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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ug 04. 2020

누구냐 너는?

그렇게 나는,우리는 찐 팬이 되었다.


한여름 밤의 위로


독일도 32도를 웃도는 무더위 속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온도차가 들쑥날쑥하고 간혹 비가 와서 식혀 주기도 하지만 며칠째 높은 온도에 콩콩 달아 있는 집안은 그냥 앉아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게 덥다.

독일은 이런 여름 날씨 에도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이 지내는 가정집들이 많다.

워낙 독일 여름은 짧게 지나가고 예전에는 여름이라 해도 나무 그늘이나 바람 통하는 집안에 앉아 있으면 살만 했다. 이렇게 무덥지 않았다.


거기에 근검절약 이 몸에 밴 독일 사람들이라 굳이 전기세 많이 나올 것이 빤한 에어컨, 선풍기를 여름에 잠깐 쓰자고 집에 놓고 사는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더워도 너무 덥다 보니 선풍기 정도는 틀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우리도 아이들 방이나 거실에서 선풍기를 종종 틀기는 하지만 불 켜면 바로 더워지고 요리 끝날 때까지 별수 없는 주방까지 선풍기를 돌리지는 않는다. 전기세도 전기세 지만 선풍기 바람이 요리하는데 이쪽저쪽 구석에 있던 먼지를 몰고 오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너무 더울 때는 예전에 우리 엄마들이 밭일하러 나갈 때처럼 찬물 수건 목에 두루고서...

이렇게 더워야 여름이지 가을 되고 햇빛 구경하기 힘든 긴 겨울 시작되면 이 더위도 그리워지겠지.. 하며... 언제나처럼 식구들 먹을 저녁을 준비한다.


그런데,..

남편이 분주히 오가더니,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운 여름에 불 앞에서 요리하고 있는 마눌에게 미안했던지 아니면 배고프니 신나게 빨리 밥해서 대령하라는 의도였던지 거실 탁자 위에 노트북과 스피커까지 연결해서 틀어 주었다. 소리도 크고 빵빵하게..

띠링 띠링 띠리리리링 황홀한 기타 소리.. 그것은 다름 아닌 내가 요즘 즐겨 보던 악인전이라는 음악 예능 프로였다.


예능 프로라고는 삼시세끼 밖에 모르던 내게 악인전 은 다른 맛의 위로다.

평소 너무나 좋아하는 구성진 목소리에 보기만 해도 엄마 미소 짓게 되는 송가인 가수와 신들린 듯한 기타 연주로 매번 감탄을 자아 내게 하는 함춘호 님 그리고 세월이 비껴간 듯 예나 지금이나 독특한 그분만의 색깔로 노래를 하시는 송창식 님의 조화가 기가 막히던 프로였다.

그 진정한 고수 들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진심 담은 즐김의 음악이 주는 여유가 (즐기는 사람은 많겠으나 잘하면서 즐기기는 쉽지 않다.ㅋㅋ 못하면서 마구 즐기는 1인)

보는 이로 하여금 때로는 시원한 계곡 물 기로 안내해 주다가 또 어느 때는 소나무 우거진 정자에 앉아 쉬어가는 바람을 느끼듯 편안한 휴식을 안겨 준다.



누구냐 너는?


요즘은 시절이 좋아 인터넷으로 한국 드라마나 영화는 물론이요 예전에는 한국 가서 티브이 켜고 앉아 있어야나 볼 수 있었던 각종 방송들을 그날 바로 인터넷으로 볼 수가 있다.

그 옛날 한국에 다니러 가면 지난 방송 또는 드라마나 영화가 담긴 부피도 크던 비디오테이프를 귀하게 모셔 들고 와서는 같은 동네 유학생 들과 함께 보던 그 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독일 유학생 들의 응답하라 시절.


그때는 이런 날이 오리라 상상을 못 했을뿐더러 그때의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독일 에 살고 있을 줄은 짐작도 못했지만 말이다.


흘러간 세월을 느끼며... 덥지만 들려오는 한국 노래들을 따라 흥얼흥얼거리며 오이를 썰다 칼질을 멈추었다.

우리 친정 엄니가 너무나 좋아하시던 칠갑산이라는 노래가 들려오고 있었다.

