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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Sep 23. 2020

병원 빌런 vs 빙썅

직장 환경이 성격도 바꾼다.1


사람의 성격도 변할까?


보통, 우리는 그 사람에게서 도드라지게 보이모습 들을 보고 "아, 저 사람 성격이 이렇지 않을까? "라고 추측하게 된다.

그런데...

한 가지 색상에도 다채로운 톤이 있듯 사람 도 여러 가지의 면모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본인이 알고 있던 모르든 간에 말이다.

누구는... 사람 성격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누구는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바뀐다고 하기도 한다.

나는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사람의 성격도 충분히 바뀔 수 있다 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그리고 남편은 사람 성격이 변한 것이 아니라 초부터 안에 내재되어 있던 것들 중에 하나가 어떤 계기를 통해 출현하게 된 것이다 라고 말한다.

내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조용하고 내성적이던 나는 살면서 크게 성격이 바뀌었다. 남편은 원래 내 안에 가지고 있던 것이라 우기지만 말이다.

*사진출처:Die Maus 독일식 콩알탄 Knallerbsen 독일에서는 주로 연말에 불꽃놀이 할때 작은 아이들 용이다.

뒤끝 만리장성에서
콩알탄으로.


원래 나는 열 받는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머뭇거리다 미쳐 못 뱉어 낸 말들을 삼키고 집에 와서는 계속 있었던 일을 감기 해보며 "아 내가 그 타이밍에 딱 요렇게 이야기했어야 했는데"..로 이불 킥을 날리는 다소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물론, 내성적인 사람들이라고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두고두고 되새김질하는 일명 뒤끝 만리장성인 스타일이다.

그건 한국 에서나, 독일 에서나 한결 같았다.


그랬는데...

남편의 병원에서 매니저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다.

매일 병원에서 내가 만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은 그간 내가 만나온 적지 않은 사람들 의 범주에서 벋어 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 특별한 상황들이 원래 그 자리에서는 참고 집에 와서 뒤늦게 기분 나빠하던 나를 바로바로 터지게 하는 경이로운 세계로 인도했다.


우리 어릴 때는 학교 앞 문방구에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콩알탄이라는 것이 있었다.

하얀 종이에 인 조그만 초콜릿 같이 생긴 바닥에 떨어져 닿기가 무섭게 빡 하는 소리를 내며 매캐한 화약 냄새와 뽀얀 연기를 풍기며 터져 버리고 했다.

갱년기의 호르몬 변화도 한몫하겠지만 요즘 나는 병원에서 너무 기막힌 상황과 어이 상실한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나도 모르게 땅바닥에 닿자마자 착하고 터지던 그 콩알탄처럼 빡 하고 터져 버린다.  

한 번은 이런 일  있었다.


독일 직장인 들에게도 주말 지나 월요일은 힘든날이다."벌써 월요일이 돌아 왔어!" "그래 나도 보여 우리 이제 어쩌지?"*사진출처:Pinterest
전형적인 월요일,
마법에 걸린 월요일,
저주받은 화요일.

보통 월요일 아침의 독일 가정의 병원은... 주말에 갑자기 감기 가 걸렸다거나 배탈이 났다거나 해서 직장 또는 학교에 내야 할 병가가 필요한 젊은 사람들과 (그중에는 나일론 환자들도 더러 있다.)

주말을 기점으로 드시던 약이 몇 개 남지 않아서 당황하신 으르신 들...(이런 분들은 안 그래도 바쁜 월요일 아침부터 전화를 하셔서 왜 본인이 이약의 처방전을 진작 신청하지 못했는지의 대한.. 지난주 풀스토리를 푸시며 전화통을 붙들고 계신다. 정말 환장할 지경이다) 거기에 예약 환자들에, 지난 주말 종합병원에서 퇴원하신 분들..(종합병원에서 새로 받은 처방약과 치료법에 관해 가정의가 설명해 드리고 약도 새로 처방해 주어야 한다.) 거기에 응급실 가기 싫어 주말 내 아픈 것을 참고 참다 월요일 아침 되자마자 득달같이 달려온 환자들까지 겹쳐 월요일 아침 시간은 병원 안팎으로 난리도 아닌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이런 월요일 아침을 전형적인 월요일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상 하게도 세상 조용한 마치 목요일쯤 되는 것 같은 월요일 이 있다.

예약 환자들만 순서대로 오시고 전화도 띄엄띄엄 갑자기 찾아온 환자들도 한꺼번에가 아닌 시간대 별로... 우린 이런 월요일을 마법에 걸린 월요일이라 부른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런 월요일이 있는 주는 그 주 화요일이 마치 전형적인 월요일을 방불케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왜냐하면 월요일이 대부분 정신이 없으니 주로 화요일부터 예약 환자들을 많이 받아 두고 있는 터라 이렇게 화요일에 생각 지도 못하게 환자들이 몰려들면 진료실뿐만 아니라 채혈실 심전도실 초음파실 할 것 없이 난리가 난다.

우리는 그런 화요일을 저주받은 화요일이라 부른다.

