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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Oct 31. 2020

#27.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던 하루.


나는 놀이동산의 그 생기 발랄하고 때론 동화 같은 밝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지금 이 나이? 에도 날씨 좋은 날 이면 귀여운 머리띠에 솜사탕 들고 놀이동산에 놀러 가고 싶어 진다.

그런데 정작 놀이동산에 가도 내가 탈 수 있는 것은 회전목마와 관람차 정도다.

스피드 있고 보기만 해도 아찔한 놀이기구는 타지 못한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 오기 때문이다.

독일은 Freizeitpark이라고 해서 Heide park, Europapark 등등.. 몇 군데 커다란 놀이동산 들이 있다.
그 놀이동산 들을 제외 하고는 동네마다 축제 기간에 그 기간 동안 그릴 소시지, 옥수수 등의 음식 가판대들과 풍선 터트리기, 깡통 넘어트리기 등의 뽑기 코너들 사이에 놀이 기구들을 조립해서 즉석 놀이동산을 만든다.

우리가 바이 어른 주에 뉘른베르크라는 남부 도시 근처에 살고 있을 때였다

그때가 Nürnberger Volksfest라는 페스티벌 축제 기간이었다.

그해 막내의 키가 120센티를 넘어 이제 탈 수 있는 놀이 기구들이 조금 많아졌던 때였다.


그러자 그 동그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신이 나서는 타고 싶은 놀이 기구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중에 사람들이 꺅 꺅하며 악을 악을 써대는 소리에 자연스레 눈이 가던 놀이기구...

그것은 배 모양으로 생긴 것이 절벽처럼 높은 곳에서 물 위를 가르는 보기에는 시원해 보였으나 그 떨어져 내리는 높이와 속도를 생각하면 아찔 하기 그지없게 생긴 놀이기구였다 그것을 막내가 몹시도 타고 싶어 했다. 그 전년도 까지만 해도 아직 키가 작아 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막내는 세상 간절한 눈으로 온 가족이 함께 타고 싶다고 했다. 형아와 누나는 물론 아빠도 함께 탈 수 있지만 엄마는 무서워서 못 탄다며 사진만 찍어 주던 것이 기억이 났던 거다.

그 귀여운 눈망울에서 퍼져 나오는 절대 바람을 거절하지 못해 결국 함께 타기로 했다.

내 생애 그런 위험천만? 한 것은 타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짙은 갈색의 배처럼 생긴 것에 앉아 안전벨트도 맸다. 안전장치가 모두 확인되자 우리를 태운 것이 출렁이던 물살을 가르며 뜨락 뜨락 뜩 뜩 하는 기계 조여드는 소리를 내며 기차 달리는 레일 같은 철길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앞쪽으로 달려 있던 손잡이를 잡은 손이 하얘지도록 세게 그러지고 있어도 쿵쾅 대던 심장은 속도를 더해 갔다.

가파른 절벽을 오르듯 올라가던 그 롤러코스터 안에서 바라 보이던 하늘마저 시리게 아찔 하던 순간 있었다. 타고 있던 것이 가열하게 속도를 냈고 까마득하게 위쪽에 다다른 어느 순간 덜커덩하며 멈추어 섰다. 그때가 물 살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내려가기 바로 직전이었다.


아마도 그 놀이기구의 짜릿함의 극대화를 위해서였던지.. 낭떠러지에 매달리듯 간당 거리며 일부러 멈춰 섰던 그 수초의 시간을 기억한다. 아래쪽이 아득하게 내려다 보이던 그 짧은 찰나.. 까만 점처럼 보이던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통 들과 알록달록한 캐릭터 풍선들.. 왠지 그 순간만큼은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우리가 얼마나 높은 곳에서 떨어져야 하는지 확인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였던 것 같다.

바로 며칠 전 그 잊을 수 없이 숨 가쁘도록 떨리고 긴장되던 롤러코스터 위에서의 그 순간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드라마틱한 순간의 시작은 언제나 평화롭다. 얼마 전 아침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 병원 진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아들과 유치원에 다니는 딸내미를 바래다주고 다른 직원들보다 조금 늦게 출근하도록 되어 있는 직원 B가 다른 날에 비해 이상하리 만치 일찍 출근을 했다는 것과 다른 날에 비해 표정이 조금 어두웠다는 것 외에는 특별할 것 없이 시작된 아침 진료 시간이었다.

B는 의료용 마스크 쓰고 가운으로 갈아입기가 무섭게 코로나의 전형 적인 증상을 다시 물었다.

