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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pr 20. 2020

#17.코로나로 달라진 독일의 휴가

10일간의 휴가


독일 사람들의 일반적인 휴가 일자는 일 년에 약 28일 에서 30일가량 된다. 직장과 나이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는 있으나 주말 빼고 일 년에 대략 6주의 휴가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휴가 기간이 이렇듯 정해져 있고 그다음 해의 공휴일과 학교 방학들도 이미 일정이 나와 있기 때문에 독일 사람들은 해 바뀌기 전에 일찌감치 다음 해 칼렌더를 준비해 두고 빠르게는 일 년 전 또는 6개월 전에 미리 휴가 계획들을 세워 두고는 한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 아이들의 방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활절, 여름,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휴가를 미리 내어 놓는 사람들이 있고 또는 호텔이며 여행경비가 올라가는 그 방학 시즌 들을 피한 시기에 휴가를 내는 경우도 있다.


우리 병원도 직원 5명 중에 3명은 아직 유치원, 또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는 터라 이번 부활절 방학 두 번째 주인 4월 13일부터 4월 19일까지 작년에 미리 휴가 계획을 세워 두었다.

물론, 그를 위해 우리 병원 환자들이 급할 때 대신 진료받을 수 있는 동료 병원들과도 약속이 되어 있었다.

직원 중에 한 명은 부모님이 계시는 터어키로 아이들을 데리고 부활절 휴가를 떠날 계획이었고,

또 다른 직원은 매년 휴가를 가는 스페인의 섬으로 계획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큰아들이 공부하고 있는 곳으로 갈까 하고 있었고 다른 두 명은 독일에 있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휴가는 예정대로 받을수 있었지만 아무도 떠날 수 없었다.....

나이 드신 부모님을 만나러 고향으로 다녀오려던 직원도... 해마다 친구들과 함께 가던 여행을 계획했던 다른 직원도.... 몇 개월 만에 아들을 만나려던 우리도.....
그래서,코로나 19라는 상황이 우리 일상에 끼여 들어올 것이라 누구도 짐작할 수 없었던 때에 세워 두었던 우리의 휴가 행선지는 갑작스레 집으로 변경되었다.

그렇게, 부활절 연휴까지 합쳐 10일 동안 우리의 휴가는 성실한 집콕이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시간 부자가 되면.....


휴가 첫날, 매일 전쟁처럼 코로나로 신경을 곤두세우던 병원 일에서 열흘이나 놓여 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하고 행복했다.

아울러 코로나 휴교령으로 5주째 방학 중인 막내와 대학 시작하기 전에 다양한 프로젝트와 여행으로 알찬 시간을 보내려 세웠던 계획이 올스톱된 딸내미와 이제나 저제나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멍뭉이 나리와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집에서도 얼마든지 재미나게 다양한 것을 하며 휴가를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같이 앉아 책도 읽고, 정원에 나가 꽃도 심고, 맛난 요리도 함께 하고.. 의 계획을 세웠던 엄마 와는 달리 막내는 이미 5주째 온라인 게임의 세계에서 만나고 있던 친구들 과의 활발한? 모임으로 틈만 나면 헤드셋 끼고 앉아 바쁘셨다.

또 딸내미는 옷까지 갖춰 입고 시간까지 정해 놓고 제대로 홈트레이닝을 하며 운동에 열정을 쏟아붓고 있었다. 마치 실기 시험 준비하는 사람처럼...

그 가열찬 홈트 동작들을 옆에 끼여서 따라 하다 그동안 운동과 담쌓고 살았던 티를 팍팍 내며 벌벌 떨려 오는 팔다리 덕분에?몇 번 하다 슬그머니 내려놓았고...

따뜻한 날씨에 작전 수행하듯 마스크에 장갑 끼고 마트 한번 다녀오면 피곤이 몰려와 소파와 한 몸이 되었으며...

그간 주말마다 남는?시간에 틈틈이 하던 청소 덕분에 집안에 쓸고 닦을 일도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또 정원에 꽃을 심어 풍성한 꽃밭을 일구겠노라 마트에서 제대로 보지도 않고 잔뜩 담아온 꽃씨 들은 파종시기가 5월 말부터 6월 초라고 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지금 씨 뿌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소에 시간만 있으면 매일 글을 쓸 태세로 "내가 시간이 없어 그렇지 글 쓸 테마는 차고 넘치네요"라고 남편에게 큰소리치던 것이 무색하게 시간이 넘쳐 나도 매일 글을 쓰기는커녕 머릿속에 들어찬 이런저런 생각들로 좀처럼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글쓰기의 권태기, 글 태기? 일까?

