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그날은
여느 날 같은 수요일이었다.
시내에서 수업을 끝내고 오후 1시 집으로 가기 위해 바쁘게 트램(전차) 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 평소와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한 곳을 향해 술렁이며 걷고 있었다.
그 다른 분위기 때문에 뭔 일 있구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류장 옆에 트램 노선별 도착 시간을 알리는 전광판에 올라와야 할 숫자들은 살아지고 안내 문구만 반짝이며 지나가고 있었다.
내용은....
시내 중심을 통과하는 모든 버스와 트램은 운행되지 않으며 시내 중심과 조금 떨어져 있는 Amstern에서 외곽으로 부분 적 운행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집으로 가려면 버스 나 트램을 타고 가도 5 정거장은 가야 하고 수요일 오후 에는 시간 맞추어해주어야 할 일들이 줄을 섰는데 말이다.
그때 서 있던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향하고 있는 Amstern 까지 걸어간다고 해도 집 방향으로 가는 차는 없을 것이 분명하고 난감하기 그지없는 순간이었다.
예전에 대중교통 파업을 할 때도 버스와 전차들이 이렇게 부분적으로 운행되고 있었고 어느 겨울 하룻밤 새 쏟아져 내린 폭설로 철로가 뒤덮이는 바람에 전차들이 올 스톱된 적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일까?
나는 궁금한 마음을 잠시 접어 두고 어떻게 하는 것이 시간을 아끼고 고생을 덜 하는 길일까? 에 대해 빠르게 고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운 날 땡볕 받으며
집 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나는 그 남들 다 있다는 장롱면허 조차 없으니 이렇게 대중교통에 문제가 생기면 대책 없이 발이 묶이고 만다.
진즉 운전면허를 땄어야 했는데...(무면허 일인)를 구시렁 거리며 걷던 길 모퉁이 곳곳에서는 언제 출동했는지 경찰 차량들이 오가는 차량 들을 통제 하고 있었고 차 밖으로 나와선 경찰 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당황해하는 시민들에게 일일이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늦더위가 체 가시지 않아 한낮 온도 30 도 가까이 되는 날 길에 서서 같은 설명을 계속해 주어야 하는 경찰들도 가야 할 길을 못 가고 뺑글 뺑글 돌아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어 난감 한 시민 들도 짜증스러운 오후였다.
그런데 이 난리의 이유가 섬뜩했다. 요즘 들어 끊임없이 공사 중이던 시내 중심 Ständeplaz와 fünffensterstrasse 사이에서 2차 세계 대전 당시 폭탄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시내 한복판에서 폭탄이 발견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카셀은 독일의 수백 년 된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남아 있는 다른 도시에 비해 2차 세계대전 중에 집중포화로 남아 있는 옛 건물이 별로 없는 피해를 많이 입은 도시 중에 하나다.
그 당시 어찌나 많은 폭탄들이 쏟아졌던지 50킬로 100킬로 떨어진 다른 도시에서도 카셀 방향의 하늘이 붉은 잿빛이였다고 한다.
그러니 몇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시내 공사하다 폭탄이 발견되어도 놀랄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혹시나.., 그 폭탄이 공사하던 도중에 터졌거나 공사 다 끝날 때 까지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예고 없이 터졌다면?"이라는 혹시나... 하는 것은 상상 만으로도 끔찍하다.
예전에 남편의 직장 동료 들과 함께 폭격이 오가던 2차 세계 대전 당시 사용되던 벙커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날도 간접적이지만 전쟁에 참혹함에 관한 생생한 실화 들을 접할 수 있었다.
(궁금하신 분들은 요기 클릭 더위를 잊게 했던 공포의 2시간 30분)
그런데 텅 빈 시내의 거리 들과 기약 없이 정차되어 있는 전차들.. 그리고 여기저기 막고 서 있는 경찰차 들과 사이렌 소리 울리며 오가는 응급차 들과 소방차들 그리고 삼엄한 분위기를 뿜어 내는 경찰관들의 모습에서 실제 전쟁에서 사용 되었던 폭탄이 발견되었다는 것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과 차량이 오가며 살고 있는 시내 중심부에서 라는 작지 않은 상황과 어떻게든 안전 하게 폭탄이 해체 되어야 한다는 무게가 더해져 심각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진땀 나는 시간 속에서...
그 심각한 분위기를 뚫고 터덜 터덜 집으로 가던 길에 갑자기 머리를 쭈뼛하게 하는 사실 하나...
이제 김나지움(독일의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새로운 학교로 전차 타고 통학 한지 얼마 안 된 막내가 떠올랐다.
이런...
막내가 학교에서 집으로 오려면 3번 또는 7번 전차를 타고 6 전거장을 와야 한다.
그런데 그 3번 7번이 공교롭게도 폭탄이 발견된 시내를 통과해서 오가는 노선이라 만약 막내가 집으로 출발하기 전에 시내를 오가는 전차나 버스를 통제했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으로 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시계는 2시 10분을 향해 가고 있었고...