마치 익히 알고 있는 것을 재차 확인하려는 듯 말이다. 왠지 이상한 낌새를 바로 알아챈 남편은 B에게 "혹시 누군가 아는 분이 코로나 확진이 되었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숨 가쁘게 쏟아 놓던 B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그전주 주말 친한 친구의 생일로 그 집에 친구 몇 명이 모였다고 했다. 모두 서로 잘 아는 친구 들이었고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친구의 생일이어서 오랜만에 간단히 차 마시고 케이크 먹는 시간을 짧게 가졌다고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왔던 친구 중 한 명의 남편이 며칠 지나 코로나로 확진이 되었다는 거다. 그래서 그 모임에 왔던 친구도 코로나 테스트를 받으러 검사소로 갔다는 거다.

그 소식을 우리 직원 B가 병원 출근길에 전해 들었다. B는 코로나 확진자와 직접 접촉 자는 아니었고 그 친구의 검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 여서 B의 코로나 감염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B는 일단 증상이 없었고 다행히 그날 B가 병원으로 출근을 하며 마주친 환자들은 없었다.  


요즘 워낙 유럽이 코로나로 정신없고 독일 도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어 주변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는 것이 이제는 기겁할 일은 아니다. 우리 병원 환자들 중에서도 코로나 확진자가 이미 여러 명 나오고 있는 상태다.문제는 우리 병원 환자들 중에는 코로나 감염 고위험군에 속한 기저질환을 가진 고령 환자들이 많다는 거다 그리고 B는 그 환자들의 채혈과 예방주사 등 진료를 담당해야 하는 의료진이다. 머리가 띵 하고 입술이 말라 왔다.

이사태를 어찌해야 할지 모두가 몇 분 동안 멍해 있는 사이 남편은 이번에도 발 빠르게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남편이 내어 놓은 비장의 무기는 바로 얼마 전에 독일 보건 당국에서 사용 승인이 떨어진 코로나 신속진단 키트 였다.

10월 1일 자로 독일에서 우선은 의료진들에 한해서 신속진단키트를 허가했다.

남편은 혹시 모를 지금 같은 비상사태를 대비해 허가 떨어 지자 마자 의료 용품 회사에서 바로 구입해 두고 있었다.

물론 이렇게 일찍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다른 직원들은 밖으로 이동한 체 채혈실의 모든 창문을 열고 보호복으로 갈아입은 남편은 신속진단키트 세트 안에 들어있던 코로나 검체 채취 의료용 면봉으로 B의 입안의 검체를 채취 했다.

그리고는 검체 용 면봉을 시약에 넣고 그것의 일정 양을 진단 키트에 떨어 뜨렸다.

어찌 보면 임신 테스트 기 같이 생긴 코로나 신속진단키트 에서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5분...

그 시간이 직원 B 에게도 우리 에게도 조마조마하고 아찔한 순간이었다. 마치 롤러코스터 위에 앉아 있던 그때처럼 말이다.

직원 B는 남편과 부모님, 시부모님 모두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어서 평상시 누구보다도 방역수칙을 잘 지키며 조심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일 친한 친구의 생일이었고 코로나 사태 이후 너무 집콕만 하고 사람을 만나지 않고 있던 B가 안쓰러워 그녀의 남편이 특별히 권해서 다녀온 자리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떠밀리듯 서게 된 것이다. 나는 속상해하는 그녀의 모습도 안쓰럽고 혹시나 모를 위험에 노출된 우리도 안타까워 입맛이 썼다

코로나의 감염 경로의 연결 고리는 이렇듯 언제 어느 때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올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그날 B는 음성이 나왔다 그리고 코로나 검사소에서 감사를 받았던 그녀의 친구도 그리고 다른 친구들도 모두 음성이 나왔다.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B가 양성이 나왔고 그녀의 친구들도 양성이 나왔다면 줄줄이 많은 확진자가 나올 상황이었다. 생각 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날 우리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지만 우리는 또 언제 어느 때 이런 상황과 마주 하게 될지 모른다.

이제 독일은 하루 확진자 숫자가 18000명이 넘어섰다.

크리스마스 전에 20000명에 육박할 거라던 정부 예상보다 두 달 가까이 앞선 상황이다.

뉴스나 기사에 코로나 관련 기사가 쏟아져도 확진자 숫자가 급증해도 그러던가 말던가 원래 계획대로 여기저기 휴가 다니고 피로연에 뭐에 파티하던 사람들조차도 이제는 아이들 학교에서 또는 직장에서 그리고 식구들 또는 친척들 중에 이웃 중에 코로나 확진자들이 나오고 있으니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이제는 독일 내에 더 이상 안전 지역도 없을뿐더러 너나 할 것 없이 정부 방침대로 방역 수칙을 잘 지키지 않는다면 이번 겨울은 모두가 어렵고 힘든 시간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코로나는 대부분의 사람만 조심해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주면 독일은 다시 강화된 부분적 락다운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조심하며 락다운의 효과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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