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3 짜리 우리 집 딸내미 가
예고편도 없이 본방으로
남자 친구를 집으로 데려 왔다.
조금 있다 친구가 집으로 함께 공부하기 위해 올 것이라는 딸내미의 말에
늘 그렇듯 수많은 여자 친구들 중 한 명 이리라 생각하며
점심으로 파스타를 준비하고 있던 나는
현관문 사이를 들어서는 항공모함 같은 사이즈의 신발에 어억?
하고 놀라고 말았다. 촌스럽게도....
삶던 파스타가 아무래도 양이 적을 것 같아 다시 물을 끓이며 "고얀 놈 남자 친구가 생겼으면 진즉에 엄마에게 고할 것이지 그게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고... 를 구시렁거리며 미리 이야기해 주지 않은 딸내미에게 섭섭한 마음과 결혼할 사람을 데려온 것도 아니건만 그래도 딸내미의 첫 남자 친구를 운동복 바람에 머리에 반짝이 삔 꼽고 전투적으로 요리하다 만났다 싶어 쪽팔린? 마음이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도대체 언제? 저 멀대 같은 놈(누굴 데려 와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을 사귄 걸까? 언제...?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엄마, 안토니아 가 남자 친구가 생겼어, 카롤린은 사귀던 남자 친구 이랑 헤어졌데.."
라며 종종 자기 친구들의 연애사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해 주던 딸내미가... 놀아도 주로 여자 친구들끼리 폭풍 수다를 떨며 이 집 저 집 몰려다니는 것을 좋아라 하던 딸내미가... 주변에 남자라고는 학교 친구들로 남자 사람 친구 들만 바글 대던 우리 집 딸내미가 어느 날 남자 친구가 생겼다.
한국도 초등 학생이면 여친, 남친이 있다는데 그 나이면 당연한 일이고 어찌 보면 또래 친구들에 비해 조금 늦은 감도 없지 않다 싶고 큰 녀석이 여자 친구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둘째인 딸내미도 언젠가는 남자 친구를 데려 오겠지... 라며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던 내게도 딸내미 남자 친구와의 갑작스러운 만남은 충분히 당황스러웠다.
요샛말로 썸 타다 사귄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고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엄마인 내가 그동안 전혀 낌새를 채지 못했다니... 딸내미와 비밀 없이 친구처럼 지낸다는 나만의 자부심에 흠집 나는 소리가 들렸으며 학교 수업부터 친구 관계까지 아이들의 대해 거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하던 자칭 거미줄급 레이더 망에 에러가 난 것이 입증되던 날이다.
독일 청소년 들의 연애
그들은 어떻게 만났을까?
그날, 학교가 달라 비슷한 테마의 역사 세미나 발표를 지난 학기에 먼저 했다는 딸내미의 남자 친구는 그 세미나 준비를 도와주기 위해 친절히 집까지 방문해 주었다고 했다. 자료집 바리바리 들고....
함께 공부할 것이라는 딸내미의 말에도 반가운 마음보다는 알고 싶고 궁금한 것이 산더미처럼 늘어나던 나는 며칠에 거쳐 딸내미를 이리 족치고 저리 족쳐서 그들의 연애사를 털어 댔다.
나는 도대체 학교도 다른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을까? 저 멀대?라는 속 마음을 감추고 "그래, 딸.. 너의 다니엘은 어디서 만났니?"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남자 친구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좋은지... 광대가 승천하던 딸내미가 "음 얼마 전에 라우라 랑 제시 랑 괴테 아비 파티 간다고 했잖아 거기서 만났어 제시보다 한 학년 아래 야 "라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독일은 수능 시험인 아비투어를 끝내고 나면 아비 파티라는 것을 학교마다 크게 하는데 이때 부모들과 가족이 함께 참석하는 아비 발이라는 것을 즉 그해 졸업 파티는 주로 학교에서 개최한다. 또 수험생들이 디스코 등의 넓은 장소를 섭외해서 따로 그간의 노고? 와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리기 위한 쿨한 자기들 만의 파티를 준비하는데 그것을 아비 파티 Abi party 라고 한다.
학교마다 그리고 수험 연도 마다 어디서 어떻게 아비 파티를 멋지게 했는가? 가 마치 우리의 어느 학교 축제에 연예인 누가 왔더라 처럼 회자되기도 하니 지들 나름 대로는 꽤나 중요한 파티라 하겠다.
어쨌거나 이런 파티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은 아비투어를 마친 수험생 이거나 이번에 아비투어를 치를 예비 수험생들이 되겠는데 그렇다 보니 이학교 저 학교 비슷한 또래들이 모여들며 그들 만의 파티가 벌어지는데
친구들끼리 또는 아는 사람들끼리 서로 주선해 주는 소개팅, 미팅, 이런 문화가 없는 독일에서는 요런 파티 들이 청소년들이 새로운 이성 들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대문사진을 포함한 본문의 모든 사진을 구글에서 퍼왔습니다.
