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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Oct 03. 2019

누군가는 닮게 되어 있다.


유전 도 시작은 있다.


막내의 초등학교 친구 중에는 운동에 소질 이 있어 집에서 조금 멀지만 체육 특기반이 있는 괴테 김나지움을 간 필립이라는 친구가 있다. 집이 근처라 종종 만나게 되는.... 그 엄마는..

만날 때마다 내게 이렇게 묻고는 한다. "아유 민진이 그새 더 큰 거 좀 봐요. 누구를 닮았데요? "

필립은 독일 사람 치고 아담한 엄마를 닮아 또래보다 키가 많이 작은 편이다.


그래서 그 엄마는 또래보다 한참 큰 편인 우리 막내를 볼 때면 언제나 부러움을 섞어  

'그 집 엄마 아빠는 큰 키 가 아닌데 애는 왜 이렇게 쑥쑥 잘 크나?. '라는 뜻이 담은 질문을 인사처럼 던 지 고는 했다.

그녀의 질문에 나는 언제나 웃으며 답한다 " 우리 민진이는 태어날 때부터 컸잖아요"

태어날 때 58센티였던 막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미 키가  157cm에 신발은 아빠와 같은 42( 우리의 260)를 신었다. 키도 발도 또래에 비해 큰 편이다. 어릴 때는 또래보다 늘 작았던 형아나 누나와는 다르게 막내는 시종일관 크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막내는 우리 집 식구 들 중에는 아무도 찾아볼 수 없는 영구치가 없는 두 개의 유치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어느 날 치아 교정 때문에 치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두 개의 유치 밑에 영구치가 보이지 않는 다고 했다.

치과 선생님은 놀라서 눈이 커진 내게  5프로 에서 10프로 정도의 사람은 유전적으로 영구치가 없이 유치만 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아주 드문 일은 아니라는 설명을 덧붙여서 말이다. 

너무 놀란 나는 나도 모르게 "선생님, 우리 식구들 중에는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는데요"라고 대답해 버렸고....


키만 큰 게 아닌 우리 막내는 놀라서 멍 해있는 엄마에게 애어른 같은 기막힌 말을 날렸다.

"엄마, 유전 적인 것도 누군가 시작을 해야 하는 거지,

 우리 집에서는 그 시작이 나 인가 보네 "


노상 방뇨 아님!  아빠와 아들 둘이 똑같은 포즈로 바다를 바라 보는 모습, 그리고 책읽는 모습

누구를 닮았데요?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같은 집에서 자랐음에도 우리 아이들은 발육, 성격, 잠자는 습관, 좋아하는 음식, 취미 등등 모든 면에서 각기 다르다.

예를 들어 된장국을 하나 끓여 놓으면 큰아들은 두부를 딸내미는 감자를 막내는 버섯을 보며 눈을 반짝인다.

그래서 서로서로 좋아하는 것을 건져 먹다 보면 남는 게 없다. 그런데 참 재미난 것은 개성이 뚜렷하고 식성 또한 각기 다른 아이들이지만 자라면서 집안의 누군가 와 이렇게 저렇게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거다.

그래서 옛말에 "씨 도둑은 못한 다"는 말이 생겼나 보다. 조금 거친 표현 이기는 하나 유전의 놀라운 힘을 이보다 정확히 표현해 내는 말이 또 있을까?


또래보다 언제나 키가 작아서 시어머니를 걱정케 했다는 남 큰 아들은  똑 닮았다.

중학교 때까지 키가 작아서 가방을 끌고 다녔다는 남편처럼 큰아들도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자라기 시작했고 남편 총각 때처럼 키만 훌쩍 크고 빼빼 말라 있다. 그런데 어깨가 좁고 팔 달리가 긴 체형은

남편의 할아버지 이신 증조부를 닮았다.

그분을 뵌 적은 없으나 시작은아버지의 체형이 딱 그러하시다.


또, 딸내미는 시간이 없어 식사는 걸러도 머리하고 예쁘게 화장까지 해야 집을 나선다.

"그려 봐야 그 얼굴에 햇살 이요 본전? 치기다" 라며 생얼을 고수하는 엄마를 닮지 않고 항상 꾸미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으시고 생얼로는 외출을 하지 않으시는 시어머니를 똑 닮았다.


막내는 성장 속도 면에서는 다르나 어슬렁어슬렁 걷는 뒷모습도 허리가 긴 편인 체형도 어깨가 약간 꾸부정하게 앉아 책을 읽는 모습도 잘 때 이불 사이로 다리 한쪽을 살짝 내어 놓고 자는 모습도 복스럽고 빠르게 먹는 식사 습관도 남편을 복사한 듯 닮았다.


누군가는 닮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막내가 남편과 한 가지 크게 다른 것이 있었다.

엊그제 저녁의 일이다.

한 번에 이것저것을 하다 보니 스파게티를 삶다가 조금 늦은 타이밍에 면을 건져 냈나 보다.

한입 삼키던 막내가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엄마 이거 스파게티 야? 수프야?"

나는 아차, 면이 좀 많이 삶아졌구나 싶으면서도 다른 사람은 불평 없이 먹는데 쪼그만 게 그냥 먹을 것이지

꼭 한마디를 한다 싶어 "  너 지난번에는 면이 너무 딱딱했다며 오늘은 잘 삶아져서 먹기도 편하고만 뭘.."이라고 맞받아쳐 주었더니 짜아식이  씩 웃더니" 응 엄마 씹을 필요도 없이 꿀떡꿀떡 잘 넘어가 수프야"

라는 것이 아닌가


에유, 누구  닮아 저렇게 까탈을 떠나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가만 그러고 보니 이 까다로운 입맛 익숙하다... 그렇다, 무엇이던 주는 대로 더불 더불 맛없는 것은 없는 대로 있는 것은 있는 대로 먹어 주는 남편과는 다르게 친정아버지의 입맛은 꽤나 까다로 우 셨었다.


원래도 입맛이 예민한 분 인 데다가 나이 차이 많은 형님이 일찍 결혼을 해서 음식 솜씨 좋기로 소문난 형수님의 경기도식 밥상에 어려서부터 적응이 되어 있던 친정아버지는 친정 엄마가 차려 내시는 경상도 스타일의 조금 다른 양념의 음식들을 입에 맞아하지 않으셨고 , 그 덕분에 친정 엄마는 남편 시집살이를 사셨더랬다.

같은 반찬이 아침, 저녁으로 연거푸 밥상에 오르는 날이면 무슨 반찬을 한 달 내내 먹느냐 하시고,

어쩌다 외가댁에서 보내온 싱싱한 미더덕 으로 정성 들여 끓인 엄마의 경상도 스타일 된장국이 상에 오르는 날이면 아버지의 음식 타박 메들리를 삼박 사일 들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 막내는 그런 입맛 까다로운 외할아버지와 무척 이나 닮았다.

한 번도 만나 뵙지 못했음 에도 불구 하고 말이다.

만약 아버지가 저리도 당신을 닮은 우리 막내를 보실수 있다면 뭐라고 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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