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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pr 10. 2020

#15.새벽 2시 경찰이 다녀갔다.


띵똥,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음? 이 시간에? 누구지? 아무리 생각해도 올 사람이 없다.

요즘 코로나 사태로 인해 서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터라 우리 집의 원초적인 초인종 소리 띵똥을 들어 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우편배달부 아저씨나 택배가 배달될 시간도 아니고 말이다.


뭐지? 싶어 헐레벌떡 지가 먼저 현관으로 앞서 나가고 있는 우리 집 멍뭉이 나리를 살짝 옆으로 밀치고 현관문에 나있는 작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독일의 주택가 가정집들은 인터폰 그런 것 없이 클래식하게 초인종 띵똥인 집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아직도 동네 꼬마 아이들이 벨 누르고 도망가는 놀이를 하고는 한다.우리 어린시절 하던것 처럼..)


그런데... 현관문 앞에는 키가 훤칠하니 크고 안경 쓴 단발머리의 조금 마른듯한 젊은 여자 한 명이 서 있었다.

누굴까? 어디서 봤지?

왠지, 어디서 본듯한 인상의 방문자에 관한 기억을 더듬어 보며 어떻게 던 내 다리사이로 빠져나가 아는 척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우리 집 멍뭉이 나리를 막고 서서 현관문을 살며시 열었다.


우리 집 정원 문으로 마주 보이는 벤치에서 젊은이들이 렛 잇 비를 목놓아 부르다 두 명 이상이라고 경찰에게 쫓겨났다.

우리 집은 예전에 레스토랑 이었던 곳이라 독일의 일반 가정집 하고는 다르게 현관문을 안쪽으로 당기듯이 여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밀듯이 연다.

그래서 우리 집 문이 열릴 때면, 대부분은 익숙하지 않은 방향으로 문이 훅하고 열리는 것에 순간 당황하기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열자, 눈이 동그래 지며 문 쪽에서 한 발짝 더 물러서는 젊은 여자의 얼굴을 보니 아, 이제야 기억이 난다.

그녀는 다름 아닌 우리 이웃집 중에 한집인 다세대 주택 3층에 사는 새댁이다.

작년에 우리 동네로 이사를 들어온 그 집은 유모차 타고 있는 아기를 키우고 있는 젊은 부부다.


한동네 이웃으로 살아도 원래 아는 사이도 아니였고 서로 다니는 시간도 달라 마주칠 일도 별로 없었다.어쩌다 마주쳐도 그때마다 늘 머리를 하나로 묶고 있던 새댁이어서 금방 알아보지 못했다.

그 어쩌다는 주로 종이 쓰레기 버리거나 병 쓰레기 버릴 때 였고 그때마다 간단히 인사만 하고 지나쳤지 서로 이야기를 길게 나누거나 한 적은 없었다.

그렇게 데면데면 한 사이인데 어쩐 일로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와 정원을 사이에 두고 있는 다세대 주택, 여기 3층에 새댁 네가 산다.

반쯤 열린 현관문 사이로 서로 거리를 두고 서서 처음으로 이웃집 새댁과 제법 긴 대화를 나누었다.

조금 벌쭘한듯 멀찍이 서서 차분히 시작한 그녀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어제 그녀의 남편이 출퇴근용으로 사용하던 전기 스케이트 보드가 도둑을 맞았다고 했다.

(요즘 날씨도 좋고, 코로나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 더 안전하다는 생각에 자전거 또는 인라인 스케이트 그리고 전기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분명 집안 정원 창고에 잘 잠가 두었던 것이었는데...


그래서 경찰에 신고를 했더니, 그전날 이웃집 울타리 앞에서 젊은 청년 두 명이 전기 스케이트보드 들고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동료 경찰이 보고 늦은 시간에 자꾸 돌아다니지 말고 그만 집에 들어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슨 소린고 하면...

요 며칠 독일 날씨가 너무 좋아서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것이 힘들어진 젊은 이들이 날씨 핑계 김에 동네 벤치 나 공원 등으로 모여 다니는 일들이 수시로 발생해 낮이나 밤이나 경찰 아저씨들이 단속을 다니신다. 우리 옛날 옛적에 통행금지 단속하듯....