그래서...

이많고 많은 시간을 우리 집 멍뭉이처럼 햇볕 쬐며 쪼그리고 앉아 졸다 깨다 하며,짬짬이 밀려드는 불안과 걱정을 비우기에 딱인 드라마 시청을 하기로 했다. 본격적으로다가....


새털 같은 시간
드라마와 절친이 되었다.


사실,예전부터 드라마 덕후에 가까운 내가 쉬는 날 앉아서 드라마를 본다는 것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시간도 체력도 안되어 예전처럼 한 번에 연거푸 여러 편을 본 날이 언제였던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간혹 주말에 그때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한두 편 또는 영화 한 편 보는 것이 다 였는데...


코로나로 인해 집콕이 의무이던 이번 휴가는 열흘 동안 여러 편의 드라마를 섭렵할 수 있었다.그것도 16부작, 또는 20부작 등의 미니시리즈로...

옛날 옛적 유학생 시절에 누군가 한국 드라마 CD를 구워? 주면 모여 앉아서 보던 그때처럼...


기쁘게도 요즘은 잘라져 있는 드라마 동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보는 것뿐만 아니라 뚜둥..하는 효과음악과 동시에 빨간색 N 이 열리는 것을 시작으로 하는 넷플릭스에서 꽤나 다양한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만나 볼 수 있게 되었다.

편안하게 앉아 통짜로 드라마 한 편을 끊기지 않고 볼 수 있다 보니 한편에 한 시간도 넘게 하던 응답 하라 1988 같은 드라마도 앉은 자리에서 몇 편을 내리 보며 며칠만에 20편 을 몽땅 보았다.

그 유명한 이름만 수도 없이 들었던 드라마를 이제야 보게 된 것이다.

모든 배우들의 실감 나는 연기도 좋았지만 특히나드라마의 시대적 배경 1988년에 남편은 극중 주인공 중에 한명인 보라처럼 최루탄 향기를 묻히고 살았던 대학생이었고 나는 덕선이 처럼 한학급에 아이들이 빼곡히 들러 붙어 앉아 함께 도시락을 먹고 야간 자율학습을 하던 고3이었다.

그리고...1990년대에 선우와 보라처럼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어색한 듯 함께 걷던 아부지 손잡고 별반 다르지 않을 그 시절의 비슷한 드레스 입고 닮은듯한 꽃길을 걸어서 말이다.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는 장면 마다 등장 하던 곳곳의 모습들이 흡사 예전 우리가 한국에 살고 있었던 그때 그시절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 했다.

연탄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애쓰던 모습도,머리 감고 나가려면 데워야 했던 뜨거운물도,동전 넣고 하던 공중 전화도,반찬 하나 하면 이집 저집 나누어 먹던 것도...그래서 우리를 쉬이 추억속으로 빠져 들게 했고 함께 웃고 울게 했다.

분명 그 시간에도 일일이 기억할 수 없는 삶의 크고 작은 걱정거리들이 존재했을 테고 미래에 대한 불안은 언제나 옵션으로 따라붙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그때는 가족 모두가 함께 했었고 그시간은다시 오지 않는다.그래서 그때의 어느 한순간도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


오늘이 지나면 우리의 10일간의 집콕 휴가도 끝이난다. 우리는 다시 병원으로 출근을 하고 또다른 일상을 살아 낼 것이다.

4월 20일 월요일을 기점으로 5주가 지난 아이들의 학교 휴교령은 5월 3일 까지로 2주가 더 연장되었고 작은 상점들이 다시 문을 연다.

코로나로 인해 계속 해서 변화 되고 있는 일상 속에서 내일은 또 어떤 일들이 우리를 놀라게 할지 알 수 없다.또 다른 무언가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새로이 파고 들런지도....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모든 시간들도 지나고 보면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으로 남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도 우리 아이들 에게도...

마치,지금도 눈감으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응답 하라 1988 의 그때 그 시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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