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우회
What i was made for
지난해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 중에 하나다.
영화 바비를 보기 전부터 많이 들었는데, 우연히 영화를
보게 된 이후에 더 많이 듣게 되었다.
영화 내용과 그 노래가 내 마음에 쑥 들어왔다.
그때부터였을까?
내가 무엇을 위해서 만들어진 걸까?
주위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에 관해서 물어보기 시작했다.
대부분 그 질문에 선뜻 답을 하지 못했고,
나는 예쁜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말했었다.
오늘도 저녁에 먹었던 약기운이 떨어지는, 대략 6시간이 지나니 눈이 떠졌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팝업 창처럼 떠오르기 시작했고,
탱탱볼처럼 여기저기로 이 생각, 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튀어 다니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 어제 만났던 사람들과 나눈 대화,
경험했던, 아팠던, 창피했던 순간들, 오늘 해야 할 것들,
앞으로 해나가야 할 것들이 머릿속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가고 있을 때쯤,
아, 아침 약 먹어야겠다.'
이불을 박차고 거실로 나왔다.
약 먹은 지 4년,
꽤 오랜 시간을 먹었는데도 아직도 신기하다.
4개의 알약이 마법처럼 생각을 멈춰준다.
나는 왜 약을 먹지 않으면 생각을 조절할 수 없을까 자책도 많이 했었다.
그래도 쉬니까 달라진 점은 (겨우 5일 차지만)
밤새 꾼 꿈이 기억나지 않았고 (적어도 이젠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리진 않겠지. ㅎㅎㅎㅎㅎ)
자고 일어났을 때 잠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지 않았고,
'오늘 회사 가서 이것 해야 하고, 저것 해야 하고. 아 또 야근하겠지….' 생각하면서 괴로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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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환우회
어제, 우연히 나와 비슷한 이 시기에 공황장애가 오고, 회사를 때려치우고, 약을 먹기 시작했고, 심리 상담을 받으러 다니는 동생을 만났다.
우리는 환우회 모임이라고 낄낄거리며 웃어댔다.
그동안 상처받았던 일들, 증상, 정신과/심리상담을 다니면서 느낀 점들 서로 나누면서 난 참 그가 부럽기도 하고 자랑스럽다!라고, 생각했다.
나보다 한참 어린 이 친구는 본인은 흔히 말하는 '사회에서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이제 자신만의 삶의 방향을 찾아야겠다고 했다.
그는 회사 사수로부터 수많은 어이없는 말 중에서 갑자기 생각난 말이 있다고 했다.
'너는 3가지를 고쳐야 해, 실실 웃고 다니는 것, 성격….' 하나는 뭐더라…. 거기까지 들었을 때
나는 이미 마음속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분출하고 있어서, 하하 기억이 안 난다. -_-;
근데,
나도 표현은 달랐었지만 비슷한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너무 솔직한 것은 좋지 않다, 무게감이 없다, 감정적이다.'
그 친구나 나나 사람 좋아하고, 솔직하고 진실하게 사람을 대하고, 즐거울 땐 즐겁다, 슬플 땐 슬프다, 화가 날 땐 화가 난다. 솔직하게 표현했던 것뿐인데.
그런 건 '사회에서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란 범주에 들지 않는 것들이었다.
마치 사회에서 부정당한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백화점 지하 한구석에 있는 좁은 카페에서
눈시울을 붉히다가, 미친 듯이 웃다가, 화를 냈다가.
한참 떠들면서 서로의 아픔을 공감했고, 이해했고,
우리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서로 응원했다.
그리고 대화 끝에 이런 불안정한 사람들 옆에서 묵묵히 중심을 잡고 들어줬던 우리 남편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얘기했다.
헤어지면서 그 친구는 책을 선물해 주고 싶다고 했고,
나는 정기적인 환우회를 하자고 제안했다.
내가 만약 아직 천고도 낮고 한숨과 코칭이 난무하는 사무실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야근하고 있었다면, 이런 경험할 수 없었겠지?
적어도 지금까지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오늘은 뭐 하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말도 하지 말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어줍지 않은 위로나 충고가 사람을 더 지치게 할 때가 있긴 하다.
허양의 남편은 오늘 출근길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비슷한 경험한 사람들의 위로가 필요하다는 DJ의 말이
귀에 꽂혔다.
위에 허양이 만난 동생은 남편의 사촌동생이다.
때가 되면 늘 연락하고 찾아와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허양은 자신의 사촌들보다 남편의 사촌동생과 더 친해지고 따로 연락도 했다.
오늘 허양의 남편 지방 출장길, 사촌동생이 문득 연락이 와서 뭐 하냐, 바쁘냐, 통화나 하려 했다는 말에 남편은 무슨 일이냐고 재차 물었다. 아내와 같은 일을 겪고 있단 말에
허양을 만나보라 했다. 그들의 만남이 좋았다는 말에 다행이라고 남편은 느꼈다.
불과 3주 전에 만나 같이 공연도 가고 술도 마셨는데
이런 상황인지도 몰랐던 남편은 사촌동생에게 미안했다.
사촌동생은 유럽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한국에서 요새 제일 핫한 건축가의 사무소에서 일을 했다.
높은 turnover rate에 놀랐다고 한다. 처음에는 다른 나라사이의 문화의 차이와 건축업의 특징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에서 괴로워하는 사촌동생을 보면서 허양의 남편은 그렇게 생각했다. 누구 못지않게 건축에 열정을 가지고 진심이던 동생이었다. 그런 그가 스스로를 갉아먹고. 튕겨 나왔다는 것에 속상했다.
남편은 허양의 상황 때문인지 최근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업종, 나이, 출신 학교를 달리하지 않았다.
먹은 것도 없는데 계속 토를 하던 후배.
출근할 때부터 울기 시작했다는 친구.
조금 더 일찍 회사를 관두지 못한 걸 후회하다던 친구.
수십억의 스톡옵션을 포기하고 쉬었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이야기한 친구.
극심한 우울과 불안에 도망갈 수밖에 없었으나 금전적 이유로 다시 돌아와 또 불안감을 느낀다는 전 직장동료.
회사를 떠나고 국립대 교수를 하면서 다시는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두 동생들.
왜 우리는 이래야 할까?
요새 허양의 남편 머리속은 이 질문으로 가득하다.