며칠 전, 우리 집 앞 벤치에서도 서너 명의 젊은이들이 햇빛 받으며 모여 앉아 그 유명한 비틀스의 렛 잇비를 삑사리 나게 불러 재끼다 두 명 이상은 이렇게 모여 앉아 있으면 안 된다며 단속 나온 친절한 경찰 아저씨 두 분 에게 사뿐히 쫓겨나는 것을 본 적이 있어 그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대문 사진출처: augsburger-algemeine.de 코로나 파티 단속 나간 경찰관 모습 )

우리 동네에 종이, 병 등을 분리해서 버리는 휴지통들.... 이웃들이 자주 마주치는 곳 이기다 하다. 요즘은 사회적 거리 두기 유지 를위해 서로  끝날 때까지  멀찍이서 기다린다.
우리가 쿨쿨 자고 있던 새벽 2시에 경찰이 다녀간 우리 집 울타리, 그 천연덕스레 지네 집인 것처럼 연기를 하고 사라진 두 도둑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어느 젊은 좀도둑 두 명이 새벽 두 시에 남의 집 자전거 창고에 잘 잠겨져 있는 전기 스케이트 보드를 작업? 해 내서 들고 가다가, 길에서 코로나 단속 다니시는 경찰과 우연히 딱 마주쳤고, 순간 당황하신 그러나 간 큰 도둑들은 마치 놀다가 집에 가는 친구 데려다주고 그 집 앞에서 잠깐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하셨던 모양이다. 헐... 세상에나...


그런데.. 두 명 이상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것을 단속하는 것에만 집중하시던 경찰 들은, 이 수상한 젊은이들이 방금 전 남의 집 창고를 살짝 털고 나오신 좀도둑 일 거라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새댁의 이웃집 울타리,

즉, 그 도둑들이 새벽 2시에 경찰 앞에서 마치 자기 집 앞인 것처럼 연기하던 울타리가 바로 우리 집 울타리였던 것이었다.

지금 우리 집에 살고 있는 청년이라 하면 50대 한 명과 12살 한 명 밖에는 없는데 말이다


새댁은 혹시나 우리 집도 무언가 도둑맞은 것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알려 주려고 온 것이다. 그리고 조심하시라는 이야기도 전해줄 겸 해서 말이다.

그날, 그동안 제대로 대화도 나누어 본 적 없던 이웃집 새댁과 2미터 거리를 유지 한 체 재작년에 우리 막내 자전거 도둑맞았던 이야기.. 그리고 몇 년 전 동네 축제 때 누군가 우리 집 정원 울타리 문을 부수어놓아 새로 울타리를 해야 했던 이야기를 하며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우리는...

3주째 여기저기 마트를 돌아다녔어도 구할 수 없었던 한 봉지의 휴지를 얻었다. 마트가 아닌 다른 곳에서...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는 요즘이다. 너나 할 것 없이 감염으로부터 모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 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다.

그런데 우리의 안전거리 2미터는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간의 마음의 거리를 좁혀 주고 있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또는 멀리 있는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전보다 더자주 안부를 묻고는 한다, 전화로, 카톡으로...

그리고 이 뒤숭숭하고 심란한 시기에 친구나 지인 외에도 가깝지 않던 이웃들까지도 서로를 걱정해 주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또, 지구 한 바퀴를 돌아 대륙을 달리 살고 있는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서로의 안위를 염려해 주고 아낌없이 응원해 준다.


하늘길이 막히고 국경이 막혔어도 우린 모두 눈에 보이지 않은 공동의 적 코로나 바이러스와 각자의 자리 에서 함께 싸우고 있다.

그 사실 하나 만으로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그 싸움에서 이기기를 서로 격려해 주고 응원 할 것이다.


그 마음들이 모여 코로나를 이겨내는 그날까지... 모두의 안녕과 건강을 바래봅니다.

"건강히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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