독일 가정의 병원에 매일 우편으로 오는 서류들로는 주로 환자들의 연금보험 회사, 의료보험 회사, 노동청 등 각 기관에서 원하는 환자에 관한 의사 소견서 등이다.
우리 병원 우편함이 적어서 평일에는 우체부 아저씨가 두번 다녀 가신다 이 많은 편지속에 처방전 신청서가 끼여 있을수 있다.왼쪽 사진이 우리 병원 처방전 신청서 .
저주받은 화요일의 병원 빌런


때는 바야흐로 3월 초 코로나로 락다운이 되기 바로 직전이었다.

안 그래도 처음 겪는 코로나로 제대로 된 매뉴얼도 없고, 소독약, 방호복, 의료 마스크 등의 의료용품 조차 구비가 되어 있지 않아 너나 할 것 없이 의료진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였다. 독일에서 마스크 쓰기도 의무화가 시행되기 전이라 이래 저래 걱정이 많던 때였다.


문제의 그날은 저주받은 화요일이었다.

아침부터 병원 전화통들이 불이 났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끊임없이 줄을 섰으며 병원 안과 밖으로 들락날락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초음파 실에서 검사 용지를 챙겨 나오던 순간 나는 병원문이 부서져라 닫히는 소리와 세상 차분하고 순한 성격이어서 좀처럼 흥분하는 때가 없던 직원 귤귤이의 시뻘건 얼굴 그리고 접수처 사무실 근처에서 줄 서서 기다리던 다른 환자들의 어안이 벙벙한 모습으로 뭔 일이 있었군 하는 것을 쉽게 짐작할수 있었다.

폭풍이 쓸고 간 듯 바쁘게 흐른 시간을 뒤로하고 상세한 자초지종을 모두 전해 들은 나는 머리 위로 김이 모락모락 나며 글자가 써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랬. 단. 말. 이. 지!


화요일에 빌런나도 익히 알고 있는 환자 다. 어느 유명한 유통업체의 임원진으로 일을 하시다 조기 은퇴를 하신 비주얼도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운 분이었다. 그분은 말끝마다 "내가 사람 많이 상대해 봐서 힘든 거 아는데...로 시작해서 그럼에도 이렇게 해 줘야 한다"로 끝나는 이해 하는 척하며 사람 더 돌게 만드는 스타일이다.


그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저주받은 화요일 아침에 그분은 본인이 주말에 처방전 신청서를 작성해서 우리 병원 우체통에 넣어 두었는데.... 본인이 병원에 도착한 그때까지 본인의 처방전이 다 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해서 우리 직원 들 중에 가장 마음 약한 귤 귤이 (직원의 애칭)를 붙들고 다른 사람들 모두 보는 앞에서 온갖 진상을 다 떨어 댔던 모양이다.

훌쩍거리던 귤귤이는 이따가 그 진상님이 다시 오 실 수도 있으니 처방전을 해놓겠다고 했고,

나는 내가 알어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나한테 맡기라고 했다.

그날 병원문을 부서져라 닫고 간 그 빌런은 끝내 다시 오지 않았고 똘끼를 충전하며 기다리던 나와 다음날 정면으로 마주쳤다.

편지들은 주로 종합병원에 환자들이 입원했을 경우 퇴원 편지, 또는 방사선과,정형외과 ,심장내과, 안과 ,피부과 등등 에서 진료 후 편진단 및 치료법 등이 적혀있는 협진 편지 들이다
서류 처리 해 놓고 돌아 서면 양로원, 요양원 등에서 전문 간병인 또는 간병인 회사에서 우리 병원 환자들 이름으로 신청한 각종 소견서들과 처방전 등이 팩스로 줄지어 들어온다
병원 빌런 VS 빙썅


다음날 아침 그 진상님은 예의 그 절도 있게 빗어 내린 이대팔 가르마에 빳빳하게 대린 와이셔츠에 몸에 꽉 맞는 어찌 보면 욱여넣은 듯 보이는 검은색 가죽 잠바를 입고 얼굴 면적 덕에 작아 보이는 제법 큰 각진 네모난 뿔테 안경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나 아주 기분 별로임 하는 얼굴로 병원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나는 좀 있음 니 기분 더 똥 될 거임 하는 마음을 담아 활짝 웃는 얼굴로 아침 인사를 건넸다.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 평온해 보이는 내 모습에 진상님은 잠시 당황하는 듯하더니 어제 이야기 들었지! 하는 눈초리를 쏘아 대며, '어제 처방전 때문에 왔었는데 못 받았다. 그게 언제 적에 신청서 썼던 건데'.... 라며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어제 직원에게 들었어요. 주말에 신청서 넣으신 것이 우리 병원으로 온 편지들과 서류들 사이에 섞이는 바람에 제때 아무도 보지를 못해서 미리 못 해 드렸다네요. 아시겠지만 그 신청서가 얇고 작은 종이 한 장 이잖아요 하루에도 저희 병원에 들어오는 편지랑 서류가 수십 통이에요."