수요일 막내는 마지막 수업이 13시 30분에 끝인데 이미 수업은 끝나고도 한참인 시간...
우리 막내는 지금 어디 있을까? 생각하니 머릿속이 하얘지고 있었다.
막내는 김나지움 5학년으로 우리로 하면 인문계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고등학생이지만 그것은 초등학교는 4학년까지 이며 중학교가 없는 독일 공립학교 시스템에 따라 그런 것이고 우리로 하자면 아직 초등학교 5학년이다. 게다가 집 앞에 있는 초등학교로 걸어 다니다가 전차를 타고 김나지움을 혼자 다닌지도 며칠 되지 않았고 이제 간신히 통학하는 길을 익히고 있는데...
더군다나 우리 막내는 핸디도 없다. 막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연락할 방법도 없다는 거다.
독일 고등학교에서는 학교 안에서 핸디 없이 생활을 권장 한다.
수업 시간에 핸디를 켜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저학년 들은 되도록 핸디를 학교에 가지고 오지 않는 것을 권한다. 아이가 학교에서 갑자기 아프거나 해서 부모와 연락을 취해야 할 때는 서무과에서 언제든지 학교 전화로 연락을 취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시간에는
서무과에 아무도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핸디도 없어 연락도 안 되는... 타고 다니던 전차 빼놓고는 집으로 오는 길도 잘 모르고... 방법도 없는 막내를 어떻게 만나 집으로 데려 와야 하나?
날도 더운데 뛰듯이 걷다 보니 등 쪽으로 땀은 비 오듯 흐르고 어떻게든 이 난감한 상황을 빠져나가 려면 뭔가 대책을 강구해야겠는데 머릿속은 이미 한국의 출퇴근 시간 지하철 안만큼 이나 복잡 스러웠다.
그렇게..
발바닥에 땀나게 집으로 향하던 나는 중간중간에 정차되어 있던 전차 기사 아저씨들에게 몇 시쯤부터 이렇게 정차하고 있는지 물었다. 저 위쪽 동네 학교 앞에서 어쩌면 막내가 여기까지는 올 수가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곧 집에 도착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져 보며 말이다.
그런데 앞뒤로 나란히 정차하고 있던 전차의 기사 아저씨들은 갑자기 12시 30분쯤 시내에서 폭탄이 발견되었으니 그대로 멈춰 서서 운행하지 말라는 연락을 받고 멈춰 있은지 두 시간이 다 되어 가니 아마도 그 위쪽으로 전차가 올라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숨이 먼저 나왔다.
그렇다면 우리 막내는 오지 않는 전차를 기다리며
정류장에서 한 시간이 다되도록 서있거나 이 더운 날 가방 메고 전차 여섯 전거장을 걸어서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자도 후자도 엄마 마음에 안타깝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어찌 되었든 집부터 가서 아이가 혹시나 집으로 올 수 있었는지 확인부터 하고 만약 오지 못해 다면 아이를 데리러 학교까지 가야 한다는 결론이 난 나는 발걸음을 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그 평범한 일상의 평화로움이
값진 이유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집은 평소와 다름없이
졸다깬 우리 집 강아지 나리만 두 눈을 껌뻑이며
왜 그러지? 하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막내가 온 흔적은 없었다.
아.. 아직 학교에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집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에 찍힌 번호는 모르는 번호였는데 받고 나니 우리 막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너 어디니?" 급한 마음에 다짜고짜 물었다.
아직 학교라던 아이는 기다려도 전차는 오지 않고 전광판에 전차가 운행 되지 않는다 는 내용만 뜨고 해서
우선은 학교 안 으로 들어가 아직 학교에 남아 있던 학년 다른 아이들 중에 얼굴이라도 아는 아이들 에게 핸디를 빌려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내 에서 걸어 들어 오느라 집에 도착 하지 못하고 있던 엄마 와는 연락이 되지 않았고..
그래도 느긋한 성격의 막내는 학교 안에서 이애 저애랑 놀다가 또 다른 아이 에게 핸디를 빌려 다시 한번 시도한 전화 에서 엄마와 연락이 되었던 거다.
사실 지나고 나니 아무렇지 않게 글을 쓰고 있지만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수없고 시내 한가운데서 폭탄이 발견 되었다 하고 그로인해 시내를 통과 해야 하는 대부분의 전차, 버스가 끊기고 발이 묶이며 수십대의 경찰차와 응급차, 소방차 들이 긴급히 오가던 그 상황은 나름 긴박 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른체 집에 갈 방법은 없고 배는 고프고 엄마와 연락은 안되었던 막내의 상황을 그려 보며 이번에 발견된 폭탄이 터져 대던 실제 상황이던 2차 세계대전 그때 그순간에는 무슨일인지도 정확히 모른체 수많은 아이들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무섭고 배고팠을까 싶으니 정말이지
아무일도 일어 나지 않은 어제의 평범한 오후가 가져다 준 평화로움이 새삼 얼마나 값진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수요일 오후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