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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an 19. 2018

의사도 환자가 될 수 있다.



평범한 중년의 부부

우리는 새까맣던 머리카락 대신 어느새 한 올 한 올 흰머리가 늘어 가고 있는 보통의 중년 부부다.

그럼에도 뭐, 가끔 우리는 나이를 잊어버리고는 한다.

그럴 때의 나는 딸내미 옷장에서 슬쩍 해온 보기에도 손바닥만 한 옷들을 들고 어떻게든 입어 보겠다고 애쓰다 입기는 했는데 벗을 수가 없어 끙끙거리며 남편을 폭소하게 하기도 하고

또, 남편은 거울 앞에 서서는 자기가 쓰고 있는 안경만 벗으면 그전날 라면 먹고 자서 얼굴 부은 현빈 이라며 애꿎은 현빈 씨와 거울에게 미안할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고 서있는 자세가 구부정해서 배가 나와 보일 뿐이라며 이미 뽈록하게 나와 있는 배에 힘을 주고는 나를 빵 터지게 한다.


이렇게 서로를 웃게 하는 우리는 아직은 중년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어색하고 서로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에 제대로 실감을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였을까?

피곤해를 노래처럼 부르고 다니고 여기저기 수시로 아픈 곳이 생기기 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아직은 젊고 건강하다고 착각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바쁜 일상 이 또 50대라는 나이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때인데 우리는 그것을 간과하고 있었는지도....

그저 어제도 골골했으나 별 탈 없이 지내 왔으니 오늘도 그러려니 하고 말이다.




이유 없는 증상은 없다.


재작년에 타던 차를 폐차하고 차를 바꾸고 나서부터 남편은 운전 중에 종종 짜증을 내고는 했다.

이유는 그전에 타던 차에 비해 지금 타고 있는 차가 차 안이 좁고 낮은 편이라 오른쪽으로 다른 차가 들어오는 것이 잘 안보인다는 것이다. 거기다 운전석 옆에 앉은 내 얼굴이 너무 커 주셔서 더 잘 안보인다는 말도 안 되는? 타박으로 나를 삐지게 하기도 했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운전 중에 오른쪽이 가끔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차종이 바뀌어 그런 것이니 익숙해질 때까지 차선을 바꾸거나 아우토반에서 길을 빠져나갈 때 오른쪽으로 들어오는 다른 차들을 내가 좀 더 신경 써서 봐주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회에 다녀온 남편은 점점 책 읽는 것도 힘들어지는 눈 때문에 자기가 일하고 있는 종합병원에서 MRI를 한번 찍어 보아야겠다고 했다.

주로 자기돈 들여 검진을 받는 한국에서는 종합검진으로 CT, MRI를 본인들이 원해서 찍어 보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대부분 의료보험에서 지원을 받는 독일에서는 찍어 보고 싶다고 해서 CT, MRI를 찍어 볼 수는 없다

의사가 판단하여 꼭 필요하다 싶은 환자들 에게만 검진서를 써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검사를 받아야 할 만한 뭔가 의심되는 소견이 있다는 이야기다.


깜짝 놀란 나는 갑자기 그건 왜?라고 물었다.

남편은 원래 근시가 심한 편이어서 안과 검진은 정기적으로 받고 있었고 노안 때문에 시력이 조금 나빠진 것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다고 했었다.

그런데 왜 종합병원에서 MRI를 찍어 보아야 하나 싶어 물었더니

그 학회에서 다양한 과들동료들과 점심시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대학병원 안과에서 일하는 동료가 안과 검진은 정기적으로 받고 있 는데 계속 시력이 나빠지고 있는 것 같다는 남편에게 그럼 MRI는 찍어 보았느냐 물었단다.


그제야 아차 싶었던 남편은 만약 안과 검사에서는 별다른 것이 나오지 않았으나 계속 시력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자기와 같은 증상을 가진 환자가 찾아왔다면 혹시나 모를 것을 대비해 MRI를 권했을 것이라는 거다.

시력이라는 것이 눈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요인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위기의 남자


일사천리로 남편의 MRI 가 예약이 되고 촬영 전 먼저 안과 검진이 이루어졌다.

안과에서는 시신경이 눌려 있는 것 외에는 모두 정상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렇다면 남편의 시신경은 왜 눌렸을까?

우리는 서로 다른 걱정으로 마음 안 쪽에서 폭풍이 일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 에게는 "괜찮을 거야 별거 없을 거야 자기 건강하잖아"라고 이야기했지만 속은 걱정으로 까맣게 타고 들어가고 있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니 뇌에 어떤 질환이 생겼을 때에도 시신경이 눌린다는데 혹시나 그런 거면 어쩌나?