라며 그날도 엄청나게 들어온 편지들과 서류더미를 들어 보여 주며 "이 사이에 끼이면 미쳐 못 볼 수가 있어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러게 진작에 그런 신청서 따위 만들어서 쓰라고 안 했으면 이런 일도 없지 않았겠느냐" 해가며" 목청을 올려 댔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나는 마치 신호등 파란불 들어올 때 길 건너며 손들고 지나가는 초등학생처럼 옆으로 비스듬히 손을 들며 "잠시만요,지금 여기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환자대기실에 진료실에 다른 환자분들 있어요.물론 병원 건물 밖에도요. 이렇게 소리치시면 다른 분들에게 민폐가 돼서 더 이상 이야기 못해요.그러면 처방전도 써드릴 수가 없겠죠. 어떻게 할까요?" 라며 훅을 날렸다.

그랬더니 진상님은 당혹스러움이 역력한 얼굴로 "그래요? 그럼 내 진료기록 카드 주세요. 다른 병원으로 가게.!"라는 것이다. 마치 옷가게 진상님 들이 가격 흥정하다, 됐어요 그럼 다른 데 가서 살게요.라며 협박성 멘트를 날리듯이 말이다.

그 말에 나는 진심 반가워하는 표정을 뿜어대며 "우리 병원은 환자 가려 받는 곳이 아녀서 내입으로 다른 병원 가시라고 는 하지 않겠지만 말리진 않을게요. 진료 기록 카드 찾아다 드려요?" 라며 어퍼컷을 날렸다.

빌런의 반성문을 귤귤이의 독일 에서 카톡 처럼 사용 되는 왓젭으로 날려 주었고 귤귤이는 놀랍고도 얼떨떨한 표정의 딱, 저를 닮은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우와 진짜 대단하다.

빌런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져서는 어떻게 하지? 머릿속으로 고민하며 어버버하고 있는 동안 전화벨이 미친 듯이 울려 대도 병원밖에 줄이 난리가 아니게 길어져도 그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내가 누구던가 속전속결은 자신 없어도 존버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아니던가..

진상님의 긴 침묵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여유 있는 목소리로 접수처 한구석에 쌓여 있던 서류들을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우리 병원에 저렇게 많은 서류 처리 일들을 고작 네 명이서 해요, 그것도 전화받아 가며 환자들 진료 안내 해 가며 채혈이나 심전도 검사 등의 병원일 사이사이에 말이죠. 만약에 모든 환자의 처방전과 소견서를 전화로 받아서 해드렸다면 정기검진 등의 병원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진상님은 본인이 받고 있던 정기검진 때가 떠올랐던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새를 몰아 나는 "의료진과 환자 사이에는 서로 간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 믿음이 지켜지려면 서로 간의 예의가 가장 중요하죠. 우리 병원에서 계속 진료를 받으실 생각 이시라면 어제 일을 사과해 주세요!"그러자 그 진상님은 "아, 어제는 내가 정말 실수했어요 그렇게 사람 많은 데서 시끄럽게 하는 게 아니었는데 정말 미안합니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활짝 웃으며 하얀 종이를 내밀고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과는 저에게 가 아니라 우리 직원에게 해 주셔야죠. 그 직원이 오늘은 안 나오는 날이에요. 지금 사과하신 그 마음을 가득 담아 우리 직원에게 사과 편지 한 장 써주세요! 아시죠? 그전에는 처방전 못써드려요"


그날 우리의 진상님은 잠시 집에 다녀오겠다더니 컴퓨터로 곱게 사과 편지라고 읽고 반성문이라 쓸 종이를 들고 나타나셨다.

날짜까지 정확히 박혀 있던 그 반성문에는 2020년 3월 3일 화요일 오전에 이병원에서 큰소리로 떠들어 댔고 나의 잘못된 태도에 대해 여러분에게 특히나 그날 그 직원분에게 사과합니다.

그분은 언제나 내게 친절했고 잘 해왔던 분입니다 이에 거듭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라고 적혀 있었고 나는 그 반성문과 빌런의 처방전을 친절하게 맞교환했다.


나는 그날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공손한 모습으로 처방전을 받아 돌아 나가던 진상님의 뒷모습에 속으로 나이스를 외쳤고 바로 귤귤이에게 왓젭으로 쏘아 주었다.

그 반성문을 받아본 그녀는 우와 진짜 대단하다.. 그래도 좋다 라며 흡족해했고 나는 상처 받은 직원을 위로할 수 있어서 다행인 하루였다.

그날 이후 나는 우리 병원에서 웃으면서 할 말 다한다는 요샛말로 빙썅으로 등극했다.(인터넷으로 빙썅이라는 신조어의 뜻을 알게 된 날 나는 어? 이거 난데? 하며 미친 듯이 웃었다. )

그러나 나는 앞으로도 남편이 병원의 자잘한 일들로 조금이라도 덜 스트레스받게 하기 위해서라면 그리고 우리 직원들이 그딴 일로 상처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빙썅이 되어 줄 용이가 있다. 역시나 직장의 환경은 성격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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