스틱이기도 하거니와 그 뚜껑채로 마시다가 입구를 못 맞춰서 커피가 옆으로 샌 적도 있으며...

자칭 라면 먹고 자서 부은 현빈이라는 남편과 카푸치노 나눠 마신다고 드라마 찍을 일은 없고

서로 누가 더 많이 마셨나 치사한 티카 타카를 하려면 커피 양이 줄어드는 것이 보이도록 아예 뚜껑 따고 마신다.


내가 가던 길 멈춰 선 것을 어찌나 귀신 같이 아는지 나리는 저도 가던 길을 멈춰 서서는 돌아보며 "거 빨리 좀 오시개" 하는 뜻을 담아 나를 본다.

나리가 멈추니 세트메뉴로 멈춰 선 남편은 내게로 팔을 길게 뻗는다.

다정히 손잡고 가자 뭐 그런 뜻은 아니고 "내도 한 모금 마시자 쫌!" 되겠다.

남편에게 "조금만 마셔 몽땅 마시면 안돼"라며 치사스레 건네는 카푸치노는 오늘따라 더 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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