목에 젖은 수건 두르고 머리 질끈 동여맨 체 듣고 있자니 콩 밭매는 아낙네야.. 하는 소절에 나? 나 말이니? 하는 추임새가 저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홀 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그 절절한 가사를 어찌나 구성지고 시원하게 부르는지 왜 사람들이 송가인 송가인 하는지 알겠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뒤를 이어 들려오는 마치 푸른 숲을 거니는 것 같이 맑게 뻗은 남자의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어왔다. 순간 너무 놀라서 하던 일 멈추고 주방에서 거실 탁자 위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화면에는 내가 전혀 모르는 남자 가수가 송가인 가수와 칠갑산을 함께 부르고 있었다.

누구지?


송가인 가수야 국악 출신의 실력자라고 소문이 자자한 유명 인이지만 함께 듀엣을 하고 있던 남자 가수도 만만치 않은 내공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그때 까지 그분이 누군지 모름ㅎㅎ)

무엇보다 연속으로 나오는 마이웨이 도 얼마나 잘 부르는지..... 송창식 님의 노래야 수식어가 부족하지만 젊은 사람이 어떻게 저리 연륜이 묻어 나는 올드 팝송을 저런 분위기로 노래할 수 있을까?... 정말 보통내기가 아니다 싶었다.

나는 그 남자가수가 너무나 궁금해졌다. 하던 저녁을 후딱 마무리하고 나는 폭풍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는 그렇게
트로바티 김호중의 찐 팬이 되었다.


남편이 틀어 주었던 것은 유튜브에 올려져 있던 짧은 동영상 들이라 노래만 나오고 그 가수의 이름만 알 수 있었을 뿐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검색을 통해 나는 그 멋진 가수가 모 경연대회를 통해 대중에게 트바로티로 불리 우고 있는 요즘 대세 가수 중에 한 분 임을 알았다.

그리고 원래는 성악을 했던 분으로 고등학교 때 모 방송에 고등학생 파파로티로 나왔던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동영상 들을 모두 보았다. 어쩐지 음색과 발성이 남다르다 했다...

검색을 하며 보게 된 미스터트롯이라는 경연대회, 스타킹이라는 방송의 동영상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랫소리로 남편도 함께 손뼉 치며 보게 되었고 그의 탁월한 목소리와 노래들에 나만큼 이나 열광했다.


어느새 우리는 부부가 나란히 앉아 "캬 어쩜 이렇게 잘해, 진짜 예술이다.!"무한반복하며

그중에 성악 버전의 천상 재회, 그대를 향한 사랑, 그리고 고맙소 라는 노래는 아마도 뻥좀 보태 수십 번은 들었지 싶다.

그러기를 며칠째....

인터넷 검색창에 김호중이라는 이름으로 덕질?을 하면 할수록 트바로티가 나이에 비해 (울 큰아들보다 여섯 살 많음) 풍부한 감성이 있는 것도 중년인 우리의 저 밑바닥 무언가를 툭 하고 건드려 눈물짓게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유가 있었다.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은 영화가 되어 나오기 까지 했으니 말이다. 우리는 파파로티라는 영화 까지 재미나게 보았다.

그리고 첫사랑에 실패만 않했어도 그만한 아들이 있을 엄마,아빠 뻘인 우리는 그의 찐 팬이 되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고로 트로바티는 귀한 가수님 이다.


삶이 순탄하지 않았던 순간이 많았기에 차고 넘치는 수많은 감정들을 담아 다른 이를 위로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일 게다.역경과 상황 들에 포기하거나 지지 않고 자기 만의 길을 찾아 꿋꿋하게 걸어가는 사람 에게는 특별한 빛이 난다.


우리 부부는 오늘도 트바로티의 살짝 얼음낀 동치미 물냉면 국물 원샷 한것 같은 노래를 들으며 더위를 잊는다.트바로티 김호중 화이팅! 독일에서도 응원합니다.

언젠가 남편과 한국에서 트바로티의 콘서트를 꼭 보러 가고 싶어 졌다. 십 대, 이십 대 때도 못해본 콘서트 나들이를 50대가 되어 반짝이 봉 들고서....

PS: 독일 유학도 나왔었다는데 그때 만났으면 맛난 한식 배불리 대접했으련만...하며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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