독일 학교의 성교육
어쨌거나 그동안 학교의 수많은 남자 사람들 에게도 특별한 관심이 없었고 교환학생으로 갔던 땅덩어리 더 넓고 학생수가 더 많던 미국의 하이스쿨에서도 이성 적으로 관심 이 가던 남자 가 없었던 딸내미에게 우르르 함께 만나서 영화 보러 다니고 놀러 다니는 남자 사람 친구 들이 아닌 단둘이 만나는 단 한 명의 남자 친구는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또한 자식 일이라면 언제나 걱정이 앞서는 새가슴 엄마에게 딸내미의 연애는 노심초사의 시작이 아닐 수 없으며 건강하고 열정이 넘치는 남의 집 귀한 아들은 여간 신경 쓰이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아들이 여자 친구를 사귄다 했을 때는 이렇게 조마조마 하지는 않았는데 역시나 아들 가진 부모와 딸 가진 부모의 마음은 다른 것 같다.
예전에 친구 크리스티나의 고등학생 딸내미 가 남자 친구가 생겼다길래 축하한다며 우리 딸내미는 어찌 된 게 남자 애들한테는 관심이 없고 그저 여자 친구들 이랑 모여서 수다 떨며 노는 것을 좋아한다 했더니
"글쎄.. 좀만 있어봐.. 너도 딸내미 남자 친구 생겨 봐라 골치 아파....."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떠오른다.
독일 에서는 청소년인 아이들이 모두 대학입시 를 준비 하고 있지도 않고 그렇다 해도 공부해야 하는 이 중요한 시기에 무슨 이성 교제 냐며 부모가 화를 내거나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 어른이 아닌 스스로도 부모의 돌봄이 필요한 청소년 시기에 혹시나 이성교제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이 건전한 이성교제라는 말이 없는 독일에서도 부모 들을 걱정 하게 만든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 생기 발랄한 아이들이 서로 좋다고 연애를 하며 손만 잡고 다닐 것인가? 그렇다고 애들 데이트할 때마다 스카프 둘러 쓰고 쫓아다닐 수 있겠는가?
문득 나는 우리 딸내미가 얼마나 성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에 학교에서 성교육 Sexuallkunde 수업을 시작한다.(주마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물론 남자, 여자가 몸이 다르게 생겼고 엄마와 아빠가 사랑을 하면 동생이 생긴다는 것은 유치원 때 이미 유치원에서 그리고 집에서 배운다.
그렇기 때문에 초등학교 아이들은 이미 아기들을 황새가 데려다준다는 등의 이야기는 동화 속 이야기라는 것을 안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은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뿐만 아니라 이차성징을 통한 남녀의 다른 몸의 변화로 생리, 몽정, 그리고 성관계, 임신 등의 내용 들을 배우게 된다.
그다음 6학년이 되면 올바른 성의 가치관, 관계와 임신과 출산에 대한 내용 그리고 자세한 피임법 등을 콘돔, 피임약 등의 자료를 가져다 놓고 이론 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용방법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배운다.
물론, 그 내용에 있어 주마다 학교마다 수위? 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학부모 들 중에 우리 아이에게 너무 이른 수업이라 생각되면 그 수업을 참가시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부모 들은 학교에서 성에 대한 올바른 개념뿐만 아니라 실질 적인 성교육을 시켜 줄 것을 원하고 있으며 그 필요성을 크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독일 학교의 성교육은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내용들로 진행된다.
또 독일 학교에서는 이미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9학년의 아이들 에게 (우리로 하면 중학교 3학년) 다시 한 번 더 성교육을 실시한다.
이렇게 학교에서 단계적으로 실질적인 성교육을 받게 되는 독일에서는 피임이 뭔지 몰라서
아이가 아이를 가진 임신이라는 기막힌 상황에 봉착하게 되는 청소년의 경우가 적은 편이다.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는
딸 가진 부모의 마음
그러나 딸내미가 성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다 해도
시대가 아무리 달라 졌다 해도
아들 이 아니라 딸내미 이기 때문에 더 걱정 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 옛날 울엄마 아부지 처럼 ....
나이만 꽃 같던 시절 어디 갔다 조금만 늦어도 대문 밖을 서성 이며 이제나 저제나 딸내미를 기다리시던 친정 엄마 아부지의 마음이 그때의 나 만한 딸내미가 남자 친구가 생기고 나니 이제야 헤아려 진다.
그때는 뭔 걱정들을 그리 사서들 하시나? 다른 친구들 부모님 들처럼 좀 가만 놔둬 주시지... 이제 다 컸는데 내 알아서 잘 하고 있구먼...별 걱정을.. 이라며 갑갑하게만 느껴지던 부모님의 관심과 걱정이 어떤 마음 인지...
짹깍 짹깍 돌아가는 시곗바늘을 노려 보며 딸내미에게 언제 들어오냐고 문자를 날리고 있는 지금 에서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