만약 그래서 "나 왔지!"라고 웃으며 퇴근하는 남편을  더 이상 못 보게 된다면.... 자다가 드렁 드렁 코를 고는 남편의 코를 살짝 쥐면 내게 미안해 등을 돌리 고는 하는 남편 인데... 그 따뜻한 등에 고개를 대면 느껴지던 그 온기를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된다면... 혹시나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들은  상상 만으로도 끔찍하게 무서웠다.


흔들림 없이 담담하던 남편도 속으로는 시신경이 이렇게 많이 눌릴 정도 라면.... 이라며 자기가 익히 알고 있는 뇌종양, MS 등의 병의 증상과 예후 그리고 진행 과정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떠돌아 아직 어린 막내 얼굴 한번 내 얼굴 한번 쳐다보고 얘네들이 나 없이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의사도 환자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서로 모르게 애를 태우던 날들을 지나 MRI 검사를 마치고 보니 다행히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머릿속에 먹구름이 겉히는듯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시신경이 눌리고 손상된 이유를 찾아야 하기에 남편은 자기가 근무하는 병원의 안과 병동에 조용히 입원을 했다.

남편이 입원한 첫날 그 병동 간호사 선생님들이 깜짝 놀라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과는 다르지만 협진 때문에 남편과 종종 마주치던 그 선생님들은 "입원하러 왔어요"라는 남편을 보고 처음엔 어리둥절해 웃으며 "진짜요?" 하고 다시 물었다.

독일의 병원에서는 환자가 입원을 해도 환자복이 따로 없다 그냥 집에서 가져온 본인이 제일 편하다고 생각하는 옷들을 입고 지내는데 의사 가운만 벗고 있었지 평소와 별반 차이 없는 모습의 남편이 입원을 하러 왔노라 하니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나 보다.


자초지종을 들은 간호사 선생님들의 안내로 병실을 받고 짐을 정리하는 중에 입원실에 노크 소리와 함께 이번엔 청소도우미 아주머니가 놀라며 남편에게 "아니 왜 여기 계세요?"한다.

병원 안에서 오며 가며 자주 보던 의사가 입원을 해 있으니 이상했나 보다

그때 남편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 의사도 아플 수 있어요. 이렇게 입원하고 보니 환자분들 마음을 더 잘 알 것 같아요"라고...


의사도 아플 수 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병들 수 있는 환경 요건을 두루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의사들은 환자들 에게 말하고는 한다. 균형 잡힌 삼시 세 끼의 식사, 규칙적인 운동, 되도록 적은 양의 카페인 섭취, 숙면, 증상 있으면 정확한 검진 등을 받아 보시라고 말이다. 그러나 정작 의사들은 증상이 있어도 본인 몸을 위한 정확한 검진을 받으러 다닐 시간도 없을 때가 대부분이고 응급 환자들이 발생하면 균형 잡힌 식사는커녕 물도 마실 시간이 없을 때가 허다하며

피곤 하니 물 보다 주로 커피 등의 카페인 섭취가 많으며 규칙적인 운동을 위해 시간을 따로 내야 하건만 지쳐있으니 그 시간에 그냥 자는 걸 원하며 병명을 알수 없이 입원한 환자들 진단, 테라피, 약 처방..... 또는 환자 들을 떠나보내야 했을 때... 등의 여러 가지 생각 들로 숙면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다.




남편의 입원실을 뒤로 하고....

독일 종합병원의 입원실은 2인실 이 주로 많고 3-4인실 6인실도 있으나 사보험이 아닌 대부분의 공보험 환자들은 미리 원하는 입원실을 선택할 수는 없고 그때마다 병동과 환자 상황에 맞추어 형평성 있게 나뉜다.(예를 들어 비슷한 연령, 비슷한 상황 등으로)

그런데 병원 측의 특혜?로 남편은 1인실에 입원을 했다.

물론 그 당시 급히 그 입원실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없었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그 병원에서 안과 질환으로 입원한 환자 분들 중에서도 내과적 질환으로 남편에게 진료를 받았던 분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혹시라도 환자들과 함께 입원하고 있으면 불편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배려였던 것 같다.


생애 처음 입원을 한 남편을 입원실에 홀로 두고 집으로 돌아오며 내 남편도 아플 수가 있구나...

그럼에도 분명 우리의 오늘은 어제 와 다르다 라고 되뇌었다.



이야기는 다음편 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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